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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범죄 수준의 큰 죄든 사소한 잘못이든 자신이 얼마나 큰 죄 혹은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똑같은 꼴(?)을 겪게 해주는 게 아닐까.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으로 맞서는 것이다.

 

하지만 "눈에는 눈으로 대항한다면, 세상은 온통 눈먼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라고 간디도 말했듯이, 그건 아주 단순무식한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법치국가에서는 당연히 법에 따라 죄의 경중과 잘잘못을 심판하고 따지는 게 맞다.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 애니메이션 [목소리의의 형태](마다 나오코 감독)에서 남자 주인공 이시다 쇼야는 바로 그런 단순무식하달 수 있는 가혹한 벌을 받는다. 왕따의 가해자였던 그가 왕따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왕따의 피해자가 되어 갖은 수모와 굴욕을 겪고서야 그는 자신이 어린아이의 장난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지나칠 만큼 괴롭혔던 니시미아 쇼코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알게 되고, 귀가 어두워 잘 듣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쇼코를 놀렸던 자신에 대해 죽고 싶을 만큼 수치심을 느낀다. 

 

실제로 그는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기까지 하지만, 그 후 어렵게나마 좋은 방향으로 일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그와 쇼코, 그리고 친구들의 진심어린 노력으로 영화는 해피엔딩을 맞게 된다. 

 

전 세계 70억 인구라지만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목소리 또한 같은 사람이 없다는 것은 참 신기하고도 신비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서 상대를 따돌리거나 배척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상대가 나와 다른 목소리를 가진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따돌림당해야 할 이유도 없고, 또 어떤 이유로든 따돌리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인 듯하다.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목소리의 형태]의 주인공 이시다에게 벌어졌던 정도는 아니어도 어느 날 뜬금없이, 그리고 느닷없이 과거의 부끄러운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는 적이 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실수를 했거나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던 일이 생생히 생각나면서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남몰래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물론 이제 와서 돌이키거나 바로잡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설혹 그 상대가 가까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사과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새삼 그 일을 끄집어내기는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하루빨리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뒤늦게나마 사과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면서. 

 

왜냐하면 이시다가 왕따의 피해자가 되어 그런 고통을 느끼게 되지 않았더라도 쇼코에게 저지른 자기 잘못을 깨달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기 때문이다. 아무 일 없이 평소대로 삶이 흘러갔더라면 쇼코의 심정쯤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평생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문득 리테쉬 바트라 감독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이 영화의 주인공 토니 웹스터(짐 브로드벤트)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겐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첫사랑의 여인 베로니카(샬롯 램플링)의 삶을 자신이 완전히 망가뜨려놓았는데도 전혀 모른 채 잘만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하는 그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그 편지에는 놀랍게도 까맣게 잊고 지냈던 첫사랑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과 그 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담겨 있었다. 그에게 일기장을 남기고 떠난다는 유언이었다.

 

 

토니는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일기장을 받으려고 베로니카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만나 마냥 기뻐하는 그와는 달리 베로니카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어머니의 일기장은 줄 수 없다면서 대신 다른 편지 한 통을 건넨다.  

 

그 편지를 받아 읽어내려가던 그는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혼란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당시 베로니카 곁에 있던 남자 아드리안에 대해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 편지를 써보낸 적이 있음을 기억해 낸다. 아드리안에게 베로니카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격한 심정을 토로했던 것인 만큼 갖은 추측성의 추문과 욕설마저 담긴 추하디 추한 편지였다.

  

 

문제는 토니 자신은 편지를 써보냈던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베로니카는 그 편지로 큰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 혼자 살면서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녀를 첫사랑의 여인으로만 기억하고 다시 만나게 되는 것만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여인의 삶이 자신의 편지로 인해 절망적인 파국에 이르렀는데도 새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현실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자신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일로 누군가가 자신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거나 혹은 예전 제자나 직원, 친구가 찾아와 복수를 하겠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일 등이 그런 경우다.  

 

그러고 보면 삶이란 인간관계라는 살얼음판을 조심스레 걸어나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매일 숨죽이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평소 누구를 대하든 기본적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하는 마음은 가져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목소리가 다르듯 성격도 개성도 다 다른 사람들과 불화 없이 살아가는 길이다. 특히 누군가를 왕따시키거나 하는 갑질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상대의 가슴에 남기는 일이다.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이다. '마지막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제목과는 좀 뉘앙스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뭔가 느낌이 이상하긴 했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 아, 그렇다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듯도 하다. 의식적으로는 아니었어도 무의식에서는 '그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것'으로 풀이될 수도 있으니까. 결국 제목을 잘 지은 셈인가?

 

영국의 국민배우라 일컬어지는 짐 브로드벤트샬롯 램플링이 출연하고 아름다운 음악, 밀레니엄 브리지부터 테이트 모던 미술관까지 영국 명소들이 펼쳐지는 이 영화는 사실 [목소리의 형태]에 붙여 후기를 쓰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특히 중년을 넘어 노년에 이르러서도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와 한 인간으로서의 꼿꼿한 의연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샬롯 램플링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짐 브로드벤트는 무신경하고 무책임하고 제멋대로인 노년의 남성 모습을 짜증이 나리만큼 잘 표현해 주었다.

   

이상,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 /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