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의 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감옥에서 보낸 12년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좁고 지저분하고 황량한 독방으로 쫓기듯 들어간 호세 무히카(안토니오 데 라 토레)를 맞은 것은 바로 "여기 들어온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고 벽에 씌어진 글귀였다. 안 그래도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희망이 바닥을 친 상태일 텐데, 이 글귀를 보는 순간 앞으로 얼마나 암울하고 가혹하기 짝이 없는 날들이 펼쳐질지 좌절감부터 앞서게 될 게 분명하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인 [12년의 밤](알바로 브레히너 감독)은 이런 차디찬 감방을 몇 군데나 전전하며 12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와 그의 동지 등 실존인물들의 처절한 삶을 그리고 있다.
우루과이의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투파마로스 게릴라단을 이끌던 호세 무히카는 어느 날 급습한 군인들에 의해 체포돼 감옥으로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감방에서 나날이 초췌해지고, 나날이 머리와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급기야는 끼니라고 담아 던져준 접시를 바닥까지 핥아먹을 만큼 배고픔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낸다.
'쥐새끼'가 이름이 돼버린 사람, 감옥을 옮겨갈 때마다 눈을 가리워 아무것도 볼 수 없고, 독방에서의 가없는 외로움에 지쳐 지나가는 개미와도 노니는 사람, 천장에 뚫린 창살 구멍 사이로 내려준 밥도 허겁지겁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 그는 옆방의 벽을 두드려 단어를 만들어가며 함께 감옥으로 체포돼 들어온 동지와 대화를 나눈다.
동지와 손가락 마디를 두드려 만든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그 얼굴 위에 짧은 미소가 환하게 떠오르는 행복한 표정을 보니, 처연한 느낌이 들면서도 역시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함께할 때 비로소 더 인간다워지고 더 행복해지는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벽을 두드려댄 바람에 손마디에 굳은살이 배길망정 말이다.
1973년에 체포돼 1985년에 석방되기까지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을 독방에서 그와 동지들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었을까? 특별히 가혹한 고문 장면도 없이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는' 나날을 견뎌내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턱 막혀오면서 미쳐버리지 않는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고가면서 간수가 "나 같으면 차라리 자살해 버리겠다"는 말을 툭툭 내뱉을 때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안 그래도 미칠 것 같은 심정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충동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아슬아슬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기어이 살아냈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체포된 들어온 지 10년쯤 됐을 무렵 세 사람은 서로 만나는데,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감옥 안뜰에서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모습이나마 서로 살아냈음을 확인하고는 봄꽃 같은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피어나던 모습을 볼 때는 울컥해져 눈물이 핑 돌았다.
감옥에서 12년을 보내면서도 마지막 즈음엔 안뜰에 나갔을 때 가져온 꽃씨를 요강에 심어 꽃을 피워내고, 주방에서는 다음에 먹으러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제 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하는 선한 마음을 잃지 않던 그들이다.
특히 호세 무히카는 1985년 감옥에서 나온 후 2010년에는 75세의 고령의 나이로 대통령에 오르기까지 했으니 가히 인간 승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삶의 의미 하나만을 붙잡은 채 그 참혹한 세월을 살아낸 로고 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을 떠올리게 하는 호세 무히카다.
호세 무히카의 어머니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긴 세월 동안 몇 차례나 감옥을 옮겨갔음에도 기어이 옮겨간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 아들을 만나고 격려하며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해준 어머니다. 어머니가 아니고 누가 그럴 수 있으랴.
다음은 12년의 밤을 보낸 후 호세 무히카 대통령의 삶을 간략히 정리해 본 것이다.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전 대통령
남미에서 1인당 GDP가 가장 높은 우루과이 대통령이지만 그가 공식적으로 신고한 전 재산은 1987년식 비틀 자동차 한 대뿐이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치적 비리가 단 한 건도 없는 정치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2012년 겨울에는 추위가 닥치자 대통령 관저를 노숙자들에게 내주고 자신은 수도 몬테비데오 근교에 있는 아내 소유의 농장에서 출퇴근하면서 대통령 월급 중 90퍼센트를 기부했다.
그는 자신을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해외 취재진들에게 “우루과이의 대다수 시민들도 이와 다를 바 없이 생활한다. 사람들이 나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전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가난한 사람이란 사치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느라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가진 재산이 많지 않다면 가진 것을 유지하려고 노예처럼 일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위한 시간은 더 많아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호세 무히카 대통령 덕분에 우루과이는 중남미에서 칠레 다음으로 부패가 적은 나라가 되고, 삶의 질적인 성장도 아르헨티나 다음으로 높은 나라가 되었다. 그 후 2015년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우루과이 국민들의 사랑은 여전히 대단해서 퇴임하는 순간까지도 지지율이 65퍼센트에 이르렀다. 그 후 그는 상원의원으로 정치활동을 계속하지만 그마저도 지난해 8월 사임했는데, "하지만 내 마음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한 연대와 이념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며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이상, 12년의 밤 우루과이 전 대통령 호세 무히카가 감옥에서 보낸 12년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