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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징비록 서애 류성룡 경세가이자 진정한 리더의 표본

 

징비록 서애 류성룡 경세가이자 진정한 리더의 표본

 

 

"왕이 왜 있어야 하는가? 왕이 왜 백성의 어버이여야 하는가 말이야? 집안에 도적이 들어오면 자식들을 등 뒤로 숨기고 도적과 맞서싸워야 하는 것이 어버이거늘, 백성들을 사지에 남겨놓고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가는 어버이가 어디 있는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제 목숨만 귀히 여긴 선조(김태우)가 일단 몸을 피한 후 사후를 도모하겠다는 궁색한 핑계를 대고 기어이 궁과 백성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영의정 류성룡(김상중)은 빗속에서 오열합니다.    

 

징비록 서애 류성룡 경세가이자 진정한 리더의 표본

 

이어서 류성룡은 "아니다. 왕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임금을 잘 보필하지 못한 내 잘못이자 우리의 죄다"라며 비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처참한 마음으로 눈물을 쏟습니다. 

 

드라마 징비록을 보면서 새삼 서애 류성룡에게 감동과 감탄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특히 류성룡의 인선(人選)에 대한 혜안은 감탄 그 자체입니다. 모두 알고 있듯이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이순신 장군을 전라좌수사로 천거합니다. 정읍현감이라는 종6품에서전라좌수사라는 정3품으로 품계를 7단계나 올린 파격적인 인사였기에 조정은 발칵 뒤집힙니다. 하지만 이 인사는 다가올 국난에 대비하기 위한 신의 한 수였습니다. 또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도 임진왜란 직전 류성룡이 천거한 바 있습니다. 임진왜란 초기의 포진을 류성룡이 짰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드라마 징비록과 [역사저널 그날]을 바탕으로 경세가이자 진정한 리더의 표본인 서애 류성룡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왜군들이 파죽지세로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호통만 쳐대는 선조에게 류성룡은 병조판서 홍여순을 파직하고 엄벌하라고 고한다. 군량미를 빼돌리는 등 홍여순의 부패와 추악함을 알고 있는 유생과 관리들이 어찌 그런 자의 명을 따라 목숨을 바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누가 새 병판으로 좋겠느냐고 선조가 묻자 류성룡은 김응남이 좋겠다고 천거한다. 그리고 의주에서 축성을 하다가 명나라의 오해로 파직을 당한 의주목사 김여물를 석방해 주면 중하게 쓰겠다고 청한다. 흔히 리더의 역할 중 하나가 사람을 볼 줄 하는 눈과 활용할 줄  능력이라고 하는데,  류성룡이야말로 제대로 된 인선능력을 갖춘 인물이었던 것이다. 

 

 

왜군들이 곧 조령(문경새재)를 넘을 듯하다는 소식에 결국 왜변 정도가 아니라 전쟁이 발발한 것임을 알게 된 선조는 숨이 넘어갈 듯 괴로워하더니 큰 충격을 받고 또 쓰러져 드러눕는다.

 

 

약사발 앞에 앉은 선조는 대구가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류성룡에게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묻는다. 류성룡은 초유사(招諭使)와 안집사安集使)를 파견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병사들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초유사와 안집사란 민생의 안정을 위해 파견된 관리다. 초유사로는 누가 좋겠느냐는 물음에 류성룡은 경상우도에 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 김성일(박철호)을 초유사로 보내라고 한다.

 

그 말에 선조는 노한 얼굴로 안 된다고 소리친다. 통신사 보고가 다르지만 않았더라도 속수무책으로 이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이니 김성일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원흉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류성룡은 "김성일만큼 경상도민들의 민심을 다독일 사람은 없으며, 누구보다도 왜적의 동향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기에 기회를 준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김성일은 "만 번을 씻어도 씻을 길 없는 큰 죄를 지었다. 편견에 사로잡혀 적이 틀림없이 침략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이  렇듯 참담한 죄를 지었으니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하지만, 어찌 죽음으로 이 죄를 지울 수 있겠나" 하며 포박을 당한 해 끌려가다가 죄인 김성일을 방면하고 초유사로 임명한다는 교지를 받는다.

 

 

이에 감복한 김성일은 "신이 어찌 감히 목숨을 구걸할 수 있겠나이까. 대역죄인 이 김성일은 죽은 목숨입니다. 제 육신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 철천지 원수 왜적들과 싸우다가 이 산하에 흩어질 것이옵니다" 하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다짐한다.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 류성룡은 사람들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볼 줄 아는 눈 밝은 리더였으며, 나아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겐 그 잘못을 만회할 기회까지 줄 줄 아는포용력까지 갖춘 리더였던 것이다. 

