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유(W) 웹툰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부르짖는 캐릭터와 설정값
셰익스피어는 "세상은 전부 무대이고, 모든 사람은 그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일 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연극이란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극작가가 쓴 이야기, 즉 희곡에 따라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대사와 동작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는 예술을 말한다. 이때 배우들은 피나는 연습을 통해 철저하게 각본대로 움직여야 하며, 작가가 의도한 캐릭터에서 절대로 벗어나면 안 된다. 그리고 작가의 각본대로, 즉 작가가 의도한 대로 가장 잘 움직여준 배우가 훌륭한 배우로 인정받는다. 그러고 보면 무대 위 주인공은 배우이고 막이 내릴 때 관객들의 찬사를 받는 것도 배우이지만, 사실 숨은 주인공은 작가인 셈이다. 그 배우를 무대 위에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게 한 것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의 말처럼 우리도 저마다 고유한 존재로 태어나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서 누군가의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매일매일 온힘을 다해 살고 있지만, 그 삶이 무대 위에서 열심히 연기를 하다가 극작가가 "이젠 사라져야 할 시간!"이라고 외치면 끽소리 않고 무대 위에서 내려와야 하는 배우와도 같은 삶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니, 참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근 이와 유사한 말을 또 듣고 나니 셰익스피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비록 드라마의 등장인물이 한 말이고, 또 표현 방법이 좀 다르기는 해도, 요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극작가의 희곡에 따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연기를 진행시켜 나가야만 하는 무대 위 배우들과 뭐가 다를까 싶은 것이다. 그 일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자는 심지어 죽음도 감수해야 한다.
더블유(W) 웹툰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부르짖는 캐릭터와 설정값
같은 공간 다른 차원을 교차하는 사건의 중심에 선 냉철한 천재 벤처재벌 강철 이종석과 활달하고 정 많은 외과의사 오연주 역 을 맡은 한효주가 펼치는 로맨틱 서스펜스 드라마 [더블유(W)]를 이끌어가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웹툰작가 오성무(김의성)은 작가의 손을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한 강철을 향해 강한 어조로 이렇게 내뱉는다.
캐릭터일 뿐이라니, 설정값이라니,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내뱉은 오성무는 곧바로 자신이 만든 캐릭터이자 설정값인 강철 이종석에게 분노의 제압을 당한다. 하긴 누군들 "넌 내가 만든 꼭두각시일 뿐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라는 말을 분노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설정값(set point)이란 "제어계와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설정되거나 변화하는 양의 값으로 제어량을 그것과 일치시키는 것이 제어계의 목적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 말대로라면 웹툰작가 오성무가 탄생시킨 만화 캐릭터 강철은 작가의 의지에 자신의 일치시키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의 전부일 뿐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주는 흥미로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 강철이 작가가 만든 캐릭터, 작가가 의도한 설정값을 벗어나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니, 심지어 강철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탄생시킨 작가에게 총까지 겨눈다. 마치 창조주에 거역하는 피조물들, 아니면 모든 권위적인 것들의 갑질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선 을들의 저항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장면이다.
강철은 슬픈 얼굴로 오성무를 향해 "여기서 나를 만들었나 보지? 그 알량한 손가락을 놀려대면서 여기서 나를 죽일 궁리도 했고. 돈, 명예, 성공, 다 맛보고 나니까 이젠 내가 필요없어져서 나를 만들고 나를 괴롭히고 내 인생을 롤러코스트에 태워서 당신은 그것으로 성공하고 명예를 얻었지. 그래놓고는 이젠 죽이겠다고 칼로 찌르고 독극물을 주사하고 트럭으로 박고, 그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직접 나를 칼로 찔렀어. 살려달라는데도 잔인하고 냉정하게. 난 당신의 대리만족이었던 거지. 현실도피용. 자신은 자살도할 용기도 없으면서. 당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세상에 나밖에 없었으니까"라고 말한다.
