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킨스 의식혁명..에너지 수준에 따른 인간의 의식수준
우리는 흔히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힘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잠재력, 즉 숨겨진 근원에서 비롯되는 잠재력에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인간 정신의 진화에 관한 전문가로 정신요법을 연구하는 데이비드 호킨스는 20여 년에 걸친 인간의 의식수준을 측정한 연구 끝에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그 무한한 힘의 실체를 밝혀냈는데, 그 결과 사람들이 가진 태도와 감정들의 수준을 정확한 숫자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킨스의 [의식혁명] 중에서 우리에게 잠재돼 있는 힘을 수치화한 에너지 수준에 따른 인간의 의식수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혁명..에너지 수준에 따른 인간의 의식수준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의식세계를 수치화했을 때 <용기>의 수준인 200이 일종의 분기점이 됩니다. 200 이하의 수준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삶의 태도는 '살아남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은 가난과 결핍에서 오는 절망과 우울의 영역이며, 그보다 높은 <분노>와 <욕망>의 수준에 이르면 개인의 생존을 위해 자기 본위의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자존심>의 수준에 이르면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고, 긍정과 부정의 갈림길이 되는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의 안녕이 점차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또 500이라는 수치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행복>도 고려하게 되고 600대에 가까워지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영적인 눈뜸에도 관심을 갖게 되며, 600대에 이르면 인간의 선과 깨달음을 위한 추구가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됩니다. 그리고 700~1000은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저 깊은 곳의 내 의식수준은 어디쯤 머물러 있는지 알아보고, 사랑을 넘어 기쁨과 평화의 단계,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의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에너지 수준 20 수치심
위험할 만큼 죽음과 가까운 상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으니 마지못해 살아가는 자세다. 성폭행과 같은 어린시절의 경험은 수치심을 초래하므로 이를 치유하지 않으면 그 피해가 평생 계속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수치심은 신경증을 초래할 뿐 아니라 정서적/심리적 건강을 파괴하여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만들며 신체적 질병까지 불러온다. 수치심이 성격의 바탕이 되면 수줍음을 잘 타고 내성적이며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비판적이거나 피해망상적인 환상을 보기도 하고 정신병 환자가 되거나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르기 쉽다. 수치심은 개인의 전체 수준을 끌어내리기 때문에 다른 부정적인 감정에도 영향을 받기 쉬우며 자만심이나 분노, 죄의식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에너지 수준 30 죄의식
죄의식은 흔히 자기연민이나 자기학대, 피해의식 등에서 발생한다. 무의식적인 죄의식은 정신이상에 원인이 있는 신체의 질병을 초래하며, 사고를 저지르기 쉽고 자살을 감행하기도 한다. 전 생애를 바쳐서 죄의식과 싸우는 사람들도 많고, 죄의식을 전면 부인함으로써 필사적인 도피를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역시 죄의식이 낳은 결과다. 죄의식에 가득찬 사람들은 종교단체의 선동자들에 의해 강요당하거나 조종당하기 쉬우며, 자신의 죄의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덮어씌우는 경향도 짙다. 자학증상이 심해지면 공공연한 동물학살로 잔인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다.
■ 에너지 수준 50 무기력
빈곤, 절망, 자포자기의 단계로 현재와 미래가 황폐해 보인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로, 모든 면에서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 도움조차 그들에게는 쓸모없게 느껴질 뿐이다. 보살펴주는 사람이 외부의 에너지를 투입해 주지 않으면 무기력에 의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살려는 의욕도 없고 자극에 무감각하며 음식조차 삼킬 만한 에너지가 없는 상태로 집도 없이 헤매는 사람들이나 사회의 낙오자, 나이든 노인들의 체념상태, 만성질병이나 심한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수준이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의지해야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그들을 '무거운' 짐처럼 느끼기 쉬우며, 현실을 마주할 용기조차 전혀 갖기 힘든 상태다.
■ 에너지 수준 75 슬픔
슬픔, 상실, 낙담의 상태로 비탄과 공허, 과거에 대한 후회와 우울함이 끝없이 이어진다. 실패를 생활의 한부분으로 생각하고 만성적인 도박 등으로 돈, 건강, 직장, 친구, 가족, 기회를 잃은 사람들이 여기에 속한다. 어린시절의 큰 상실은 슬픔과 비탄을 삶의 필요악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들고, 비탄에 빠진 사람들은 매사를 슬픔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번 잃은 것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으며 그 기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야말로 상실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폐해다. 하나를 잃어버렸으면서도 전부를 잃어버린 것처럼 일반화시키고,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은 곧 사랑 자체의 상실이 된다. 이런 감정적인 상실은 심각한 우울증이나 죽음을 불러오기도 한다. 슬픔은 인생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지만 무기력보다는 더 많은 에너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무기력증 환자가 울기 시작하는 것은 회복의 조짐이다.
