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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미스 함무라비 가온(김욱) 본드 중독이 아니라 외로움 중독이었다

미스 함무라비 가온(김욱) 본드 중독이 아니라 외로움 중독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범죄자들을 보면 어릴때 부모로부터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거나 폭력을 당한 경우가 많다. 물론 현실에서도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어린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로부터 아무리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모자랄 어린시절을 학대와 폭력의 공포 속에서 보내게 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면 역시 자신이 받은 그대로 자기 아이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른바 '폭력의 대물림'이다.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 어느 때 몽둥이가 휘둘러질지 몰라 늘 전전긍긍하며 지내야 하는 이 아이들은 때로는 그 공포가 극에 달하면 속으로 부모가 어디론가 제발 사라져 버리거나, 심지어는 죽어버려도 좋으니 어서 이 만행이 끝나기를 간절히 빌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도때도없이 끔찍한 폭력이나 휘둘러대는 부모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미스 함무라비 가온(김욱) 본드 중독이 아니라 외로움 중독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모의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어린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아 불행한 삶을 사는 아이들도 있다. 이 중에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들도 있고, 서너 살 혹은 대여섯 살 즈음에 버려진 아이들도 있는데, 어떤 경우든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에게 버림받은 뼈아픈 상처는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을 잔인한 아픔일 게 분명하다. 

 

그 때문에 부모라는 존재 자체에 목말라 있는 이 아이들은 부모의 부재에서 오는 상실감과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기보다는,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라도 좋으니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할지도 모른다. 없느니만 못한 부모일망정, 부모라는 울타리가 없다는 이유로 헐벗고 굶주린 채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삶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터이기 때문이다. 부모 없는 설움만큼 큰 설움도 없을 테니 말이다. 

 

미스 함무라비 가온(김욱) 본드 중독이 아니라 외로움 중독이었다

 

JTBC 법정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11회에서는 이처럼 엄마에게서 버려진 채 늘 엄마를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이가온(김욱)을 통해 본드 중독의 심각성을 알리는 이야기를 다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해서 더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밤마다 고물상에 숨어들어가 물건을 훔쳐가는 가온. 그것도 값나가는 구리전선만 골라서 훔쳐가는 통에 피해가 막심하다며 고물상 주인이 가온을 돌보고 있는 목사님을 고소해 법정에 서게 된다. 화가 잔뜩 난 고물상 주인은 동네 상인들치고 저놈한테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아직 보호받아야 할 어린 가온을 안쓰럽게 여긴 박차오름 판사(고아라)의 의견을 받아들인 한세상 부장판사(성동일)는 조정을 거친 후 다시 판결을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정을 하는 중에도 가온은 마치 딴 세상에 있는 것처럼 휴대폰으로 게임만 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제발 게임 그만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해도 들은 척도 안 한다.

 

그 모습에 화가 난 고물상 주인은 "쟤가 원래 저런 놈이다. 게다가 저런 불량한 놈이 셋이나 더 있다"고 말한다. 그 말에 목사님은 “죄송하지만, 저희 아이들 학교에도 열심히 다니고 배달일도 열심히 합니다” 하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만, 고물상 주인은 코웃음을 치며 "'목사님도 참 답답하십니다. 동네사람들이 목사님 보고 뭐라고 그러는지 아십니까? 도둑고양이를 데려다 기르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저 녀석을 내보내든지 목사님이 떠나주시든지 양단간에 결단을 내려주십시오"라고 잘라말한다. 

 

목사님은 실의에 빠진 표정으로 우리가 대체 어디로 가느냐고 대답하지만, 고물상 사장은 저놈은 구제불능이니, 어디 소년원에라도 처넣든지 교도소에라도 보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 후 박판사와 따로 마주앉은 목사님은 아무래도 난 목사 자격이 없는 것 같다며 자괴감 섞인 말을 한다. 하지만 박판사는 "무슨 말씀이시냐, 오갈 데 없는 애들을 여러 명 돌보고 계시지 않느냐, 그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느냐"며 목사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목사님의 말에 따르면, 여러 아이들 중에서도 가온을 특별히 더 예뻐했다고 한다. 똑똑하고 착한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천사 같던 녀석이 점점 더 망가져 가는 것을 몇 년에 걸쳐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바로 본드 중독 때문이다. 성가대에서 노래도 하고 공부도 곧잘 하던 가온,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큐 검사를 했을 때 140이 넘게 나왔던 가온이다. 