 

안동대학교 사학과 정진영 교수는 류성룡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치가일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고 말한다. 학자라 해도 학문만 일삼는 것이 아니라 실무에도 밝았고 무엇보다도 나라를 경영해서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했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흔히 경세가라고 일컫는데, 류성룡이야말로 경세가 중의 경세가였다는 것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류성룡은 다양한 개혁정치를 추진했다. 직업군인을 양성하기 위해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새로운 화포와 무기를 제작해 무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속오군(束伍軍)을 설치하여 양반도 병역의 의무를 지게 했다. 

 

 

그리고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천인을 양인으로 올려주는 면천법을 실시했다. 왜적의 머리를 베어오면 천민 신분을 면하게 해준다는 말에 천민들은 너도 나도 의병으로 나섰다.  

 

 

또 가구별 징세를 토지별 징세로 바꾸어 서민에겐 세금의 부담을 줄여주고 토지를 많이 가진 부자에게는 세금을 더 물리는 세제개혁을 단행했다. 이른바 서민감세, 부자증세다. .

 

 

또한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군량과 식량을 확보하고자 하는 경제살리기 대책도 세운다. 소금 생산을 장려해 곡식과 바꿀 수 있게 했고, 국내에서 식량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지자 국경지대인 압록강 연안 중강진에 시장을 설치해 곡식을 수입할 수 있도록 했으며, 곡식을 대신할 구황식물 생산을 장려하기도 했다. 7년이나 이어진 참혹한 전쟁 속에서 조선을 지탱한 큰 기둥이 바로 서애 류성룡이었던 것이다.

 


 

또 임진강에 칡덩굴로 부교를 설치해서 대포와 군수물자를 옮길 수 있게 했는데, 미국 역사학자 헐버트는 류성룡의 임진강 부교는 금속활자, 한글, 거북선과 함께 한국의 4대 발명품이라고까지 극찬한 바 있다.  그 외에도 류성룡은 공물작미법(특산물을 쌀로 내는 것, 대동법의 원조격) 같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지만 대부분이 제도화되지 못했고 임진왜란 후에도 유지된 것은 훈련도감뿐이었다.

 

 

선조는 조정과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가 있는 동안 류성룡에게 영의정, 도체찰사, 훈련도감 도제조 등 다양한 임무를 맡긴다. 전란 극복의 모든 책임을 류성룡의 양어깨에 짊어지운 것이다. 만일 류성룡이 아니었다면 당시 선조 때 한강 이북은 명나라가 차지했을 것이고 한강 이남은 왜가 차지해서 어쩌면 조선도 없어지고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런 류성룡을 선조는 임진왜란이 끝나자 내쳐버린다. 류성룡에게 몰려가 있는 권력의 힘이 무서웠던 탓이다. 방계출신의 왕이라는 콤플렉스로 똘똘 뭉친 쪼잔한 선조였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류성룡이 파직당하던 그날(1598년 음력 11월 9일) 바다에서는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나의 죽음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이순신 장군이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슴아픈 역사다.

 

 

선조의 명에 따라 류성룡이 낙향할 때는 강을 건널 여비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제정신을 차린 선조는 다시 조정에 돌아와줄 것을 권고했지만 류성룡이 응할 리 없었습니다. 호성공신(扈聖功臣, 임진왜란 때 선조를 모시고 의주까지 호종한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준 칭호)이 되면 자연히 공신 가계에 초상화를 그려 걸어두는데, 그 때문에 안동에까지 화공을 보내 초상화를 그려오라고 했지만 그것마저 거부한 류성룡이었습니다. 그 후 류성룡은 안동 하회의 옥연정사(玉淵精舍)에서 외부와 완전히 단절한 채 후대가 경계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집필작업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징비록입니다.

 

류성룡 역을 맡은 김상중이  "흔히 리더는 같이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고 보스는 끌고 가는 사람이다. 보스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지만 올바른 리더는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한 말은 가슴에 새길 만합니다. 인재 천거로 전쟁에 대비하고, 징비록 집필로 미래를 준비했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 거목(巨木) 류성룡이야말로 참된 리더 중의 리더였던 것입니다. 징비록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상, 징비록 서애 류성룡 경세가이자 진정한 리더의 표본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