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변절자 염흥방(홍인방)의 몰락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최근 변절자가 되어 백성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홍인방(전노민)이 등장합니다.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포은 정몽주(김의성), 삼봉 정도전(김명민)과 함께 극중 신진사대부의 지도자로서 유생들을 이끌어왔지만, 사대부로서의 절개를 헌신짝 내버리듯 버리고 난 후에는 이인겸(최종원)의 수하이자 부패한 권문세족 길태미(박혁권)를 도와 계략을 세우고 악행을 일삼으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넘어 권좌에 오르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속 홍인방은 고려말 실존인물인 염흥방을 모티프로 한 가상인물입니다. 최용범의 [하룻밤 안에 읽는 고려사]를 바탕으로 변절자 염흥방(홍인방)의 몰락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육룡이 나르샤 변절자 염흥방(홍인방)의 몰락
원과의 전쟁을 반대하며 이인겸, 길태미와의 대척점에서 정도전과 정몽주를 편들었던 홍인봉은 이인겸에 의해 끌려가면서 유생들들 향해 "공자께서 말씀하신 인이란 무엇이냐? 씨앗이다. 생명이다. 씨앗은 싹튼다. 겉이 딱딱하여 죽은 것 같지만 그것을 뚫고 생명이 돋는다. 하여 인한 마음이란 살아 꿈틀거리며 만물과 소통하는 것이다. 펄펄 살아 움직이는 기백이다. 가두면 가둘수록 더욱 더 살아 움직이거라!"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절개를 지킬 것을 간절히 호소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후 그는 속속들이 변절자가 되어 당시 백성들을 핍박하던 권문세력의 만행에 앞장서는 인물이 됩니다.
이인겸, 길태미와 더불어 악인 3인방 중 한 사람인 백윤(김하균)이 죽어야 고려의 썩은 줄을 끊어낼 수 있다는 정도전의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던 땅새 이방지(변요한)의 칼에 권문세족 백윤이 죽고 나자 홍인방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귀족들에게 감언이설을 늘어놓습니다. 그가 왜구의 침략을 핑계삼아 백성들에게 더 세금을 걷자고 제안하자 귀족들은 백성들은 어떻게 살라고 그런 제안을 하느냐고 되묻지만, 홍인방은 "그냥 조세를 늘리면 된다, 5할을 내던 땅을 6할로, 6할을 내던 땅을 7할로 올리면 된다"고 넉살좋게 대답합니다.
귀족들이 딱하다는 얼굴로 다시 "왜 조세의 한계를 8할로 했겠냐. 9할을 내고는 백성이 살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자 홍인방은 더욱 뻔뻔스러운 얼굴로 "백성의 위대함을 믿지 않으시나 보오"라며 "이 땅에 수많은 왕들과 나라들이 명멸했지만 백성은 수만년 동안 변한 적이 없다. 그러니 백성들은 9할을 세금으로 내고도 또 살아나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의 위대함을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로 표현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갑질을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홍인방과 같은 생각이 들어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백윤 대감이 가셔서 균형이 깨졌다. 소생 목숨을 바쳐 수장이 되어 여러분과 함께 세력균형의 한 축에 서겠다"며 자신의 검은 속셈을 드러냅니다
육룡이 나르샤를 집필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에 따르면 “국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시작한 작품이니 핍박과 수탈에 시달리며 목숨을 이어갔던 백성들의 모습은 육룡’으로 불리는 여섯 인물이 몸을 일으키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들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제 각 곳에서 태종 이방원(유아인), 삼한제일검 이방지, 조선제일검 무휼(윤균상), 분이(신세경)이 정도전을 구심점으로 해서 모인 후 어떻게 이성계를 만나 신조선을 세우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데 각각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지 그 귀추가 주목됩니다.