 

"그런데 지금은 100도 안 될 겁니다. 본드는 가장 싼 마약입니다. 뇌를 망가뜨리고 시신경도 훼손시키죠. 심해지면 말도 제대로 못하고 밤에 앞도 잘 못 봅니다. 저와 같이 있던 녀석 하나는 본드를 분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그만 죽기도 했지요"라는 목사님의 말이 이어진다. 

 

본드의 유해성에 놀란 박판사는 본드 부는 아이들을 찾아나선다. 그 아이들을 만나 맛있는 것도 사먹이고 마음도 다독거리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철물점에서 싼 값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이 본드였다. 청소년한테 팔면 불법인데도 아랑곳없이 쉽고 싸게 공업용 본드를 구할 수 있다는 말에 놀란 박판사는 임바른 판사(김명수)와 함께 가온이 머무는 교회를 찾아간다

 

 

알고 보니 가온은 어릴적에 인형뽑기방에서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였다. 아이를 버리기로 작정한 엄마는 동전을 잔뜩 바꿔 가온 옆에 놓아주고는 사라져버린다. 재미나게 인형뽑기를 하다가 동전이 다 떨어지고서야 옆에 엄마가 없는 것을 알아차린 가온은 벌떡 일어나 "엄마! 엄마!" 하고 애타게 불러보지만, 엄마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리고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엄마를 볼 수 없게 된 가엾은 가온이다.

 

가온이 그렇게 버려졌다는 것을 알게 된 박판사는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임판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 따위일까요?" 하고 한탄하면서도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법"이라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 후 박판사는 문구점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본드를 판 주인들을 향해 "당신들이 아이들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엄포를 놓기도 하고 제발 아이들 생각을 해서 본드를 팔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듯 부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수석판사를 찾아가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결과 ‘본드 중독 소년 문제 유관기관 대책회의가 열리기에 이른다. 이 중에는 "이가온은 구제불능"이라며 난색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본드 중독은 처벌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또 중독은 의지만으로 극복하기는 어려우니 중독될 물건을 미리 차단해야 한다, 특히 공업용 본드에 강력한 독성이 있는 '톨루엔'(toluene)이라는 넣지 않도록 표준을 만드는 것이 확실한 방법이다"라는 데 합의한다. 

 

 

하지만 그 사이에 가온은 또 구리전선을 훔치고 어디론가 숨어버린다. 구리전선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고물상 주인은 또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박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고, 박판사는 모습을 감춰버린 가온을 찾아 여기저기 거리를 헤맨다. 그리고 얼마 후 인형뽑기방에서 인형을 뽑고 있는 가온을 보게 된다.

 

"가온아!" 하고 부르며 달려오는 박판사를 본 가온은 저도 모르게 "엄마!" 하고 외치며 박판사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그는 무의식 속에서 엄마가 사라졌던 그곳에서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인형뽑기를 계속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느라 그 동안 내내 구리전선을 훔쳐왔던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본드를 불면 엄마 얼굴을 떠올릴 수 있어서 차츰 본드 중독이 되어갔던 건 아니었을까? 물론 아이에겐 절대적 존재인 엄마의 부재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그 애끊는 심정을 헤아릴 수 없겠지만 말이다.  

 

 

온 세상 슬픔을 다 끌어안고 살고 있는 가엾은 가온에게 박판사는 본드를 불면 엄마가 보이느냐고 물으면서 자신의 엄마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금 병원에 있고, 자기를 알아보지도 못한다, 아마 앞으로 영영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박판사의 말에 어머니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가온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동병상련의 아픔의 느끼고 마음을 연다.

