육룡이 나르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요동정벌의 허와 실
조선의 기틀을 세운 태종 이방원(유아인)을 중심으로 태조 이성계(천호진), 삼봉 정도전(김명민) 등 6명의 야망과 성공스토리를 그려나가고 있는 팩션사극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20회에서는 위화도 회군을 결정하는 이성계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왕의 명령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따르는 장수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성계는 최영(전국환)의 진두지휘하에 요동정벌에 나섭니다. 하지만 요동에 가서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군사들이 폭우로 불어난 압록강에 말뚝을 박다가 죽어가고, 식량부족으로 굶어죽어가고, 거기다 역병까지 번져 계속 죽어나가는 등 최악의 상황 앞에서 어떤 결단이든 내려야만 했던 이성계는 예전에 정도전이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육룡이 나르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요동정벌의 허와 실
정도전은 "나라 국(國)자는 땅과 백성을 창으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게 나라입니다. 여기에 가(家)자를 더하면 땅과 나라를 창으로 이겨내고 가족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국가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군인으로서 왕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최고의 임무로 삼고 있던 이성계에게 정도전의 이 말은 요동정벌을 그만두고 회군을 하는 것은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뚜렷한 명분을 줍니다. 결국 이성계는 군사들 앞에서 “나 이성계는 압록강을 건너지 않을 것이다”라는 선언과 함께 회군을 결심합니다.
조선사에 관심이 깊은 김형광의 [인물로 보는 조선사]를 바탕으로 육룡이 나르샤 위화도 회군과 요동정벌의 허와 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아무래도 위화도 회군에 성공한 이성계에게 더 우호적인 평가를 하는 감이 있지만, 백성들과 나라를 도탄에 빠뜨릴 게 뻔한 전쟁을 피하고자 한 이성계의 진정성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 고려의 외교 실패
고려 말 원나라가 점점 쇠퇴하고 있을 때 주원장이 한족(漢族)의 국가인 명나라를 창건했다. 그 동안 원의 지나친 내정간섭에 불만을 갖고 있던 고려 조정은 새롭게 등장한 명나라와의 외교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명의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 북원과의 관계를도 계속 유지했다. 여기에 불만을 가진 명은 더욱 고려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고려 조정도 친원 세력과 친명 세력으로 갈라져 대립하게 되었다. 하지만 명이 지나친 조공을 요구하며 계속 고려를 거세게 압박해 오자 점차 명나라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명에 대한 비판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 명은 철령 이북을 요동에 귀속시키겠다며 한층 더 고압적인 자세로 나왔다. 철령 이북은 원래 고려 땅으로 원이 강제로 차지하고 있던 것을 공민왕 때 겨우 회수한 것이었다. 따라서 고려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고려 조정은 명과 교섭하기 위해 사절을 보냈으나, 명의 자세가 확고한 것을 확인하고 철령위(鐵嶺衛)를 설치하기 위한 명의 전진기지인 요동을 공격할 계획을 세운다. 양국 관계는 험악해졌고, 자칫하면 무력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려는 정권의 무능함을 드러내게 되는데, 첫째는 부족한 외교능력이고 둘째는 고려 조정이 국제 관계에서 힘이 이동하고 있는 방향을 읽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는 고려 말부터 누적된 폐단들이 민생을 괴롭히고 있는 가운데 국토의 남쪽은 왜구가 창궐하고 북쪽은 전쟁에 대비하여 성을 쌓느라 백성들이 시달리고 있었다. 더구나 고려 우왕은 전쟁 준비를 독려하기 위해 서해도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실상은 개인적인 향락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왕의 시중을 들기에 벅차하던 백성들은 요동을 정벌하겠다며 농번기에 전국적으로 군사를 소집하자 자연히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까닭으로 요동정벌에 대한 반대가 높아지자 우왕은 자신의 친위세력과 강경파 무인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정벌계획을 세우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한 출병을 감행한다. 이성계는 우왕에게 돈수백배(頓首百拜)하며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최영 장군과 고려를 배신할 수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요동정벌에 나선다.
4월 18일 평양을 떠난 정벌군은 5월 7일 드디어 압록강 가운데에 있는 위화도에 진을 쳤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위화도까지 오는 동안 군사들이 탈영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고, 정벌군의 사기도 크게 떨어졌다. 더구나 압록강 부근에 비가 많이 내려 부교가 떠내려가고 물에 빠져죽는 군사들까지 생기자 이성계는 그 유명한 사불가론(四不可論)을 내세워 우왕에게 징벌의 무리함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린다.