■ 권신세족의 몰락을 불러온 변절자 염흥방
염흥방은 고려말의 문신 염제신(廉悌臣)의 아들이다. 젊어서 학문에 뛰어나고 개혁을 주창하는 인물이었으나 이인임에게 항거하다가 유배를 다녀온 후 권문세도가와 친분을 쌓아 탐욕에 찬 변절자가 된다. 그 후 임견미 등 권세가들과 함께 지방과 중앙의 권력을 온전히 잡고 휘둘렀다. 벼슬을 돈을 받고 파는가 하면 타인의 토지를 강탈해서 온 산과 들을 모두 차지했고, 타인의 노비를 강탈해서 그 수가 천백이 넘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왕릉, 왕실의 창고, 주현, 나루, 역 등에 소속된 땅에 이르기까지 강탈하지 않은 땅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왕 14년(1388) 느닷없이 반역사건이 보고됐다. 염흥방이 전 밀직부사였던 조반이 반란을 꾀했다면서 우왕에게 보고한 것이다. 염흥방은 우왕에게 조반의 목에 현상금을 걸고 잡을 것을 권고했다. 놀란 우왕은 신속하게 조반을 체포하라고 했지만, 모반을 꾀했다는 조반은 다섯 명의 기병과 함께 개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염흥방의 제보는 무고한 것이었다. 염흥방의 가노(家奴)인 이광이 조반의 백주 땅을 강탈했는데, 조반이 염흥방에게 애원하여 그 땅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광은 주인의 위세를 믿고 조반의 땅을 강탈하고는 능욕하기까지 했다. 조반은 양반 체면을 접고 이광에게 땅을 돌려달라고 간청했지만 이광이 포학하게 나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수십 명을 기병을 데리고 가서 이광의 집을 포위한 후 이광을 죽이고 집을 불태웠다. 그리고 나서 조반은 사태의 전말을 알리기 위해 염흥방이 있는 개경으로 말을 달려오고 있었는데, 조반이 이광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 염흥방은 격분해서 조반이 반란을 꾀했다고 무고한 것이었다.
염흥방은 순군에 명령해서 조반의 모친과 처를 잡아두고 기병 4백 명을 백주로 파견해서 조반을 잡으러 보냈다. 그러나 기병이 벽란도의 나루터까지 갔을 때 이미 조반은 기병 다섯 명과 함께 개경을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조반은 곧 교주도 원수 정자교에 의해 체포돼 순군옥에 갇히게 되었다.
염흥방과 도만호, 왕복해 등이 조반을 심문하지만 있지도 않은 모반을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반은 "탐오한 재상들이 사방에 종을 놓아 타인의 땅을 강탈하고 백성들을 잔인하게 짓밟고 있으니 큰 도적이다. 이광을 죽인 것은 오직 나라를 돕고 백성의 도적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며 아무리 참혹한 고문을 해도 뜻을 굽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염흥방을 꾸짖었다. 그러자 화가 난 염흥방은 사람을 시켜 조반의 입을 마구 치게 했고, 주위의 관리들은 이러한 심문을 보고도 모른 척했지만 좌간의대부 김약채만이 혼자 옳은 일이 아니라며 고문을 그치게 했다.
우왕 역시 사태의 진실을 알고 며칠 후 최영의 집을 찾아가 주위를 물리치고 장시간에 걸쳐 이 문제를 논의했다. 그리고 조반의 그의 모친, 처를 석방하고 의약과 갖옷을 내려주었다. 조반의 무죄를 인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염흥방은 순국옥에 가두었다. 우왕은 최영과 이성계에게 명하여 병력을 나누어 군대를 지키게 한 후 임견미, 도길부 등 권신세족도 옥에 가두게 했다. 전횡을 일삼던 임견미는 순순히 체포되려 하지 않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자신의 도당에게 소식을 알리려 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 최영이 지휘하는 병력이 임견미의 집을 포위했다.
조반에 대한 무고사건이 계기가 되어 돌발적으로 일어난 반란사건으로 임견미, 염흥방, 이성림 등 권문세족 50여 명이 처형되었고 그들의 재산도 모조리 몰수당했다. 염흥방 집안의 가신과 노복만 1000여 명이 체포돼 죽음을 당했다. 우왕의 즉위를 도운 공로로 최고 권력을 구가하던 이인임도 겨우 죽음을 면하고 귀양을 가야 했다.
우왕은 즉위 초기에는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등의 권신들과 가까웠지만 그들이 권력을 농단하며 대규모 부정축재를 저지르자 제거하기로 결심한다. 당시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등은 종들을 시켜 좋은 토지를 가진 사람이 있으면 모두 물푸레나무로 때리고 빼았았다. 땅주인은 엄연한 문서가 있어도 무서워서 항변 한 번 해보지 못햇다. 이때 사람들은 강탈당한 땅문서를 '물푸레나무 공문'이라고 불렀다. 우왕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염흥방의 조반 무고 사건을 계기로 이인임, 임견미와 더불어 염흥방 등 고려 말을 지배하던 권신세족은 우왕에 의해 일망타진되었다. 결국 염흥방의 소탐이 권신세력의 몰락을 불러온 셈이었다.
이상, 육룡이 나르샤 변절자 염흥방(홍인방)의 몰락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