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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판도라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살리러 가는 희망 한줌

 

판도라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살리러 가는 희망 한줌

 

 

요즘은 트위터 이용자들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초기에는 140자 글이 째갈째갈 실시간으로 쉴새없이 올라오고, 그 글에 대한 반응도 무척이나 빨라서 사람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어떤 사건이나 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금세 캐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트위터 계정 홍보를 위해 하루에 5차례 정도 서너 개의 명언을 올리곤 했었는데, 짧지만 이마를 탁 치게 만드는 명언에 대한 호응도도 꽤 높았었다.

 

그런데 그 무렵 느낀 것 중 하나는, 다들 좋아하는 명언인데도 <용서>와 <희망>에 대한 글에는 납득하지 못하겠다거나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용서를 하는 것이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위해 좋다'는 의미의 명언에 "말이 쉽지 용서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냐"는 반응이었고, <희망>에 대해서도 "희망을 갖는 게 좋을 줄 누가 모르겠냐, 하지만 도대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희망을 갖지 않겠느냐"는 반응이었다.

 

요컨대 누가 용서하고 싶지 않고, 누가 희망을 갖고 싶지 않겠냐만은 현실적으로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그래도 용서를 하라"느니, "그래도 희망을 가지라"느니 하는 말을 들으면 짜증부터 나고 화가 치민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개개인의 성격상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이유로 용서하기도 힘들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난 요즘, 힘겨운 삶은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뭐 하나 달라진 게 없는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도저히 용서 못할 사람들이 넘쳐나는데도 용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화가 치밀 수밖에 없고, 어디서도 희망 한줌 손에 쥐어보기 어려운 암울한 삶인데도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어쩌겠느냐는 자조섞인 말을 들으면 화가 치밀다 못해 맥이 쑥 빠져버린다. 게다가 용서 못할 짓을 저질러놓고도 자신의 죄를 전혀 깨닫지 못하거나 남 탓만 하는 사람들, 마지막 남은 희망 한줌으로 가까스로 힘을 내어 살아가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한줌 희망마저 앗아가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로 인해 우리네 삶은 더욱 절망의 구렁텅이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만 같다.

 

판도라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살리러 가는 희망 한줌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우스 신이 만든 여자인간 판도라가 열지 말라는 뚜껑을 열었더니 그 속에서 온갖 재앙과 악이 뛰쳐나와 온 세상에 퍼지고, 상자 속에는 희망만이 남았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판도라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준 것이라면서 왜 그렇듯 온갖 재앙과 악이 가득 담긴 상자를 선물로 주었는지 의아한 마음이 든다. 이왕이면 행복, 평화, 사랑 같은 좋은 것, 선한 것만 가득한 상자를 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제우스 신의 뜻을 선의로 생각해 본다면, 판도라를 위해 나쁜 것이란 나쁜 것은 모두 그 상자에 집어넣어 더 이상 어떤 악도 판도라를 괴롭히지 않기를 바랐던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는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경고를 준 것인데,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도 그렇고 상자를 연 판도라도 그렇고, 하지 말라고 하면 기어이 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 것을 몰랐던 게  큰 실수였던 셈이다.

 

아무튼 판도라가 상자를 연 덕분에 그 후 사람들은 갖가지 재앙과 악에 노출된 삶 속에서 그나마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상자 밑바닥에 남아 있던 희망만을 부여안고 살아가게 되고 말았다. 그 희망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들지만, 희망하나만 믿고 살아가기엔 너무도 암울하기 짝이 없는 삶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김남길 주연의 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도 결국 그 마지막 남은 희망 한줌에 관한 이야기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정도로만 스토리를 간략히 소개해 보면,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자력 폭발 사고까지 예고없이 찾아온 초유의 재난 앞에 대한민국은 엄청난 혼란에 휩싸이고 믿고 있던 컨트롤타워마저 사정없이 흔들린다. 방사능 유출의 공포는 점차 극에 달하고 최악의 사태를 유발할 2차 폭발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발전소 직원인 재혁(김남길)과 그의 동료들은 목숨을 건 사투를 시작한다.

 

영화를 통해 원전 폭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것이 하나의 큰 획이라면, 또 하나의 획은 그런 초대형 사고 앞에서 여느사람들이 보여주는 사랑과 희생이다. 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선뜻 죽음의 길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이 한줌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사고가 나자 무작정 도망가기 바쁜 사람들이 더 많다면, 그 도망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내놓는 사람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너무 값싼 대접을 받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든다. 

 

 

다들 목숨을 건지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역시 어머니는 달랐다. 아들 재혁이 발전소의 2차 폭발을 막기 위해 불구덩 속으로 들어간 것을 알자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아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듯이, 엄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김영애만이 할 수 있는 연기로 보여준 것이다. 누구도 엄마의 자식이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크나큰 모성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대통령 역할을 맡은 김명민은 사상 초유의 재난 앞에서 혼란을 겪는 젊은 대통령의 고뇌어린 모습을 명품배우답게 잘 보여주었고, 젊은 대통령을 좌지우지하려는 총리 역할을 맡은 이경영도 냉철한 카리스마로 스토리를 잘 이끌어갔다. 

 

영화를 보면서 독재를 휘두르는 대통령도 문제이지만, 무능하고 무력한 대통령을 쥐락펴락하는 총리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사고가 터지면 위기관리에 대한 변변한 매뉴얼도 없어서 우왕좌왕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책임을 떠넘기고, 희생자들을 제멋대로 정하는 정부와 관련자들의 태도가 너무도 안이하고 무책임해 보여 절망감이 앞섰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저 허접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요행에 기대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원전 폭발사고가 꽤 실감나게 펼쳐지고, 초대형 사고에 맞닥뜨린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꽤나 긴장감 있게 다가오지만, 다 보고 나니 신파가 너무 강해서인지 재난영화가 아니라 가족애를 다룬 가족영화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일단 이런 사고 앞에서 무슨 말들이 그리도 많은지, 답답하고 갑갑했다. 말보다는 표정과 행동으로 위기감과 긴장감을 표현해 주었으면 훨씬 긴박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재난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신파든 뭐든, 가족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을 자기 목숨을 던진 이 사람들 덕분에 이 세상이 그래도 한줌의 희망이나마 잃지 않고 용케 버텨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진정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낙하산 인사의 폐해에 대한 심각성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어떤 사고든 발생한다면 실무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 상황을 이끌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능력은 없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가 좋을 리 없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좋을 리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상상도 못할 사고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더욱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이상, 판도라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살리러 가는 희망 한줌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