■ 에너지 수준 100 두려움
세상이 위험해 보이고, 함정과 위협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상태다. 두려움은 독재자가 민중을 통제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도구이고, 불안감의 조성은 시장을 독점하려는 기업들의 상투적인 수단이며, 언론이나 광고업체들도 두려움을 유도하여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두려움은 인간의 상상력처럼 끝이 없어서 일단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세상이 온통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두려움은 편집증이나 신경증적인 상태로 진전될 수도 있고, 전염성이 있어서 사회 전체를 지배할 수도 있다. 개인의 성장을 가로막고 억압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뚫고 일어날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그보다 높은 수준으로 갈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이 수준을 극복한 것처럼 보이는 강력한 지도자를 바라며, 그 지도자가 자신들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 에너지 수준 125 욕망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욕망은 두려움의 수준에서 벗어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욕망은 또한 집착의 수준이기도 한데, 바로 이 점에서 때로는 욕망이 인생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의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며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함으로써 오히려 사랑과 관심을 잃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욕망은 언제까지고 계속되는 에너지장이기 때문에 만족이란 있을 수 없으며, 하나를 메우고 나면 다른 무엇인가를 또 채우고 싶어진다. 백만장자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TV는 억압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갖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자리를 털고 일어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사람은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성취로 가는 출발선 위에 설 수 있다. 욕망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뛰어오르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
■ 에너지 수준 150 분노
분노는 살인이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에너지 수준 자체는 죽음의 주위에서 맴도는 단계에서 훨씬 벗어난 상태다. 분노는 파괴적일 수도 있고 건설적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무기력이나 슬픔에서 벗어나 두려움을 극복하는 상태에 이르면 이제 무엇인가를 원하기 시작한다. 욕망은 좌절감을 초래하고 좌절감은 분노를 가져온다. 그런 이유로 분노는 억압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 사회에 대한 희생은 분노를 유발하고, 그것이 사회구조에 대변혁을 가져온 커다란 사회운동으로 발전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노는 흔히 분개나 복수로 표현되고, 따라서 폭발적이고 위험하다. 성급한 사람들, 즉 사소한 일에 과민하고 못된 짓만 하고 잘 싸우고 소송을 일삼는 사람들이 이 분노의 수준에 속한다. 분노는 증오로 전환되기 쉽고, 한 개인의 삶 전체를 파괴시키기도 한다.
■ 에너지 수준 175 자존심
자존심은 수치심, 죄의식, 혹은 두려움에서부터 비약한 상태다.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자존심의 팽만은 추락하기 일보 직전임을 가리킨다. 자존심이 방어적이고 약점투성이인 것은 그것이 외부조건에 의존해서 생기는 것이며, 또 그것 없이는 언제라도 낮은 수준의 의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부풀어오른 자존심은 비난에 약하다. 자존심은 아주 쉽게 수치심의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여전히 약한 의식수준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존심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치러왔으며, 군대는 지금도 애국심이라는 자존심 아래 서로를 죽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종교전쟁, 정치적인 테러리즘, 중동과 중유럽의 광적이고 무서운 역사는 자존심의 대가이고 사회 전체가 치러야 했던 벌이다. 자존심은 진실한 성장과 명예를 안겨줄 수 있는 참된 내면의 힘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이다.
■ 에너지 수준 200 용기
용기는 기꺼이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도록 도와주고 파란만장한 인생을 긍정적으로 전환시켜 준다. 이 수준에 이르면 비로소 인생이 주는 기회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과 새로운 직업기술을 배울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되며, 성장과 교육이 성취의 목표가 된다. 이 수준에 이르면 두려움이나 성격의 결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고, 두려움이나 결점에도 불구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걱정하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낮은 의식수준에서와는 달리 노력 자체를 마비시키지는 않는다.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힘을 얻고, 더욱 더 용기백배하게 되며, 비로소 생산성이 생기기 시작한다.
■ 에너지 수준 250 중용
중용은 내면의 자신을 신뢰하는 출발점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느끼기 시작하며 쉽게 위협을 느끼지도 않는 단계다.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안달하는 일도 없으며, 인생에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본적인 수용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 함께 지내기가 쉽고, 친하게 지내도 전혀 위험하지 않다. 대립이나 경쟁심리, 죄책감 등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온화하고 근본적으로 정서가 안정되어 있으며, 비난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충동도 느끼지 않는다. 또한 자유를 아주 중시하기 때문에 그들을 규제하기는 쉽지 않다.
