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얼굴 광해군(서인국)의 빛나는 업적과 중립외교, 그리고 쓸쓸한 몰락
왕의 얼굴 광해군(서인국)의 빛나는 업적과 중립외교, 그리고 쓸쓸한 몰락
KBS2TV 드라마 왕의 얼굴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광해군(서인국)의 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스토리를 입힌 팩션입니다. 광해군 역할은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배우 이병헌이 열연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이병헌이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깊이 느낀 적이 있습니다. 광해군 역과 하선이라는 한갓 백성 역을 맡아 1인2역을 하는데도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서 같은 사람이 1인2역을 하고 있는 거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드라마 왕의 얼굴에서는 1인2역은 아니지만, 광해군 역을 맡은 서인국이 세자 광해로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폐세자를 앞두고 고뇌에 찬 모습, 서고에 숨어든 무사들과 멋지게 한판 대결을 벌이는 과감한 모습, 아버지 선조(이성재)가 자신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자 겁에 질려 떠는 모습,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김가희(조윤희)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는 모습 등을 자연스럽게 자유자재로 표현해 주어서 서인국이 저토록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나 하는 놀라움과 앞으로의 전개에 더욱 흥미를 갖게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드라마 왕의 얼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에 앞서 후대에 왕으로도 불리지 못하고 폭군으로만 인식된 빛나는 바다(光海) 광해군이 이룬 업적과 그 유명한 중립외교, 그리고 그가 남긴 업적에 비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너무나도 쓸쓸하고 애처롭게 몰락해 가야 했던 광해군의 말년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와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드라마 왕의 얼굴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왕의 얼굴 넓은 이마아 쭉 뻗은 코, 튼실한 턱, 눈빛 도한 용을 닮은 세종임금은 진정한 왕의 얼굴이었다
자신을 폐세자시키려는 선조 이성재의 어명을 앞두고 지난 왕들의 초상을 걸어둔 방에서 서인국은 자신을 폐세자시키려는 선조 이성재의 어명을 앞두고 지난 왕들의 초상을 걸어둔 방에서 세종임금의 초상을 우러러보며 "세종임금께서는 넓은 이마와 쭉 뻗은 코, 튼실한 턱을 가지셨다. 삼정이 조화롭고 눈빛 또한 용을 닮으셔서 저 얼굴이 바로 태평성대를 이룰 진정한 왕의 얼굴이다"라고 "정녕 소손은 왕이 될 수 없는 얼굴이옵니까?" 하고 한탄하듯 말한다.
왕의 얼굴 광해 서인국
하지만 관상학 교수 고산(이기영)은 멀리서 광해의 얼굴을 보고 위엄이 어린 왕의 얼굴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고 보니 세종임금의 얼굴과 서인국의 얼굴이 닮아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 왕이 될 수 없었던 남자 광해의 탄생부터 즉위과정
서인국 세자 광해로서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이었던 공빈 김씨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후궁의 자식인데다 첫번째 아들도 아니고 두번째 아들이었던 광해군이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조선의 14대 왕 선조는 처음으로 붕당정치를 시작한 왕, 그리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왕으로 알려져 있다. 선조에게는 의인왕후와 인목왕후라는 정실부인이 있었지만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하지만 후궁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은 많아서 모두 13명이었다. 공빈 김씨가 낳은 자식은 임해군과 광해군이었고 인빈 김씨에게는 의안군, 신성군, 정원군, 의창군이 있었으며, 순빈 김씨에게는 순화군, 정빈 민씨에게는 인성군과 인홍군, 정반 홍씨에게는 강창군, 온빈 한씨에게는 흥안군과 경평군, 영성군이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인목대비에게서 태어난 영창대군까지 합하면 모두 14명이었다.
정실부인의 자식도 아니고 양반으로 치면 첩의 자식 중에서도 둘째아들인 광해군은 사실 왕이 될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영민함이었다. 열세 자식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두각을 나타낸 아들이 광해군이었던 것이다.
서인국 폐세자를 앞두고 고뇌에 찬 모습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 덕분이었다. 전쟁이 그에게 왕이 될 기회를 준 셈이었다. 1592년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서울 경복궁에서 압록강변 의주로 피신을 했다. 의주로 피신한 이유는 여차하면 당시 동맹국이었던 중국 명나라로 달아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에게 화가 난 백성들은 궁궐에 불을 지르는 등 큰 난동을 피웠다. 그러자 선조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전쟁 도중에 부랴부랴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나는 여기서 기회를 엿볼 테니 너는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민심을 수습하라"고 말한다.
그러자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의 말을 받들어 세자 신분으로 평안도와 함경도를 뛰어다니며 백성들을 안심시켰을 뿐 아니라 전라도와 경상도 등 전국을 다니면서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엄청난 업적을 남긴다. 즉 광해군은 임진왜란의 영웅이었다. 임진왜란 하면 흔히 이순신을 먼저 떠올리지만 그 발판에는 광해군이 있었던 것이다.
