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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유해진 윤계상의 말모이 말과 글, 이름을 잃으면 얼도 빼앗긴다

유해진 윤계상의 말모이 말과 글, 이름을 잃으면 얼도 잃는다

 

유해진, 윤계상 주연의 [말모이]는 우리말이 금지된 1940년대에 말을 지켜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의 작품이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자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는 우리말, 즉 조선어 사용과 교육을 금지하고 ‘국어’시간에는 일본어를 가르쳤다. 조선인이니 국어라면 당연히 조선어여야 하거늘 일본어를 국어로 쓰도록 만든 것이다.  

 

이렇듯 점점 더 극악해져 가자 독립운동을 하는 지식인인 조선어학회 대표(윤계상)과 그 회원들은 일제의 감시망을 피해 남몰래 '말모으기'에 힘을 쏟는다. 이 조선어학회에 전과자 출신의 까막눈 판수(유해진)가 사환으로 취직해 들어와 좌충우돌하면서 우리말 사랑과 아버지로서의 자부심에 눈을 떠가는 과정이 흥미로우면서도 눈물겹다.

 

유해진 윤계상의 말모이 말과 글, 이름을 잃으면 얼도 빼앗긴다

 

한일합방이 있은 지 올해로 110년, 광복 후 독립을 맞은 지 올해로 74주년, 일제식민지로 지낸 세월이 36년이다. 일제식민지 삶을 살게 된 지 30여 년이 흐르자 그 동안 조선 독립을 굳게 믿어왔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희망을 잃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 동안 미루고 미뤄왔던 창씨개명에 동참한다. 스스로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만일 지금까지도 우리나라가 독립이 안 된 채로 살아왔다면 지금 일본 말과 일본 글을 쓰고 일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 머리털이 쭈뼛해졌다. 물론 그때 독립이 되지 않았더라도 그 후 어떤 방법으로든 독립을 이루었을 거라고 믿지만, 8.15광복이 온전히 우리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니 어떤 상황으로 전개돼 왔을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가? 어떤 핍박에도, 아니, 핍박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민족 아닌가? 그것을 일본놈들은 뽑아도 뽑아도 또 자라나는 잡초 같은 놈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근성이 강한 것이 우리 민족이다.  와중에 일본놈들에게 빌붙어 제 사리사욕 채우기에 바빴던 사람들도 분명 있었지만 말이다. 

 

유해진 윤계상의 말모이 말과 글, 이름을 잃으면 얼도 빼앗긴다

 

말과 글, 이름을 잃으면 얼을 빼앗기는 게 당연하다. 하긴 집에서도 일본어로 대화를 주고받고, 학교에서도 일본어로 교육을 받고, 또 일본이름을 갖게 된다면, 그리고 그 세월이 길어진다면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으로서의 정신을 갖게 될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일본놈들은 조선인들의 정신을 개조하고자 그토록 일본 말과 글, 그리고 창씨개명에 혈안이 됐었던 것이다.

 

그러니 조선 독립이라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그런 짙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자 갖은 곤욕을 다 치러낸 분들의 노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분들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 한글이 잊혀지지 않을 수 있었고 또 현재 남의 나라 말이 아닌 우리말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역시 유해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해진이 없었더라면 침울하고 단조로운 스토리의 연속이어서 자칫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듯한 느낌이었을 텐데, 유해진이 등장해서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멋드러지게 쳐주는 바람에 역사공부를 하는 느낌이 들었을 법도 한 시간을 생기와 활력으로 넘치게 해주었다.    

 

잔잔한 유머 속에 우리말과 우리글 사랑,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잘 버무려서 맛깔스럽게 빚어낸 [말모이]. 김성제 감독[소수의견]에서처럼 유해진과 윤계상의 조합이 이뤄낸 또 하나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말모이'란 단어가 생소한데, '말을 모은 것(책)’이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이며 1910년경 주시경 선생님 등이 조선 광문회에서 편찬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유해진이 영화 속에서도 "말모이인지 소모이인지는 모르겠지만"라고 말했듯이, 처음 이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식의 소치로 '말의 모이'인가 생각했었다. (ㅎㅎ)

 

이상, 유해진 윤계상의 [말모이] 말과 글, 이름을 잃으면 얼도 빼앗긴다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