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정 최다니엘의 치외법권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의 최후
임창정 최다니엘의 치외법권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의 최후
최근에 출간된 성석제의 [블랙박스]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오물을 뒤집어쓰듯 치욕스러운 수모를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박세권이라는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악마라고 해서 진짜 악마는 아니고, 자신의 이름과 같은 한 동네 동생이다. 입에 혀처럼 살가운 태도로 다가온 그는 글쓰기에 활력을 잃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던 작가 대신 조금씩 글을 써주면서 두 사람은 진짜 작가와 대필작가라는 공범관계를 갖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은 대필작가의 글은 마치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생명력이 넘쳐흘렀는데, 그 점이 글 전체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어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하지만 악마와 손을 잡은 그 달콤하지만 비릿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급기야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가짜작가는 단편이 아닌 장편소설에까지 손을 대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다. 물론 진짜 작가는 한 작가의 영혼과 정신이 오롯이 담길 수밖에 없는 장편소설을 쓰게 되면 그 동안 숨겨왔던 두 사람만의 일급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날까봐 반대한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글로 한껏 의기양양해진 가짜 작가는 기어이 장편소설을 쓰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급기야는 절대반대를 내세우는 진짜 작가에게 살갑게 굴던 태도를 일시에 벗어던지고 뻔뻔하고 오만방자한 태도로 "니까짓 게 무슨 작가냐"고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으며 비열하기 그지 없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 동안 어떻게 그 더러운 본색을 잘도 숨겨올 수 있었는지 놀라울 정도다. 결국 대신 글을 써주는 가짜 작가와 야합을 벌여온 진짜 작가는 가짜 작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어떤 글을 발표하든 그 그늘에 숨어 그림자 같은 삶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가 가짜가 된 순간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다.
성석석제님
성석제는 이 단편을 통해 작가로서의 '글쓰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자 한 듯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였다. 이 글의 주인공인 박세권이라는 작가는 글쓰기의 어려움 때문에 자신의 영혼을 팔았다면,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도 어디선가 이 작가처럼 돈 앞에, 권력 앞에, 폭력 앞에 스스로 제 영혼을 팔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먼 길을 떠난 어느 추운 밤, 주인에게 처음에는 "추워서 그러니 발 하나만 텐트 안에 넣게 해주세요" 하고 애걸하던 말이 그 청을 들어주자 그 다음에는 두 발, 머리, 결국에는 몸통 전부를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정작 주인이 내쫓기고 마는 것처럼 제 영혼을 남의 손에 쥐어준 후의 결말은 꼭두각시의 삶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임창정 최다니엘의 치외법권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의 최후
임창정과 최다니엘을 주연으로 내세운 신동엽 감독의 [치외법권]의 리뷰를 쓰려고 하면서 성석제의 [블랙박스]라는 단편에 대해 더 길게 쓴 것은, 이 영화에도 악마에게 영혼을 판 무리들이 대거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성기(장광)라는 교주가 이끄는 극락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은 또 그렇다 쳐도, 정재계, 법조계 등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조차 마치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들처럼 더 큰 권력, 더 어마어마한 부를 얻기 위해 사이비 교주에게 빌붙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이 [치외법권]은 지난해 여름 개봉일에 맞춰 보았던 영화다. 평소 임창정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다고 생각했기에 별 망설임 없이 보러 갔었는데, 영화에서 다루는 극락교라는 종교집단이 너무나도 추잡스럽고 황당무계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임창정, 최다니엘 두 배우의 오버스러운 캐릭터도 전혀 마음에 와닿질 않아서 후기도 안 쓰고 그냥 지나갔었다. 그런데 최근 심각한 국정논단의 주범인 최순실의 아버지이자 영세교의 교주인 최태민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극락교 교주 강성기를 연상케 하기에 VOD로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러자 지난 한 달여 넘게 황당한 뉴스들을 귀따갑게 들은 학습효과 덕분인지 지난해 여름에 볼 때는 그토록 어이없게만 여겨지던 스토리가 사실은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었던 건가 싶었다.
장광. 극락교 교주 강성기 역을 맡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치외법권]의 스토리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임창정(정진)과 최다니엘(유민)은 대한민국 1, 2위를 다투는 자타공인 또라이들이다. 임창정은 범인만 봤다 하면 일단 패고 보는 프로파일러 정진 역을, 최다니엘은 오로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경찰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강력계 형사 유민 역을 맡았는데, 경찰청장도 포기한 두 또라이가 특수수사본부로 비밀리에 호출된다. <또라이는 또라이로 잡아라!>라는 특명이 내려진 것이다. 대한민국 높은 사람들을 등에 업고 법 위에 군림하는 최악의 범죄조직 보스를 잡으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어떤 명령도, 외압도 받지 않는 특별수사팀에 두 형사는 투입된다. 이른바 치외법권 지역이 된 것이다. 극락교라는 집단 또한 자타공인 치외법권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드디어 <두 형사라는 치외법권>과 <극락교라는 치외법권>의 전쟁이 시작된다. 물론 또라이 두 형사는 그곳을 속시원하게 초토화시킨다.
영화에서는 극락교로 숨어들어간 두 형사를 통해 비교적 소상하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교주 강성기부터 집단최면에라도 걸린 듯한 수많은 교인들의 세뇌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주 강성기의 악마와도 같은 손길은 정계, 경제계, 법조계, 경찰, 교육 할 것 없이 안 뻗쳐나간 데가 없다. 그리고 갖가지 은밀한 방법으로 돈을 넘겨받거나 권력을 제공받은 그 내로라하는 사람들은 영혼을 판 대가로 강성기의 개 노릇을 한다.
당시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할 수가 있지?" 하던 의구심은 "왜 저것이 가능할 수가 있지?"라는 이해 불가능한 심정으로 옮겨갔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정재계 인물들이나 법조계 인물 등 지도자급 인사들이 교주 강성기 주변을 얼쩡거리며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저런 짓을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말 그대로 설마가 사람 잡는 일들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그와 유사한 일들이 영화 속 픽션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영혼의 안식을 얻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꼭두각시의 삶을 사는 사이비 종교의 신도들은 또 그렇다 쳐도, 배울 만큼 배우고 가질 만큼 가진 자들의 추한 모습이다. 국가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부터 대기업 총수들까지 <그냥 강남 졸부 아줌마> 최순실에게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사람간의 근본적인 차별이야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떤 패널의 말처럼 최순실이 학력, 경력의 평준화, 더 심하게 말하면 클라스의 비빔밥을 만들어놨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물론 그 등 뒤에는 더 큰 권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 관계가 마치 가짜 작가가 진짜 작가가 되고, 진짜 작가가 가짜 작가가 되는 [블랙박스] 속 두 인물과 너무도 닮아 있어서 놀랍다.
탐욕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것이 인간이기에 악마가 작정을 하고 유혹을 해오면 넘어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말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똑같은 유혹을 받고도 그 손을 덥석 잡기는커녕 댓바람에 뿌리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역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있는 요즘의 이 상황을 어렵게나마 정비를 해나가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의 최후는 불보듯 뻔하다. 그들이 영혼을 판 대가로 지금은 잘나가고 있는 것 같아도 늦고 빠르고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에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듯이> 깊고 어두운 나락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꼬리가 길면 잡히게 마련이고, 사필귀정, 모든 일은 옳은 쪽으로 귀결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악마와 손을 잡고 가짜 삶을 사는 자는 악마의 손을 뿌리치고 진짜 삶을 사람을 결코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상, 임창정 최다니엘의 치외법권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들의 최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