선조(이성재)가 자신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자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광해 서인국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인기가 떨어진 반면 광해군은 인기가 올라갔다. 이에 콤플렉스에 사로잡힌데다 변덕스러운 선조는 광해군이 자신의 아들임에도 시기질투를 하게 된다.
정실 의인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조는 새로운 중전을 맞는다. 그때 선조 나이 50이 넘었는데 10대 소녀를 중전으로 앉힌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목대비이고, 인목대비의 아들이 영창대군이다. 그리고 선조는 이미 세자로 책봉돼 있는 광해군의 자리를 어린 영창대군에게 넘겨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광해군이 얼마나 복잡한 고뇌에 시달렸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광해군은 무려 16년 동안을 세자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 선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영창대군의 나이가 2살이었다. 인목대비는 법도상으로 보면 광해군의 엄마이지만 광해군보다 나이가 어렸다. 왕이 죽었으니 왕비가 최고어른이고, 그러면 당연히 인목대비가 다음 왕을 반포해야 하는데, 인목대비로서는 당연히 자기 자식인 영창대군을 지목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2살이니 워낙 어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수렴청정을 할 수도 없었는데, 나이 30세인 광해군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으니 자칫햇다가는 자신에게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발빠르게 광해군을 왕으로 추대한다.
■ 빛나는 바다 광해의 정치, 경제, 외교적 업적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김가희(조윤희)를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서인국
임진왜란 이후 전란 수숩을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바쳤던 광해군. 광해는 빛나는 바다라는 뜻이며 광해군의 이름은 이혼(李琿)이다. 광해군의 업적은 전란을 극복하고 수습한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업적은 세금제도 개혁안인 대동법을 시행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세금제도는 전세(田稅)와 역, 공납(貢納) 3가지가 있었다. 전세는 토지세로 땅을 가진 사람들이 내는 세금인데, 수확한 곡식의 약 10분의 1 정도를 나라에 냈다. 역은 인두세로 16세에서 60세까지의 성인남자, 즉 양인 장정들이 내는 세금이었다. 그리고 공납은 지방의 토산물을 현물로 내는 세금제도로 집을 가진 사람이 내는 세금이었다. 그런데 인징, 족징 등 공납의 폐단이 심해지자 광해군은 이를 해결하고자 대동법을 실시했던 것이다. 그 결과 땅이 없는 백성들은 공납의 부담에서 해방되고 재산이 많고 땅이 많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었다.
그 외에도 신분증 제도인 호패제도를 다시 실시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창덕궁을 중건하고 경희궁을 준공했다. 또 1613년에는 동의보감을 인쇄해서 반포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 광해군의 외교적 업적 중립외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열연하고 있는 광해(이병헌)
당시에는 명나라와 조선, 그리고 왜가 있었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征明假道)라 하여 선조 때 조선 정부에 대해 중국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임진왜란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당시 명나라는 우리나라 최대의 교역국으로 아버지 라고 불리는 나라였던 만큼 길을 비켜달란다고 해서 비켜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편 조선과 명나라가 왜를 상대로 임진왜란을 하느라 졍신이 없었던 틈을 타서 여진족은 후금(後金)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훗날 청나라가가 되는 후금은 세력을 점점 더 키워가고 있었던 반면, 전쟁이 끝난 후의 조선은 완파되고 명나라도 힘든 지경에 처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후금이 명나라를 치려고 하자 명나라는 조선에 구원을 요청한다.
의리와 명분상으로는 구원 요청을 한 명나라를 당연히 도와줘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광해군은 오랑캐와 싸우다가 짓밟히는 한이 있더라도 사대의 예를 다하는 것이 명나라 황제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라며 명나라에 2만의 군대를 파병하는 한편으로 후금에도 서신을 보내 "조선은 명이 두려워 2만의 병사를 파병하였으나 금과는 싸움을 원치 않는다. 부디 그 병사들을 무사히 조선으로 돌려보내주시기를 부탁드린다"는 뜻을 알린다.
후금과 명나라의 중립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광해군의 중립외교다.
광해군은 명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 실리를 따지는 실용주의자로 21세기가 원하는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이다. 전란을 수습하고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광해군을 연산군과 맞먹는 폭군으로만 생각하던 있던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역사적 사실이다. 왜 우리가 광해군을 폭군으로 잘못 알고 있게 된 것일까?
