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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이엘리야의 달콤씁쓸 로맨스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이엘리야의 달콤씁쓸 로맨스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이엘리야의 달콤씁쓸 로맨스

 

가족드라마를 표방한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의 단골메뉴 중 하나는 자식의 사랑 문제 혹은 결혼 문제다. 집안형편이며 학벌, 직업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대체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교제를 하거나 결혼해야 한다는 것을 내세워 부모의 극심한 반대를 갈등구조로 삼는 구태의연한 스토리를 곰국처럼 지치지도 않고 우려먹는 것이다. (때로는 사별을 했거나 이혼한 부모의 재혼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 자식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펼쳐져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도대체 왜 성인남녀의 결혼에 부모들,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그토록 쌍심지를 켜고 나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 자기 자식이 잘났다고 생각한다면, 혹은 자신이 자식을 잘 키워놨다고 자부한다면, 그 자식의 안목을 믿어주는 것이 옳은 일일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늘상 그렇고 그런 레퍼토리에 시청자들이 싫증을 내든 말든 그런 드라마에서는 단지 자신의 아들 혹은 딸과 사귄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거나 심하면 가히 행패라 할 만큼 굴욕을 겪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이엘리야의 달콤씁쓸 로맨스

 

그런데 부모가 자식들 일에 필사적으로 끼어드는 건 또 부모이니까 그렇다 쳐도, 비록 드라마에서일망정 부모도 아닌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의 로맨스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일은 또 처음 보았다. JTBC의 법정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나오는 법원의 부장판사 배곤대(이원종)가 바로 그 인물이다.

 

배부장은 자신의 우배석인 정보왕 판사(류덕환)가 속기사 이도연(이엘리야)과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자 불같이 화를 내며 두 사람의 로맨스에 찬물을 끼얹고 나선다. "쪽팔려서 죽겠다"면서 말이다. 쪽팔리다니, 판사는 속기사와 사랑을 해서도 안 되거니와 결혼도 금지한다는 조항이 법조문 어디에 적혀 있기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이 무슨 해괴망측한 행동인지 납득이 안 간다. 또 다른 형태의 황당하고 심각한 갑질이라고 할밖에.

 

 

이런 편협되고 왜곡된 사고를 가진 판사라면 그 판결의 공정성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직업이 시원찮거나 별로 가진 게 없는 피고인은 그 이유만으로 재판에 불이익을 받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슬며시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하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이런 차별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며칠 후 정판사가 이도연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배부장은 또다시 잔뜩 열받은 표정으로 "그렇게 알아듣게 말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정판사는 당당하게 "사귀는 사람과 같이 퇴근하려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이어서 "판사답게 행동하라고 하셨죠? 판사다운 것은 불합리한 선입견이나 억압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 그게 진짜 판사다운 것 아닙니까?"라고 반박한다.

 

고맙게도 박차오름 판사(고아라)와 임바른 판사(김명수)도 곁에서 "정판사 말이 맞다"며 그를 응원해 준다. 이어서 임판사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정판사를 바라보며 "불의를 잘 참고 자신에게 관대하던 너 맞냐?" 하고 농담하듯 묻는다. 불의에 적극 대항하고 자신에게는 엄격한 것이 특히 판사가 지닐 소신이어야 하거늘, 평소 혹여나 앞에 나섰다가 공연히 손해보는 일을 당하지는 않을까 늘 몸을 사려오던 정판사였던 것이다.

 

임판사의 우스갯말에 정판사는 환환 표정으로 "그게 다 사랑의 힘이다"라고 대답한다. 하긴 사랑의 힘은 나이도 국경도 초월한다고 하니까. 판사와 속기사라는 신분쯤 못 뛰어넘을 리 없겠지. 아무튼 "사랑은 달콤한 꽃, 그러나 그것을 따기 위해서는 벼랑 끝까지 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스탕달의 말을 몸소 실천에 옮기기 위해 결연히 행동에 나선 정판사다.  

 

 

직속상관인 배부장이 펄펄 뛰거나 말거나, 법원 동료들이 뒤에서 쑤군거리거나 말거나 둘만의 로맨스를 지켜나가는 류덕환과 이엘리야의 사랑이 귀엽고 훈훈하다. 그저 배부장의 씁쓸한 오지랖 충고가 옥의 티라면 티랄까..  

 

정판사 역을 맡은 류덕환은 아역배우 출신이라는 거추장스럽다면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는 꼬리표를 깔끔하게 떼어버리고 댄디한 청년으로 변신한 모습으로 등장해 보기 좋았다. 이엘리야 역시 [작은 신의 아이들] 등 여러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리 큰 반응을 얻지는 못한 듯한데, [미스 함무라비]에서는 시크한 매력을 지닌 속기사로 류덕환의 마음을 꼼짝 못하게 사로잡는 매혹적인 존재감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아마 이 두 사람이 곧 달콤씁쓸한 로맨스가 아니라 달콤하고 달달하기만 한 로맨스를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상, 미스 함무라비 류덕환 이엘리야의 달콤씁쓸 로맨스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