그 후 강철과 오성무, 두 사람은 그간의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을 길고 긴 대화를 통해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오직 대사로만 처리되는 시간이 꽤 길어서 두 사람 다 대사 외우기도 힘들었겠다 싶다. 다행히 대사로만 처리되는 장면이 그리 지루하진 않다.
그 대화 중에 사실 이강철이 죽어갈 때 무의식중에 현실세계의 모니터 너머로 손을 뻗어 붙잡은 건 오연주가 아니라 원래는 오성무였음이 밝혀진다. 강철은 만화 속으로 빨려들어온 오성무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지만, 오성무는 119를 부르는 대신 "이제 그만하자"며 강철을 다시 한 번 칼로 찌른 것이다. 그러나 강철의 의지에 따라 오성무의 딸인 오연주가 만화 속으로 들어와 강철을 살려낸 것이었다.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만화라는 가상의 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실제로 우리에게도 그런 세계가 있어서 마음대로 오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무대 위에서 내려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다가 필요한 순간에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곤 하면서 세상을 좀더 재미나게 살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강철은 "진범을 잡고 죄값을 치르게 하고 일생을 평범하게 살고 싶어. 진범을 알고 싶은 의지가 너무 강해 죽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온 것 같으니까. 진범의 얼굴을 그려. 내가 기억할 수 있게"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오성무는 "진범은 없어. 그건 그냥 설정이었다. 주인공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설정. 히어로물에서는 흔한 설정이지. 유년시절의 충격적인 상처. 범인이 누군지는 나도 몰라"라고 털어놔 강철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안겼다.
이 말에 강철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며 “영문도 모른 채 잡지도 못할 범인을 쫓으면서 매일 불면증에 시달리고 다치고 깨지고. 끝도 없이 고통을 겪으면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내가 뭘 겪었는지 알기나 해? 너라면 단 하나도 못 견딜 일들을 수도 없이 겪게 하면서. 나는 그 고통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고 있는데”라며 오열한다.
이어서 “작가는 그게 업"이라는 오성무의 말에 다시 분노한 강철은 “너는 그냥 작가가 아니지. 너는 내가 살아 숨쉬는 걸 보면서도 날 죽이려고 했어, 그게 네 본질인 거야.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칼 대신 펜대를 잡아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넌 본질이 개XX고 이미 살인을 한 거랑 다름이 없어”라고 분노하며 오성무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러나 오성무는 "그걸로 날 쏘겠다고? 쏠 테면 쏴봐. 네가 쏠 수 있을 것 같아? 넌 절대 못 쏴. 왜냐하면 넌 애초에 살인을 할 수 없는 캐릭터거든. 널 법과 양심에 따라 사는 정의로운 놈으로 설정했거든. 그래서 네가 영웅이 된 거고 사람들이 널 좋아하지. 넌 아무 무기도 없는 늙은이를 화가 난다고 쏴죽일 수 없는 놈이야. 그게 네 설정값이거든. 네가 지금 자유의지로 여기 와 있는 것 같냐. 그것도 다 설정이다. 내가 널 엄청난 의지를 가진 놈으로 설정해놨거든. 넌 애초에 내 설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난 적이 없어. 날 쏘고 싶으면 쏴"라고 강철을 도발한다.
결국 강철은 오성무에게 총을 쏜다. 매를 버는, 아니, 총알을 버는 웹툰작가 오성무다. 하긴 "내가 준 머리로 이 세상을 알아내려고 한 강철, 그게 말이나 되나. 감히 그림인 주제에. 사람도 아닌 게. 끝도 없이 나를 괴롭히다니."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도발이 오성무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불가능한 일이긴 할 것 같다. 흔히 말하는 "호랑이새끼를 기른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제 웹툰작가가 설정해 놓은 설정값을 벗어나 자유의지로 움직이게 된 만화 주인공 강철이 어떤 식으로 그 설정값을 부숴나가는 이야기를 펼쳐보일지 기대를 해본다. 강철을 통해 세상의 모든 갑들에게 대처하는 법과 그 갑들의 갑질을 응징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상, 더블유(W) 웹툰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부르짖는 캐릭터와 설정값이었습니다. 드라마 [더블유(W)]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