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계 정복을 꿈꾼 남자
징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계정복을 꿈꾼 남자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징비록 초반부에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의 최고 집권자 풍신수길(豊臣秀吉),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등장합니다. 임진왜란,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이순신 장군이지만 또 한 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더불어 일본 전국시대의 3대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그는 잘 알고 있듯이 16세가 말 일본의 전 국력을 동원하여 조선을 두 번이나 대대적으로 침략했던 인물입니다.
징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계정복을 꿈꾼 남자
징비록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을 맡은 김규철은 예전에 드라마 메이퀸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손바닥을 뒤집듯 배신을 때리면서 필요하면 엎드려 빌고, 무릎 꿇고 징징 울고, 다리를 붙들고 죽어라 매달리기도 하는 비열함과 찌질함의 극치를 멋드러지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도 "역시!" 하고 이마를 치고 싶을 만큼 아주 잘 어울리는 역을 맡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징비록 1,2회에서 그는 등장할 때마다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인물이 워낙에 극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김규철이라는 배우 또한 그 못지않은 존재감을 보여준 덕분이겠지요.
역사를 소재로 한 문학창작에 열심인 도현신님의 [임진왜란, 잘못 알려진 상식 깨부수기]에서는 조선을 비롯하여 명나라가 통치하고 있던 중국과 무굴제국이 지배하던 인도까지 세계정복을 꿈꾸었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하게 죽어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짚어보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가 말해 주듯이 조선 침략의 결과는 실패로 끝났고 히데요시는 상심한 끝에 오사카에서 쓸쓸하게 죽어갔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을 과대망상이니 정신병적 행동이니 하며 과소평가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계정복 계획을 설명하면서 그는 결코 과대망상이나 허풍을 일삼는 무능력자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비상한 두뇌와 주위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동물적인 감각, 그리고 과감한 결단력까지 두루 갖춘 무서운 효웅(梟雄)이었다고 말합니다. 일개 천민의 신분으로 그 험악한 전국시대의 풍파를 헤치고 살아남아 천하의 쟁쟁한 영웅들을 모두 거꾸러뜨리고 전국을 휘어잡은 인물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정복을 꿈꾸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초점을 맞춘 기본정보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징비록과 서애 류성룡, 임진왜란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일본 중부 오와리의 나카무라 마을에서 태어난 히데요시의 본명은 기노시타 도키치로이며 아버지 기노시타 야유에몬은 오와리의 영주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오다 노부히데 휘하의 하급 병사였다. 히데요시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때 죽었으며, 그 후 그의 어머니는 재혼했다. 하지만 집안살림이 나날이 어려워지자 이를 견디기 힘들었던 어린 히데요시는 집을 나와 전국 각지를 방랑했다. 그러다가 18세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와 노부히데의 뒤를 이어 영주의 자리에 오른 오다 노부나가의 하인이 되었다.
히데요시는 노부나가를 지극정성으로 섬겨 그의 신임을 얻었다. 추운 겨울날 노부나가의 신발을 품어 따뜻하게 한 다음 내놓아 노부나가가 이를 보고 감동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노부나가가 중부 일본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원정에 나섰을 때 히데요시는 주요 전투에 참전했으며, 그는 쾌활한 성격과 총명한 두뇌로 수많은 전장에서 무훈을 세웠다.
전국시대 통일의 초석을 놓았던 오다 노부나가는 부하의 배신에 휘말려 최후를 맞았고, 노부나가가 죽은 뒤 권력을 장악한 사람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는 노부나가의 유업을 이어 정복사업을 계속 벌였고 그 과정에서 권력을 더욱 키워 관백(關白)의 직위에 올랐다. 관백은 천황을 보좌하여 국정을 총괄하는 직책을 말한다. 그 후 전 일본은 히데요시의 깃발 아래 통일을 이루었는데, 자그마치 1백 년이 넘게 계속되었던 전란이 한 사람의 손에 의에 종결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어머어마한 병사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운용하는 그의 마술과도 같은 능력이었다.
