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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더블유(W) 강철 이종석 뜬금없는 일들의 연속인 세상에서 맥락을 논하다

 

더블유(W) 강철 이종석 뜬금없는 일들의 연속인 세상에서 맥락을 논하다

 

 

흔히 원인이 있기에 결과도 있게 마련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요즘은 뜬금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뜬금없는 일의 가장 대표적인 예라면 묻지마 폭행, 묻지마 난폭운전, 묻지마 살인 등을 들 수 있다. 멀쩡하니 길을 가다가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고, 무작정 달려오는 차에 치여 느닷없이 목숨을 잃고, 누구를 해꼬지한 일도 원한을 산 적도 없는데 불상놈에게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보통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소설 같다느니 , 만화 같다느니 하고 말하곤 했는데, 요즘 같으면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소설이나 만화도 미처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다.

 

이런 뜬금없는 일들의 연속인 세상을 지적질하듯 <맥락 없음>에 천착하는 재미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정대윤 연출, 송재정 극본의 [더블유(W)]인데, 남자 주인공 '만찢남' 이종석과 여주 주인공 '만뚫녀' 한효주가 만화 속 세상과 현실세계를 오가며 펼쳐 보여주는 로맨틱 서스펜스 드라마다.

 

'만찢남'은 '만화를 찢고 나온 남자'라는 뜻이고 '만뚫녀'는 '만화를 뚫고 들어간 여자'라는 뜻인데, 마치 내가 나비인지 아니면 나비가 나인지 헷갈리는 장자의 한바탕 꿈처럼, 혹은 현실세계와 전혀 다른 가상의 세계, 두 개의 달이 뜨는 세상을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처럼 현실적으로는 서로 맞닿을 수 없는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가사의한 사건들의 중심에 선 냉철한 천재 벤처재벌 강철 이종석과 활달하고 정 많은 외과의사이자 만화가 오성무(김의성)의 딸 오연주 역을 맡은 한효주가 등장한다.  

 

더블유(W) 강철 이종석 뜬금없는 일들의 연속인 세상에서 맥락을 논하다

 

만화 속 세계와 현실세계를 넘나들다 보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즉 <맥락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그 때문에 남자 주인공 이종석은 죽기 직전 자신의 간절한 바램에 의해 그를 구하러 만화를 뚫고 들어온 '만뚫녀' 한효주를 향해 "하. 참 맥락이라고는 없는 여자네. 맥락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서 맥락도 없이 뺨 때리고 맥락도 없이 강제 키스하고 맥락도 없이 사라지고...”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난감해한다. 

 

'맥락이 없다'는 것은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이 없거나 어떤 글의 앞뒤 연관관계가 없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이종석의 경우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만화가 오성무(김의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니, 그로서는 자신을 비롯해 주변인물이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아무 맥락도 없는> 것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말하자면 무대 위에서 사람이 조종하는 줄에 매달려 인형극을 벌이는 인형과도 같은 삶이다. 등 뒤에 매달린 줄을 사람이 조종하면서 이리 가라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면 저리 가고, 울라고 하면 우는 시늉을 하고 웃으라면 웃는 흉내를 내는 꼭두각시인 것이다. 그러다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고, 무대 위에서 사라지라고 하면 내려와야 하는데, 왜 갑자기 죽어야 하는지, 대체 왜 도중에 내려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봐야 아무 소용 없다.   

 

주인공 이종석은 한효주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만화 속 세상이라는 믿기 어려운 <미친 말>을 들은 뒤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그제서야 도무지 맥락이라고는 없이 여겨졌던 그 동안의 일들에 모두 설명이 가능한 맥락이 생기고, 그는 "이 가짜 세상, 완전히 조작된 세계"에 맞서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기 위한 태세를 갖춘다.

 

 

한편 이종석의 손에 이끌려 만화 속을 뚫고 들어갔던 한효주가 간신히 만화의 세계에서 되돌아오자 웹툰 작가는 두 번 다시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아예 만화를 끝내려고 하는데, 그 순간 만화 속 세계와 그곳에서 만화가의 손길에 따라 살아가던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모두 일시에 "얼음땡!"을 외친 듯 움직임을 멈춘다. 다만 그걸 알아차린 강철만이 살아남는다. 

 

이 상황이 왠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기보다는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살아가는 오늘날의 많은 현대인들의 어리석음과 무지몽매함을 은유하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반면에 이 "얼음땡!"에서 강철이 혼자 살아남은 것을 한효주는 "자각한 자에게만 내려진 형벌"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세상은 자신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 살아가기엔 형벌이라고 표현될 만큼 끔찍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이라는 의미일까. 

 

 

문득 나도 지금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극의 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뜬금없이 불행이 닥치면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이 일어나는 거냐?"며 땅을 치고 울음을 터뜨리며 의구심을 품지만, 사실 납득이 가는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어느 날 웹툰 작가가 주인공을 죽이고 싶어지면 자살을 시도하게 만들어 한강 다리에서 떨어지게 하는 것처럼, 전혀 상상도 할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꼭두각시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신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혼자 살아남아서 만화를 찢고 나온 이종석, 즉 자각한 자에게 내려진 형벌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는 생생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것이냐, 아니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노예나 꼭두각시처럼 살다가 만화가가 펜을 놓고 싶은 순간 쓱쓱 지워버리고 "끝!"을 외치면 그냥 죽은 목숨이 되는 청맹과니처럼 살 것이냐 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줄 것 같다. 아직 초반부이니 앞으로 더 어떤 멋진 전개를 펼쳐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모처럼 흥미진진함과 달달한 로맨스, 예측불허의 서스펜스,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함께 주는 웰메이드 드라마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이상, 더블유(W) 강철 이종석 뜬금없는 일들의 연속인 세상에서 맥락을 논하다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