 

그 후 법정으로 돌아온 박판사는 보호감찰관에게 "가온이는 본드에 중독된 게 아니라 외로움에 중독된 거다. 이 아이한테는 소년원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가족이 필요한 거다"라며 다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그리고 임판사, 목사님 등과 함께 박판사는 본드를 만드는 공장이 있는 험한 산골로 간다. 톨루엔 함량이 가장 높은 본드를 만드는 공장을 찾아나선 것이다. 하지만 박판사 일행을 본 사장은 "이렇게 무작정 공장으로 쳐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 아이들에게 팔려고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내게 이러느냐"며 화를 낸다.

 

하지만 박판사는 물러서지 않고 휴대폰에 저장된 가온의 사진을 사장에게 보여주며 "본드를 부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장님 아드님하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다. 특히 이 아이는 본드를 불긴 전엔  아이큐가 140이 넘던 아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시신경이 훼손되고, 혓바닥이 갈라져서 피가 나고, 세상 어떤 것에도 흥미가 없어져서 하루 온종일 본드만 마시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정부에서도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니 단 몇 달 만이라도, 그게 아니면 본드 부는 아이들이 많은 지역에만이라도 잠시만 공급을 멈춰달라"며 머리를 조아린다.

 

 

말 그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박판사다. 현실에서도 판사들이 이런 역할을 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렇게만 해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또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싶다. 그 동안 이런저런 법정드라마는 많았지만, 판사들의 세계는 언제나 베일에 싸인 듯 피상적으로만 여겨졌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직접 판사직에 몸담고 있는 문유석 판사의 글을 극본으로 한 때문인지 박판사도 그렇고 임판사, 한세상 부장판사도 그렇고, 또 한편에서 멜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정보왕(류덕환)과 이도연(이엘리야)도 그렇고, 그저 엄숙하고 딱딱하게만 보이던 그들도 엄연히 희로애락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좀더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늘 멀뚱멀뚱한 무표정에 남의 말은 들은둥만둥하는 가온이지만, 마음을 풀면 이렇게 환하고 따뜻한 웃음을 지을 수도 있는 아이다. 아니, 어쩌면 마음이 여리고 따뜻한 탓에 더 정에 굶주리고, 그로 인해 본드 중독보다 더 사람을 상하게 하는 외로움 중독이라는 병에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부모가 아니라도 지금처럼 목사님이나 박판사 같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가온을 포기하지 않고 따스한 눈길로 지켜봐준다면, 본드 중독은 물론 외로움 중독에서도 반드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박판사의 할머니(김영옥)가 손녀딸에게 들려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할머니, 판사가 돼서 보니까 세상에 나쁜 놈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절대 반성하지도 않고 절대 물러서지도 않는 놈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라는 박판사의 말에 할머니는 이런 대답을 한다.

 

"할미가 팔십 너머 살다 보니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게 뭔지 아니? 또 제일 깨끗한 것은? 제일 추한 것, 제일 예쁜 것은? 제일 악한 것, 제일 선한 것은? 제일 잔인한 것, 제일 동정심 많은 것은? 그것이 다 사람이더라.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인내심, 그거 하나 배우라고 태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떤 일도 쉽게 포기하지 말거라.”

 

불의 앞에서 절대로 물러설 줄도, 포기할 줄도 모르는 박판사의 강력파워는 바로 할머니에게서 나온 것이었던가 보다. 아픈 엄마는 지금은 딸 얼굴도 못 알아보지만, 이렇듯 지혜롭고 다정한 모습으로 손녀딸 곁을 지켜주는 할머니가 계시다면 엄마의 부재로 인해 외로움 중독에 걸릴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가온에게도 앞으로 박판사가 그런 역할을 해줄 거라고 믿어본다. 

 

이상, 미스 함무라비 가온(김욱) 본드 중독이 아니라 외로움 중독이었다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