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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당신 거기 [살아만] 있어줄래요? 김윤석의 달콤쌉쌀한 시간여행

 

당신 거기 [살아만] 있어줄래요? 김윤석의 달콤쌉쌀한 시간여행 

 

 

요즘도 간혹 <짧고 굵게 사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좋은가>라는 유아틱한 질문을 주고받게 될 때가 있다. 말 그대로 인명은 재천이어서 스스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어떤 삶이 더 좋을까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겠지만, 삶이란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축복이기보다는 불행으로 여겨질 때 한 번쯤 생각해 봄직한 질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삶의 질이냐, 삶의 양이냐>를 따져묻는 것인데,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 흡족한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현실의 삶이 아무리 고단하다 못해 가혹하다 한들 일단은 살아 있어야 희망도 가지고 뭐든 변화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 같다. 선택할 수만 있다면 <가늘어도 좋으니 길게 사는 삶>, 즉 삶의 질보다는 삶의 양을 택할 가능성이 더 많을 거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목숨이 질기다는 말도 나오는 것일 테고, 또 "개똥밭을 뒹굴어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리라.

 

당신 거기 [살아만] 있어줄래요? 김윤석의 달콤쌉쌀한 시간여행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들이 두 달여째 이어지고 있는 요즘 뉴스에 빠져 지내느라 잠시 멀리했던 영화관을 찾았다. 판도라를 볼까 라라랜드를 볼까 망설이다가 막 개봉을 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찜했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을 것 같은 스토리인 듯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전 세계 최초로 영화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더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김윤석 변요한 주연, 홍지영 감독의 판타지 로맨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만약 우리에게 시간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늘 아쉽고 안타깝고 후회스러운 일들이 가득하게 마련인데, 그 중 단 한 가지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된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 선택의 내용이야 백인백색이겠지만, 이 영화에서 수현 역을 맡은 김윤석은 시간여행을 통해 30년 전 교통사고 후 수술 중에 세상을 떠난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연인 연아(채서진)를 만나 수술을 성공시킴으로써 생명을 되살리고 그 후의 삶을 보장해 주는 선택을 한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줄거리 정도로 간단히 소개해 보면, 현재의 수현(김윤석)은 의료봉사 활동 중 한 소녀의 생명을 구하고, 그 답례로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신비로운 10개의 알약을 받는다.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신비의 알약이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심정으로 알약을 먹은 수현은 순간 잠에 빠져들고, 다시 눈을 떴을 때 30년 전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사랑하는 연아(채서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과거의 수현(변요한)은 우연히 길에 쓰러진 남자를 돕게 된다. 그 남자는 자신이 30년 후의 수현이라고 주장하고, 황당해하는 과거의 수현은 그가 내미는 증거들을 보고 점차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사랑하는 소중한 연인의 목숨이 걸린 일이기에 <과거의 수현>과 <현재의 수현>은 힘을 합치고 최선을 다해 그녀의 생명을 구한다.

 

왠지 꿰어맞춰진 줄거리대로 연기하느라 부자연스러운 면이 좀 엿보이고, 조금 더 음미를 하면서 보면 좋을 것 같은 순간도 지나치게 서두르는 감이 있는 듯했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 따스한 물살처럼 흐르는 듯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시절이 시절인지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주인공들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직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내로라하는 명품배우 김윤석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았고, 과거의 김윤석 역을 맡은 변요한도 씽크로율이 그럴싸해서 크게 무리가 없어보였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배우는 사랑스러운 여주인공 연아 역을 맡은 채서진인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배우 김옥빈의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출연작이 많지 않음에도 사랑에 올인하는 모습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표현해 준 덕분에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연인의 모습을 손색없이 보여주었다. 돌고래 조련사라는 직업도 잘 선택한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신비의 오지 캄보디아가 등장하고, 극중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을 가지고 있는 신비한 노인과 김윤식이 만나는 장면이다. 홍지영 감독은 노인 역할을 소화할 배우를 현지에서 직접 섭외했는데, 수많은 후보를 검토한 끝에 키 190센티미터에 회색 눈빛을 가진 신비한 분위기의 85세 노인을 캐스팅해 흡입력 있는 오프닝 씬을 만들어냈다는 후문이다.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캄보디아에서의 이야기는 대부분 태국 오지에서 촬영됐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의 전경과 독특한 수상가옥을 직접 카메라로 촬영해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다시 영화 줄거리로 돌아가면, 수현은 수술에 성공해서 연아의 생명을 구하고, 연아는 그 후 30년간을 다리를 절룸거리며 바다가 보이는 섬마을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간다. 아니, 홀로 외롭게 살았는지 아니면 홀가분하고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연아 자신만이 아는 일이지만, 목숨보다 더 사랑한 남자와 원치 않은 이별을 한 후 내내 혼자 살아온 듯하니 그 삶이 적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현재의 연아(김성령)는 다행히 혼자라는 것 말고는 그리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 삶을 살고 있는 듯했지만, 굳이 부정적인 생각을 한 번 해본다면 만일 그 30년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불행한 삶이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렇다면 연아의 생명을 구해 그 후의 삶을 이어가게 한 것이 과연 잘한 일이었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삶의 질이냐 아니면 삶의 양이냐>의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짧은 삶이지만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도록 수현의 가슴속에서 시간여행을 한다면 만나고 싶은 단 하나의 여인으로 남는 것이 더 행복할까, 아니면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진다 해도 좋으니 30년이라는 시간을 부여받는 것이 더 좋을까?  

 

 

하지만 이런 질문은 어쩌면 죽음이 얼마나 절망인가를 아직 미처 깨닫지 못하기에 던져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즉 죽음을 헤어짐과 같은 저울에 놓고 그 무게를 가늠해 볼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헤어짐은 언제든 다시 만남을 기약할 수 있지만, 아니, 비록 죽을 때까지 영영 못 만난다 할지라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안고 살아갈 수 있지만, 죽음은 곧 부재를 뜻하기에 이렇듯 시간여행이라는 환상을 빌리지 않고는 두 번 다시 만날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지만 못 만나는 것과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못 만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래서 김윤석은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 인해 두 번 다시 볼 수 없게 된 연아를 되살려내고, 비록 자신과 함께 살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이 세상 어디에선가 살아 숨쉬는 연아의 삶을 선택한 것이리라.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당신 거기 [살아만] 있어줄래요"라는 절절한 사랑의 마음으로 말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죽음만 아니라면 헤어짐 정도야 얼마든지 견뎌내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3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넘어 증명해 보인 것이다. 

 

이상, 당신 거기 [살아만] 있어줄래요? 김윤석의 달콤쌉쌀한 시간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