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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 보는 세상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 소유가 아니라 책임이 사랑이다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두 가지 다 삶의 느낌이며 우리의 감정상태다.
언뜻 보기에 그 뜻이 비슷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다르다.

 

우리는 사람이나 물건을 좋아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해서 다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물건이나 사람에게 ‘끌리면’ 좋아하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고 책임질 수 있을 때 그것이 비로소 사랑이다.
‘소유’가 아니라 ‘책임’이 사랑이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누군가 어려울 때 도우려고 애쓴다면 그것은 동정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슬픈 사연을 듣고 속으로 울거나
그 사람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면 그것은 동정이 아니라 공감이다.
즉 이타적으로 좋아하는 상태가 사랑이다.

 

사랑을 수학공식으로 나타낸다면 “좋아하는 것 + 이타적 배려 = 사랑‘이 아닐까.

 

“남을 판단할 때는 가슴으로 하고, 자신을 판단할 때는 머리로 하라"는 말이 있다.
너무 뻔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사랑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 예를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핑키라는 예쁜 꼬마가 있었다.

그런데 편식이 심한 핑키 때문에 부모님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우유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딸에게 엄마는 아침마다 하는 잔소리를 했다.

아빠도 우유를 먹이려고 귀여운 딸을 달랬다.

“우리 핑키 착하지. 아빠 생각해서 우유 한 잔 마시자.”

 

핑키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빠한테 물었다.

“아빠, 이거 다 마시면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어요?”

“물론 들어주고말고.”

 

핑키는 천천히 우유 한 잔을 다 마셨다.

그리고 뭔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엄마 아빠를 보았다.

엄마와 아빠도 딸의 말을 기다리며 쳐다보았다.
“아빠, 나 빡빡머리 해도 돼요?”

 

핑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마가 소리쳤다.

“뭐라고? 아니, 계집애가 망측하게 빡빡머리를 하다니! 안 돼!”

 

그러나 핑키는 울먹이며 졸랐다.

“아빠, 약속했잖아요.”
“알았다, 알았어. 약속은 지켜야지. 그럼 너도 매일 우유를 마시겠다고 약속해라.”

 

핑키는 아빠의 말에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핑키는 시원하게 깎은 머리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아빠가 학교 앞에 내려주자 핑키는 손을 흔들었다.

아빠도 웃음을 머금고 딸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바로 그때 사내아이 하나가 차에서 내리더니 소리쳤다.

“핑키야, 기다려!”

 

빡빡머리를 한 사내아이를 보고 핑키 아빠는 어리둥절했다.
사내아이가 내린 차에서 어떤 부인이 말을 걸었다.
“따님이 어쩜 저렇게 착해요. 따님과 나란히 걸어가는

저 녀석이 제 아들인데, 암 투병중이거든요."

 

핑키가 친구 때문에 머리를 깎고 싶어했다니!
남자아이는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심하게 놀리는 바람에 학교도 가기 싫어했다고 한다.
핑키는 이런 친구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타적 사랑’이며 진정한 의미의 우정이다.

 

-인드라닐 고시 <인도인들의 행복처방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