■ 에너지 수준 310 자발성
자발성이란 인생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저항을 극복하고 기꺼이 참여하는 마음이다.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진실로 친절하게 대하고, 사회적·경제적 성공이 저절로 따른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하고, 밑바닥 일이나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의 선에 이바지한다. 또한 내면의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배움에 장벽을 두지 않는다. 자긍심이 높고, 사회를 움직이고 사회에 기여한다. 곤경으로부터의 회복능력, 시련을 통한 배움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바로세운다.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결점을 기꺼이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배운다. 이들은 아주 훌륭한 학생들이며 또 쉽게 가르칠 수 있어서 사회의 아주 중요한 자원이 된다.
■ 에너지 수준 350 포용
포용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더 열정을 쏟는다. 어려운 과제나 일을 만나도 괴로워하거나 곤혹스러워하지 않는데, 눈앞의 목표보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항상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립되는 의견이나 갈등에도 극단주의를 택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고 보고 평등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융통성 없이 경직된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고 문제해결 과정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형태의 대답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차별과 편협을 초월한다. 평등이란 다양성을 배제하지 않는 것임을 인식하고 거부하기보다는 포용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 에너지 수준 400 이성
이성의 단계에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자료들을 처리할 능력을 갖고 있어서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준다. 과학, 의학, 그리고 개념화에 대한 이해수준이 점차 증가되며, 교육과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추구된다. 또한 이해와 정보가 성취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 가장 뚜렷한 특성이다. 노벨상 수상자, 위대한 지도자, 대법원의 판사들이 이 수준에 속하는 경우가 많으며 아인슈타인, 프로이트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 에너지 수준 500 사랑
사랑은 용서와 보살핌의 세계로 가는 길이다. 사랑은 지적인 것도 아니고 표면의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고양시켜 주고, 그 동기의 순수성으로 인해 크나큰 성취를 이루게 하기도 한다. 이 수준에 이르면 사물의 본질을 분별할 수 있는 역량이 증대하여 문제의 핵심을 꿰뚫을 수 있게 된다. 문제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전후 과정을 섬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랑의 느낌을 가지면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분비된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사랑에는 어떠한 장애물도 있을 수 없기에 '너와 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이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여 삶을 힘차게 긍정하게 한다.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공격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수용하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의 단계다.
■ 에너지 수준 540 기쁨
기쁨이란 외부의 어딘가에 근원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존재의 매 순간마다 솟구치는 것이다. 540 이상부터는 성인, 영적 치유자, 그리고 그 제자들의 영역이다. 이 에너지장의 특징은 계속되는 역경 속에서도 인내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수준의 특징은 이들이 갖는 자비의 마음상태다. 이들에게는 사랑과 평화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의 능력을 어느 특정한 개인보다는 생명 자체의 유익을 위해 쓰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갖는다.사망선고를 듣고도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에는 그 경험을 통해 삶의 전환점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 중 대부분은 540∼600의 에너지 수준이 어떠한 상태인지 경험한 것으로 보인다.
■ 에너지 수준 600 평화
초월이나 자아실현 등의 용어로 묘사되는 경험과 깊이 관련된 평화는 천만 명 중 한 명 꼴로 나타나는 아주 드문 현상이다. 이 수준의 사람들은 지복의 상태에 잠겨 있으므로 세상일에 더 이상 흥미를 갖지 않고, 따라서 범인의 생활을 하지 않는다. 영적 지도자가 되거나,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인류의 개선을 위해 일하기도 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여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하기도 한다. 성인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어서 성인으로 추대되는 일도 드물지 않다. 600 이상의 수준에서는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인데도 세상 전체가 시간과 공간이 멈춰서 있는 가운데 마치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데도 그들은 이 세상이 무한한 가능성과 의미로 가득찬 진화의 춤을 계속 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600∼700의 수치로 측정되는 위대한 미술, 음악, 건축작품들은 우리의 의식을 더 높은 세계로 고양시켜 주며, 시간을 뛰어넘어 영감을 불어넣는 원천이 된다.
■ 에너지 수준 700∼1000 깨달음
영적 완성자의 단계로, 수많은 세대를 통해 군중들이 추종하고 따르며 영성의 원천으로 삼는다. 강렬한 영감의 소유자로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끌개 에너지장을 형성한다. 참나(Self)와 의식과 신성이 하나로 동일시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조차도 마음을 뛰어넘어 참나로 경험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봉이다. 이러한 비전을 갖는 것은 은총이라 불리며, 이 은총에 의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한 평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의 단계에서는 시간과 개별성을 뛰어넘게 되며, 육신인 '나'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 운명에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의식의 분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상,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혁명..에너지 수준에 따른 인간의 의식수준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