그런데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을 제압하기는 했지만 곧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전쟁을 끝내고 통일을 이룬 것까지는 좋았는데, 한편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신하들과 무사들에게 더 이상 영지를 나눠줄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영주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고 있으니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전쟁을 통해 패한 자의 영지를 몰수하고 그것을 신하에게 나눠주는 것이 전국시대 일본의 관습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영지를 받을 수 없다면 다른 영 들이나 신하, 무사들이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바칠 의무가 없었다. 부하들을 궁핍하게 만든다면 그는 주군의 자격을 잃은 거나 다름없었다. 자신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지 못하는 자에게 계속 충성을 바칠 부하는 없었다. 이런 불만이 계속 쌓이게 되면 나중에는 대규모 반란이 터질 수가 잇었고, 그렇게 되면 모처럼 확립한 히데요시 자신의 권력도 무너지게 된다. 히데요시는 이를 방지하고 아울러 해외의 영토를 정복하여 이를 영주들과 무사들에게 나눠줌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신의 권력을 더욱 튼튼히 다지려고 했던 것이다. 또한 일본 전역의 넘치는 군사력을 해외로 돌리면 상대적으로 국내는 안전해지는 효과도 노릴 수 있었다.
16세기 말 일본 전역의 군사를 합치면 무려 30만이나 되었다. 당시 동아시아를 통틀어 이만한 상비군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조선은 물론이고 명나라조차 그 정도의 대군을 보유하지 못했다. 더욱이 일본과는 달리 조선과 명은 오랜 평화시대를 거치는 동안 군사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판국이었다. 이런 국제 정세를 히데요시는 비교적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허약한 조선과 명나라를 향해 1백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쌓아올린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을 쏟아붓는다면 절대로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히데요시가 세운 세계정복 계획의 개요는 다음과 같았다.
1 우선 육군을 조선에 상륙시킨 다음 신속하게 조선의 수도를 비롯한 주요 거점들을 점령한다. 그와 동시에 수군을 띄워 서해 바다를 통해 육군에게 보급품과 증원 병력을 보낸다.
2 이렇게 해서 조선 전역을 완전히 점령하고 나면 조선에서 징발한 군대를 앞세우고 거두어들인 식량을 군수물자로 삼아 한강에서 조선 수군을 이용해 곧바로 명나라에 상륙하여 전쟁을 벌인다. 일단 선발대가 상륙하면 곧 파죽지세로 점령해 나간다. 물론 명나라도 반격을 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만주에 웅크리고 있는 여진족들이 만리장성을 돌파하여 명의 북방을 침공할 것이며, 명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농민들의 반란이 더해지면 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고 만다.
3 조선과 명을 정복하고 나면 다음은 동남아시아와 저 멀리 인도까지 같은 방식으로 침공한다. 그리하여 아시아를 통합한 대제국을 건설하고 히데요시의 권력은 자손 대대로 이어져 영원하리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은 명나라가 통치하고 있던 중국과 무굴제국이 지배하던 인도였으니 이 두 지역을 정복하면 사실상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히데요시는 조선 이외에도 인도, 필리핀, 대만 등지에 사신을 보내 일본에 항복하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히데요시가 조선을 맨 먼저 쳤던 이유는 조선이 일본 본토에서 가장 가까워 병참 수송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인구가 많아서 일본에 필요한 노동력을 쉽게 공급할 수 있으며, 전라도의 곡창지대에서 수확한 곡식으로 일본군의 군량 공급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조선은 군사력이 약해서 일본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도 작용했다.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뻗어나가는 것, 이것이 히데요시가 세운 세계정복 계획의 핵심내용이었다.
히데요시의 조선정복, 나아가 세계정복의 꿈이 실패한 이유는 잘 알고 있듯이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활약과 의병들의 봉기 덕분이었다. 보급로가 차단되어 식량과 물자부족에 시달린 일본군이 더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철수했기 때문이다. 만약 조선 수군이 일본의 해상로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그래서 애초에 히데요시가 생각한 수륙병진 작전이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아마 일본을 중심으로 통합된 대아시아 제국의 출현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조선은 온전하지 못햇을 것이다.
이상, 징비록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계정복을 꿈꾼 남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