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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대박 백대길(장근석)과 조선 최고의 검선 김체건(안길강)

 

대박 백대길(장근석)과 조선 최고의 검선 김체건(안길강)

 

 

드라마 [대박]은 팩트와 픽션이 혼합된 팩션드라마이기에 등장인물들이 실존인물인지 아니면 가상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시청의 묘미를 더해줍니다. 이 중 숙빈 최씨(윤진서)에게서 육삭둥이로 태어나 궁궐 밖 백만금(이문식)의 손에서 자라나지만 타고난 천운으로 마침내 조선제일검과 투전의 신에 오르는 백대길(장근석)은 드라마에 재미를 더하기 위한 가상의 인물입니다.

 

장근석이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대길은 아버지 백만금이 이인좌(전광렬)의 화살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후 그는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그는 그 동안 천방지축으로 살아오던 삶을 접고 '대길'(大吉)이라는 이름답게 수십 차례의 죽을 고비도 천운으로 넘기면서 대호가 되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장근석은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살아 있는 뱀을 껍질째 뜯어먹고, 똥통에 빠지고, 멍석말이로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장근석이 10대 후반에 출연한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 처음 그를 보고 크게 기대되는 배우로 여겼던 적이 있는데, 사실은 그 동안 기대했던 만큼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아 좀 안타까웠었습니다. 하지만 [대박]에서 보여주는 그의 열정으로 가득찬 투혼 연기를 보니 다시 기대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박 백대길(장근석)과 조선 최고의 검선 김체건(안길강)

 

한편 대길이 대호로 성장하기까지에는 조선 최고의 검선(劍仙)으로 일컬어졌던 김체건(안길강)이 큰 역할을 합니다. 드라마에서 대길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그의 사부가 되어준 김체건은 조선 숙종 때의 실존인물입니다. 김체건의 아들 김광택 또한 검의 신선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대길은 김체건 밑에서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뀌도록 수련을 계속합니다. 되풀이되는 검술 훈련에 대길의 손에서는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혹독하기 짝이 없는 수련을 거듭한 대길은 드디어 꽃잎을 칼로 두 동강 내는 칼솜씨와 멀리서도 과녁인 동전의 가운데 구명을 화살로 꿰뚫을 만큼 뛰어난 활솜씨를 갖추게 됩니다. 그리고 김체건이 쏘아보낸 화살도 손으로 잡는 실력을 갖추기에 이릅니다. 대길의 눈부신 성장에 김체건은 남몰래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얼마 후 김체건은 대길에게 “내가 널 제자로 거둔 이유를 아느냐”고 물으며 “닮았다. 네놈이 내가 아는 누구와 닮았어”라고 말합니다. 대길이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자 “젊은시절 딱 네놈 나이 때 만난 분이었다. 호랑이였다. 생사고락을 같이 했지”라며 “호랑이 중에 호랑이. 산중에 왕, 장군 같은 분이었다”라고 덧붙입니다. 아마 대길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숙종을 말하는 듯합니다. 대길이 “나도 꼭 그렇게 될 거야. 호랑이 중에 호랑이 산중에 왕이 될 거야”라고 다짐하자 김체건은 "제법 티는 나는구나. 이제 여기가 좁지 않느냐? 그만 내려가거라"면서 대길에게 하산을 명합니다.  

 

 

마침내 하산을 하게 된 대길은 사부 김체건에게 절을 올리며 "고마워 사부.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 내 목숨 언젠가 사부를 위해 꼭 바칠게"라고 말하며 뜨거운 눈물을 보입니다. 김체건 또한  "자나깨나 칼조심 해"라고 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돌아서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겉으로는 냉혹하리만큼 무뚝뚝하고 찬바람이 쌩쌩 불지만 내면으로는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는 무술 고수 김체건 역을 맡은 안길강은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듯 고개가 절로 수그러지는 사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 이수광의 [조선의 방외지사]를 바탕으로 대길의 사부로 나오는 이 김체건에 대해 좀더 알아보았습니다. 대박 백대길(장근석)과 조선 최고의 검선 김체건(안길강)입니다. 대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조선 최고의 검선(劍仙) 김체건 

 

효종과 현종 대를 거쳐 무모한 북벌정책을 철회하기에 이른 숙종은 일본과 청나라의 우수한 각개전투 기술을 입수하여 군사들의 전투력을 향상시키고자 꾀했는데, 그 과정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무인 김체건은 은밀히 왜관에 숨어들어가 일본의 검술을 터득하여 진중에 전파했다.

