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충원군 양인이 양반을 때리는 것은 역리이거늘..
드라마 [역적]에서는 세조의 허물을 들춰내고 다닌다고 해서 연산군(김지석)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귀양을 떠났던 충원군(김정태)이 4년여 만에 다시 돌아와 홍길동(윤균상)과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우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양인이 양반을 때리는 것은 역리이거늘..] 순리를 따르라며 홍길동과 맞선 것이다.
아버지 아모개(김상중)의 뒤를 이어 큰어르신으로 거듭난 길동을 향해 “발판아”라고 부르며 나타난 충원군과 유배지에서 죽어갈 것으로만 알았던 충원군의 등장에 차갑게 얼굴이 굳어지는 길동이 앞으로 어떤 전개를 펼쳐 보여줄지 흥미롭다. .
역적 충원군 양인이 양반을 때리는 것은 역리이거늘..
충원군은 연산군의 용서를 받고 유배에서 돌아와 사배(四拜. 네 번 거듭하여 머리를 조아려 절하는 것으로, 임금이나 문묘의 공자를 대상으로 행함)를 드린다. 좌절감에 빠져 있는 충원군을 다시 일으켜세운 것은 송노인이라고 불리는 송도환(안내상)의 역할이 컸다.
송노인은 충원군에게 자신은 절박한 사람들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 그들에겐 누구도 갖지 못한 미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한 열정이다, 라고 말하며 "누에가 허물을 벗듯 충원군을 벗어야 하오. 새로이 태어날 수 있겠소?" 하며 왕족임을 내세우며 탐욕과 방탕을 일삼던 모습을 버리고 고고한 선비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충원군이 그러겠다고 약속하자 송노인은 연산군을 알현하여 왕족 충원군을 풀어달라는 청을 넣고, 연산군은 "예전에 아바마마께서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가끔 공을 불러 상의하셨다지?" 하며 송노인의 청을 들어준다. 하지만 곧이어 "난 아바마마와는 다르오. 게다가 난 사실 공에 대해 잘 모르오. 그러니 나와 가까워지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하며 일정한 거리를 둔다.
이 송노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드라마상에서도 아직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앞으로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길동의 형인 길현(극중에서는 박화성)이며 충원군, 참봉부인, 참봉부인의 아들 수학(박은석)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배지에서 풀려난 충원군은 송노인을 찾아와 "고맙소. 공 덕분에 유배지에서 나올 수 있었소" 하며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제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하고 묻는다.
그런 충원군을 향해 송노인은 "이 나라 조선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민심이오. 정확히 말하면 양반, 그 중에서도 사내이오. 그 양반 사내들의 민심이 조선의 오늘도 내일도 다가올 수백 년도 결정할 것이오"라며 "그 민심을 잘 이용할 줄만 알면 충원군을 몰락시킨 그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굳이 손에 피를 묻힐 것도 없을 것이오. 충원군의 열정만으로도 그자들을 찢을 수 있소" 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알려준다.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선비의 모습으로 변신한 충원군은 송노인의 말에 따라 수도 한양의 시정 전반을 관할하는 한성부 앞으로 가서 유생들을 거느리고 앉아서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요" 하며 [소학]의 글귀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천한 자가 존귀한 자를 해치는 것이 역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한성부 판관께 아뢰요, 양반과 양인 사이에 다툼이 있었으니 응당 순리를 따라야 할 터인데 어찌 서로가 시비가 일어난 것뿐이라고 덮어주었소? 이는 역리입니다. 역리의 길을 가지 말고 순리의 길을 가소서"라며 예전에 유생 박덕주가 행인과 시비 붙었던 일을 다시 조사하라고 목청을 높인다. 그 행인이란 바로 홍길동의 활빈단 중 한 사람인 끝쇠인데, 결국 자신을 귀양보낸 홍길동에게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한편 "감히 미천한 자, 양인이 존귀한 자, 양반을 때린 것 자체가 역리"라고 주장하는 충원군과 함께 송노인 또한 양동이작전을 펼치듯 마을마다 돌면서 유생들과 백성들에게 일장연설을 한다.
"산에는 높은 봉우리와 계곡에는 깊은 물, 물에는 작은 물과 큰 바다가 있다. 자연이 이러할진대 어찌 인간에게 높고 낮음과 크고 작음이 없겠나.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구분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다.
이런 구분이 없는 세상이란 무질서하고, 무질서란 혼란을 불러오게 마련 해서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을 부리고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나라는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요 이러한 이치가 이루어지면 집안은 저절로 다스려질 것이며 임금은 임금다워지고 신하는 신하다워지고 남편은 남편다워지고 아내는 아내다워질 것이다."
송노인이나 충원군, 참봉부인의 인식이 참 무섭다. 양반이나 왕족에게 대적하는 양인이나 천민들은 역리를 행한 것이니 무조건 응징을 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의 포학한 언행에는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그저 양인이 양반은 때리는 것은 조선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짓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역리를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이리라.
결국 끝쇠는 서윤(한성부의 종4품 관직)이 되어 새로 부임해 온 참봉부인의 아들 수학의 지시에 따라 체포된다. 서윤 수학 또한 "양반과 양인 사이의 다툼은 나라의 기강과 관련된 일"이라며 형장을 내리고 진상을 밝히라고 명령한 것이다.
체포된 끝쇠는 여전히 한성부 앞에 앉아서 "역리를 버리고 순리를 지키라"고 부르짖는 충원군 앞을 지나게 된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한편 끝쇠가 체포돼 간 것을 안 홍길동은 감옥에서 풀려나오게 하려고 바쁘게 움직이는데, 판관 위에 있는 서윤을 만나 청을 넣어도 통하지 않자 서윤 위에 있는 우윤(한성부의 종2품 관직)을 찾아간다. 그리고 우윤에게 책자를 건네며 "마님께서 우리에게 금주령 기간 동안 사드신 날짜와 수량을 기록한 장부책입니다. 마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금주령 기간 동안 술을 드신 양반네들은 전부 파직을 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한다고 들었소" 하고 협박한다.
우윤은 함정을 판 홍길동의 비열한 짓에 분노하지만, 별수없이 서윤을 찾아가 이미 다 처리된 사건이니 다시 건드리지 말라면서 당장 끝쇠를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죄의 유무 혹은 죄의 대소가 양인이냐 양반이냐, 혹은 권력을 가진 자냐 일개 백성이냐에 따라 판가름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인 것일까?
충원군이며 참봉부인, 송노인이 보여주는 행태도 어이가 없지만, 의적으로 일컬어지는 홍길동 또한 결코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기에 씁쓸해진다. 자기 사람인 끝쇠를 감옥에서 빼내기 위해 금주령을 어기고 술을 사마신 우윤을 협박하다니, 시쳇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양반들이나 권력을 쥔 자들이 하는 행태나 뭐가 다를까 싶은 것이다. 앞서 금주령 후 몰래 술을 팔아 번 돈으로 왕의 내탕금을 채워준 짓도 결코 옳은 행태가 아니고 말이다.
이래 가지고서야 어찌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는 도적이 될 수 있을는지.. 설마 의적 홍길동이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불법도 마다하지 않거나, 자신들에게 밉보인 자들에게는 협잡과 함정을 파서라도 가혹하게 복수하거나 응징하는, 그저 기운센 아기장수였을 뿐이었다는 실망감으로 이 드라마가 끝을 맺지는 않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이상, [역적 충원군 양인이 양반을 때리는 것은 역리이거늘]였습니다. 드라마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