■ 광해군 그의 폐위과정과 역사적 재평가
폐모살제(廢母殺弟), 어머니를 폐하고 형제를 죽였다는 이유로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하게 된다. 왕이 아닌 광해군으로 불리는 그가 폐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붕당이란 조선중기 학맥과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형성된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붕당정치는 선조 때 시작되었는데, 조선 중기에 사회와 정치를 주도했던 사림파들끼리 패가 나누어지게 된다. 처음엔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지고, 동인은 다시 북인과 남인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선조가 세상을 떠난 후 광해군 때는 임진왜란에서 함께한 북인이 득세를 하고 있었다. 이 북인은 개방적이고 실리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광해군과 북인을 몰아내고 정권을 탈취하는 것이 목표였던 서인들은 광해군에게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어 중전 유씨를 폐하라고 종용하고, 광해군은 그에 대응해서 "그대들의 뜻을 들어 중전을 폐하겠노라. 허나 중전이 그대들과 같은 서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폐위되어야 한다면 과인 또한 서인이 아니다. 허니 나도 함께 폐위시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광해군은 늘 암살의 위협도 느꼈는데, 그것도 바로 서인들 때문이었다. 서인들은 광해군이 하는 일이라면 하나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지주인 그들은 대동법도 마땅치 않았고 중립외교도 싫어했다. 결국 명분과 의리만 따지는 답답한 서인들의 주도하에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이때 남인들이 서인들을 도왔다.
인조반정의 명분은 폐모살제, 즉 어머니를 죽이고 동생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광해군은 북인들의 꼬드김으로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켜 버린 바 있었다. 이로써 광해군은 쫓겨나고 북인은 사실상 괴멸당하고 만다. 그 후 서인들이 집권을 하고 비집권 야당은 서인을 도왔던 남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서인과 남인의 공조체제가 이루어진 것이다. 폐모살제는 사실상 광해군을 폐위시키기 위한 명분으로 삼은 것이었다.
■ 서인들이 집권 이후의 세상
그 후 인조가 왕위에 오르고 후금이 청나라가 되고, 명나라를 거의 멸망해 가고 있을 때, 청나라는 조선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명령한다. 만일 광해군이 왕위에 계속 있었으면 이런 상황에 이르기 전에 미리 잘 조율해서 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조와 서인은 그 말에 발끈해서 전쟁을 하자고 덤볐고 결국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된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전쟁이 발생하자 조선은 일방적인 대학살극을 당한다. 인조는 한겨울에 도망가다가 남한산성에 숨고, 결국은 청나라 군인들에게 맨발로 질질 끌려나와 오늘날의 삼전나루, 즉 한강고수부지로 끌려간다. 그리고 높은 계단 위에 올라앉아 있는 청나라 왕에게 이마를 얼어붙은 땅에 대고 절을 하다가 이마에서 피를 흘리기까지 하는 굴욕을 당한다. 이것이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으로, 삼전나루에서 청나라 태종 훙타시에게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의 예(禮)를 갖춘 것을 말한다.
이것이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과 인조의 모습이었다. 인조 아들도 청나라로 끌려가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우리나라 여자들은 다 잡혀갔다가 성노리개 노릇을 하다가 배가 불러서 돌아온 고향으로 여자들도 많았다. 이 여자들을 환향녀라고 불렀는데, 나중에는 행실이 부적절한 여자를 일컫는 욕으로 쓰이게 되었다. 결국은 백성을 이 지경으로 만들고, 이마에 피를 흘리려고 인조반정을 벌인 꼴이 되고 만 것이다.
■ 폐위 이후의 광해군의 삶
강화도로 유배를 간 광해군은 중전 유씨와 폐세자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지낸다. 그 후 아들이 땅굴을 파다가 끌려나오는 모습을 나무에서 망을 보던 며느리가 보고 놀라서 떨어지고, 광해군이 보는 앞에서 아들이 끌려나와 죽는다. 충격을 받은 며느리는 스스로 목을 매어 죽고 홧병이 난 중전도 죽어버린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며느리가 죽는 모습을 본 광해군의 말년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 후 광해군은 강화도에서 다시 제주도로 유배를 당하는데, 유배를 가는 도중 추운 날씨에 군인들은 윗방에서 따뜻하게 자고 광해군은 아랫방에서 추위에 떨며 자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 가서는 계집종을 하나 붙여주었는데, 이 계집종마저 광해군을 면박을 주면서 종 취급을 했다고 한다.
이런 쓸쓸한 죽음을 맞은 광해군은 그가 살아 생전에 이룬 업적에 비해 오늘날 너무 폄하가 된 점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광해군이 죽은 후 광해군일기를 썼던 사람들이 서인인데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조선을 집권해 온 것도 서인이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을 위해 전란을 다스리고 여러 가지 빛나는 업적을 남겼던 광해군에 대해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라 해도 잘한 것은 잘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재평가의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상, 왕의 얼굴 광해군(서인국)의 빛나는 업적과 중립외교, 그리고 쓸쓸한 몰락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