 

어릴 때 임진왜란의 참혹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김체건은 동래부사 송상현의 장렬한 죽음과 수많은 의병의 활약을 귀담아 들으면서 호연지기를 키웠다. 장수들의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그는 "나는 조선 최고의 무사가 될 것이다"라고 의지를 굳혔다. 학문보다 무예를 익히기 시작한 그는 무예의 달인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기필코 찾아가서 배웠다. 검술, 창술, 궁술을 차례로 익힌 그는 과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조정은 북인을 몰아내고 반정을 일으킨 서인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과거에 합격하면 벼슬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은 김체건은 장수가 되어 천군만마를 질타하려는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무과에 합격하여 벼슬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병조에서는 그에게 벼슬을 내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병조의 높은 당상관에게 뇌물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자 크게 실망을 한 그는 결국 병조에 가서 발령을 내달라고 청했고, 병조에서는 몇 달 만에 군교 자리를 하나 내주었다. 

 

 

'하늘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어찌 하늘을 원망하겠는가?'라고 생각한 김체건은 말단 군교에 지나지 않았지만 무예를 닦는 일에 더욱 정진했다. 김체건이 과거에 합격한 지 겨우 3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청나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와 조정은 비빈들을 강화도로 피신시키고 인조와 대신들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결사항쟁을 하기 시작했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처절한 항쟁을 벌였지만 끝내는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해야만 했다.

 

무과에 합격했으나 말단 군교에 지나지 않았던 김체건은 청나라군과 잘 싸울 수가 없었다.  그는 청나라와 변변하게 전투조차 치르지 못하고 항복한 조정에 낙담했다. '우리나라는 공자와 맹자만을 숭상하여 국난을 만나자 치욕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무력한 조정에 실망하여 군교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왜관에 침투해서 왜검을 배웠다.

 

 

김체건은 왜검을 배운 뒤에 조선의 유력한 검사들과 비무를 했으나 신통치 않았다. 무언가가 그의 가슴에 채워지지 않았다. '왜관에 있는 자들은 하수에 지나지 않는다. 왜검의 정수는 일본에 있다'고 생각한 그는 일본에 가서 검술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일본에서 검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일본어와 일본 풍습에 능숙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왜관에 가서 수년 동안 일본인들과 생활하며  일본어를 배웠다. 그리고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상선에 몸을 실었다.

 

그의 꿈은 조선 최고의 검객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김체건은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검술을 배웠다. 일본 최고의 검술을 배우려는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여러 해가 지나자 김체건의 검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일본에서도 그를 능가하는 무사를 찾기가 어려웠다.

 

 

김체건은 조선으로 돌아와 아들 김광택에게 검술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왜검을 자기 것으로 만든 그는 보세, 수세, 공세의 기본동작을 하나하나 연구해서 조선 검법을 완성했다. 그의 눈빛은 깊고 우묵하고 걸음걸이는 춤을 추듯이 가벼웠다. 김체건의 검술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방외의 검사(劍士)들이 찾아와 토론하기도 하고 비무(比武)를 하기도 했다

 

김체건은 실록에서 숙종 23년(1697) 1월 10일 운부(雲浮) 역모사건에서 별무사로 등장하고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검선이라고까지 불린 그의 활약이 실록에서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것은 당시 무인들이 시대의 아웃사이더였기 때문이다. 삼국시대는 무(武)가 나라를 이끌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하게 전쟁을 하고 있었던 탓에 무가 통치의 핵심수단이었고 무인들이 전면에 있었다. 고려 역시 후삼국시대를 거쳐 개국했기 때문에 태조 왕건부터 군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면서 고려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도입했다. 유교는 무를 억제하고 문을 숭상했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당당하게 나라를 이끌었던 무인들이 조선에서는 언제나 무인들이 천대를 받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