사불가론이란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거스르는 것은 옳지 않고 둘째 농사철이자 더운 여름에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며, 셋째 군사력을 총동원한 틈을 노려 왜구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넷째 장마철을 맞아 활의 아교가 풀리고 군사들이 질병에 걸릴 것이 염려된다는 주장이다. 사불가론의 첫번째 이유는 명에 대한 사대주의적 입장을 담고 있지만 당시 고려의 국력으로는 명과 군사적으로 대적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나머지 이유들도 민생과 군사적 측면에서 충분히 납득이 되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왕과 최영은 이 의견을 묵살하고 내관 김완을 통해 어서 압록강을 도하하라는 교지를 보내 진을 재촉할 뿐이었다. 더욱이 최영은 이성계가 혹시 다른 생각을 할까 염려해 이성계의 가족과 가솔들을 모두 연금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압록강에 가로막혀 잠시 진군이 지체되고 있는 가운데 정벌군의 사기는 점점 떨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안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이성계가 이미 군대를 동북면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렇듯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결국 회군 여부의 최대변수였던 좌군도통사 조민수마저 회군에 동조하게 된다.
■ 위화도 회군
5월 22일, 모든 장수들을 회유한 이성계는 마침내 군사를 되돌려 역사적인 위화도 회군을 하게 된다. 한편 회군을 시작한 지 이틀 뒤 성주 온천에 가 있던 우왕에게도 이 소식이 전해지자 왕 일행은 황망히 자주, 평양, 중화를 거쳐 29일 이른 새벽 개경으로 환궁한다. 이때 왕을 따른 병력은 겨우 50여 명에 불과했다. 출발할 때에는 한 달 가까이 걸린 길을 5일 만에 급히 돌아왔으니 왕의 낭패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만하다.
6월 1일, 개경에 도착한 이성계는 숭인문 밖 산대암에 진을 치고, 우군은 숭인문 쪽으로, 좌군은 선의문 쪽으로 진격하게 했다. 그러나 최영의 수성군에게 밀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자 이성계가 직접 전군을 지휘하여 마침내 왕궁의 담을 헐고 들어갈 수 있었다. 성 안으로 들어간 이성계는 끝까지 왕을 보위하고 있던 최영을 붙잡아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애초에 수성군은 회군 병력에 비해 수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에 회군이 시작되었을 때 대세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요동정벌을 위해 군사력을 총동원하면서 자체 수비병력은 등한시했기 때문에 정벌군이 반란군이 되자 고려 조정에서는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회군 세력이 정권을 완전히 장악한 후 최영은 고봉현으로 귀양보내졌고, 다시 합포, 충주 등으로 유배되었다가 참수되었다. 우왕 또한 강화도로 쫓겨나 이후 잠시 왕위를 계승했던 그의 아들 창왕과 함께 사사됨으로써 사실상 고려왕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 요동정벌의 허와 실
그런데 우왕과 최영은 왜 무리한 요동정벌을 강행하여 고려왕조가 멸망하게 되는 화를 자초했을까? 그 답은 당시 최고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서 찾을 수 있다. 최영은 우왕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서 그를 보필하는 정권 책임자였다. 따라서 국가 보위 차원에서 예민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명과의 영토분쟁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었다.
아무리 명의 압력이 거세다 해도 100년 만에 겨우 회복한 옛 영토를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순순히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최영으로서는 명의 의사가 철회되지 않는 한 정면대응을 해서라도 국토를 수호해야 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만일 명의 압력에 굴복해서 철령 이북 지역을 명에 넘겨준다면 영토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대세력에 의해 공격받게 될 게 뻔했다. 이런 정치적 현실 때문에 요동정벌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이다.
반면에 이성계는 권력의 중심에서 비껴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 입장에서 반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최영과 이성계의 성향과 태도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는데, 최영은 강골 무인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이성계는 유연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라는 보잘것없는 변방 출신의 일개 장수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구 왕조를 멸하고 새 왕조를 탄생시키는 역사적 대반전의 전주곡이었다.
■ 이성계 조선을 세운 뛰어난 무장이자 최고의 정치가
그렇다면 위화도 회군은 준비된 쿠데타인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인가? 당시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일단 애초부터 권력을 탈취할 목적으로 계획된 사건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성계는 쿠데타를 추진할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지 않았다. 게다가 회군으로 권력을 장악할 계획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무조건 출정을 반대하기보다는 동조하는 체했다가 병력을 장악할 기회를 노렸을 것이다. 따라서 원하지 않던 출정에 나서기 앞서 여러 가지 난관에 부딪치자 그대로 압록강을 건너기보다는 철군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만,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회군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회군을 결심한 이성계는 다른 장병들의 의향을 떠보기 위해 요동정벌을 포기하고 본거지인 동북면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소문을 내는데, 그때 맨 먼저 조민수가 허둥지둥 달려와 그의 뜻에 동조했고 결국 모든 군사가 그의 뜻에 따르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이성계는 용맹스러운 장수이기도 했지만 임기응변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정세의 변화를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는 데에도 능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반역을 도모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개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왕의 일행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속도를 조절하여 움직이는 등 명분상으로는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이성계는 뛰어난 무인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역량도 탁월했고 매우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상, 육룡이 나르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요동정벌의 허와 실이었습니다. 육룡이 나르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