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최민식 천문: 하늘에 묻는다-하늘에 묻고 싶었던 게 뭘까?
한석규와 최민식 주연의 [천문: 하늘에 묻는다](허진호 감독)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과 조선 최고의 기술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관노로 태어났지만 세종으부터 큰 신임을 얻어 면천하고 종3품 대호군에까지 오른 장영실은 세종과 20년간 꿈을 함께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한석규가 세종대왕 역을, 최민식이 장영실 역을 맡았습니다.
장영실에 관한 스토리는 연전에 드라마로도 방영된 적이 있는데, 그때는 김상경이 세종 역을, 송일국이 장영실 역을 맡아했었습니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아서 영화에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기대에는 못 미쳤네요. 장영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한석규 최민식 천문: 하늘에 묻는다 - 하늘에 묻고 싶었던 게 뭘까?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장영실의 재주를 눈여겨본 세종은 즉위 후 정5품 행사직을 하사하며 본격적으로 장영실과 함께 조선만의 하늘과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천문 의기들을 만들어나갔다. 특히 조선시대 경제발전에 있어 농업이 가장 중요했던 만큼 날씨와 계절의 정보를 정확히 알아야 했기에 과학기구의 발명은 필수적이었고, 장영실은 이러한 세종의 꿈을 이뤄내며 엄청난 신분 차이를 뛰어넘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러닝타임 132분이 너무 길고 지루한데다 흐름이 느려서 깜빡 졸 뻔하기까지 했다. 장영실의 업적을 기리면서 조선을 위해 그와 세종이 한 일들을 하나씩 잘 풀어나간 명품 사극이 되기를 기대했는데, 초반부에만 자격루, 혼천의, 앙부일구 등 천문기구를 만드는 장면들이 나올 뿐이었다.
그 후로는 세종이 탄 가마가 부서진 안여 사건을 둘러싼 왕과 조정의 갈등과 분열, 지나칠 만큼 왕의 신임을 얻은 장영실에 대한 중신들의 모함과 시기, 명나라와 세종, 중신들간의 대결 등이 잔뜩 무게가 들어간 채 어둡게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세종과 장영실의 도를 넘은 끈끈한 우정(? 애정?)에 초점이 맞춰져 과연 영화의 제목인 <천문:하늘에 묻는다>를 통해 이 영화가 하늘에 묻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애매모호해졌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한석규는 역시나 연기의 달인답게 세종대왕 역을 잘해주었다. 목소리 톤이며 늘 짓는 약간 시크한 표정은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왕 역할에 관한 한 한석규만한 배우가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영의정 신구도 종종 등장하여 스토리의 중심에 서서 균형을 잘 잡아주었고, 조선의 왕보다 명나라의 왕을 더 섬긴다고 세종으로부터 난데없이 욕설까지 들은 김태우도 얄미우리만큼 제 몫을 확실하게 해준 것 같다.
최민식은 좀 아쉬웠다. 아니, 많이 아쉬웠다. 영화 전반을 통해 캐릭터의 일관성도 없었고, 최민식 하면 떠오르게 마련인 동일한 연기 패턴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영화 [취화선]의 기인 장승업마저 연상케 했다. [명량]이나 [대호]에서의 최민식도 떠오르고. 면천을 해준 것만도 감지덕지하며 늘 쭈삣쭈삣 눈치를 보던 소심한 그가 별안간 명나라 사신 앞에서 오줌을 싸갈기는 대장부의 모습을 보이는가 하면, 세종 앞에서는 다소곳한 표정으로 "저를 잊으신 줄만 알았사옵니다"느니 "곁에만 있게 해주셔도 감사하옵니다"라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뱉을 때는 기함을 할 뻔했다.
두 사람의 합이 잘 맞아 조선을 위해 천문기구를 만드는 데 온힘을 다 기울인 것은 알고 있었건만, 그 합이 너무 감정과잉으로 흘러 마치 연인 사이에서나 볼 법한 말과 행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들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스토리도 없었기에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명나라의 속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썼던 세종. 천문기구도 못 만들게 하고, 글자를 만드는 일은 더더욱 꿈도 못 꾸었을 당시에 조선이라는 한 나라로 우뚝 서고자 밤낮으로 고심한 세종의 피맺힌 절규는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훈민정음이라는 글자를 만드는 일과 장영실의 삶을 맞바꾼 일은 좀 너무 나간 게 아닐까? 역사적 기록이 없으니 픽션을 가미하여 재미를 돋구고 장영실과 세종이 그만큼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알리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과정 또한 자연스럽게 납득이 갈 만한 스토리가 받쳐주질 않아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역사적 왜곡도 좀 염려되고.
영화는 일단 재미있고 볼 일이다. 아무리 믿보배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또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 해도 보면서 하품이 나고 딴 생각을 하게 하거나 어서 끝나기를 바라게 만든다면 꽝이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뭘 봤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영화도 제법 많지만, 그래도 두 시간 남짓 영화관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그 재미를 책임져 줘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러닝타임이 길다고 해서 재미가 없거나 지루한 것만은 아니다. 세 시간, 네 시간씩 돼도 언제 시간이 흘러갔는지 모르겠는 영화도 많으니까.
[천문: 하늘에 묻는다]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스토리로만 펼쳐졌어도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은데, 너무 묘한 방향으로 가지치기를 한 결과가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킨 것 같다. 세종과 장영실의 이상야릇하게 느껴지는 브로맨스라니, 천문기구를 만드는 일에 대한 두 사람의 순수한 열망과 열정에 자칫 흠집을 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설마 두 사람의 애틋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하늘에 묻고 싶었던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이상, 한석규 최민식 천문: 하늘에 묻는다 - 하늘에 묻고 싶었던 게 뭘까?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