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에서 배우는 경제원리는 일상에 숨어 있는 경제원리를 찾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나간 자장면 경제학에서 발췌요약한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인 저자 오형규님은 30년 가까이 경제기자로 일해 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제를 보다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는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작품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한 것이므로 그 밑바탕에는 경제적 토대가 자리한다고 말한다.
작가 자체가 사회적 존재인 만큼 경제사회사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으며,
또 인간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본연의 임무인 문학은 인간이 가진 이기적 행동의 특성을
파악하는 경제학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경제원리를 형상화해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인어공주의 선택과 기회비용
문학작품에서 배우는 경제원리 - 안데르센 <인어공주>의 선택과 기회비용
어린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는
흔히 자신이 구해준 왕자를 사랑하다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 인어공주의 슬픈 사랑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슬픈 사랑이야기 속에는 가장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잘 녹아 있다.
인어공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바친다.
이때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욕구’이며 목소리는 그 ‘대가’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며,
세상에 ‘공짜 점심’(free lunch)은 없다는 경제원리가 작용한 결과인 것이다.
한국 전래동화 <심청전>에서 심청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대가는 공양미 3백 석이었다.
이는 심청의 목숨이 갖는 교환가치다. 심청의 소원(효용, 만족)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고 그 대가(기회비용)는 자신의 목숨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동화 <왕자와 거지>에서도 선택과 교환의 경제원리가 작용한다.
즉 왕자는 자신에게 희소가치가 있는 재화(거지가 되어보는 것)를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왕자라는 신분)을 일시적이나마 포기해야 했다.
문학작품에서 배우는 경제원리 - 마크 트웨인 <왕자와 거지>의 선택과 교환의 경제원리
■ 오 헨리의 합리적 소비와 과소비
오 헨리 <크리스마스 선물>과 모파상 <목걸이> - 합리적 소비와 과소비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그 욕망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소비다.
소비는 넘쳐도 문제, 부족해도 문제다.
그래서 소설에도 합리적 소비와 허망한 과소비를 다룬 것이 많다.
오 헨리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서로 극진히
사랑하는 부부는 자신이 가진 것을 팔아 상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다.
남편이 손목시계를 팔아 산 빗과 아내가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잘라 산 시계줄은
각자 최선의 선택이자 합리적인 소비였다.
부부는 서로에게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을 주려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또한 빗과 시계 줄은 상대방에게는 가장 필요한 선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파상의 단편소설 <목걸이>에서 주인공이 빌린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과소비의 허망함을 상징한다. 잃어버린 목걸이를 변상하려고 10년을 고생한 끝에
알게 된 사실은 그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것이다.
■ 다니엘 디포의 홀로 사는 삶, 함께 사는 삶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 홀로 사는 삶, 함께 사는 삶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인간이 무인도에서
홀로 자급자족하며 살 수 있을까?
로빈슨 크루소는 칼은 갖고 있었고, 문명사회에서 익혔던 지식과 기술이
기억 속에 있었기에 홀로 생활이 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구해준 소년 프라이데이와 함께 살았으니 혼자만의 삶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독자생존은 원시시대에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렇게 자급자족하는 경제의 생산성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무엇을 만들도 혼자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 하니
당장 먹을것을 구하기에 급급한 생활일 수밖에 없다.
■ 문학은 경제·사회사의 압축판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 16세기 유럽의 상거래와 분쟁조정 과정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에서는 16세기 유럽의 상거래와
분쟁조정 과정을 읽을 수 있다. 당시 베니스(베네치아)는 국제무역의 중심지인
자유로운 도시국가였음에도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컸음을 보여준다.
특히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요구한 1파운드의 살은
요즘 악덕 사채업자들이 신체포기 각서를 요구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채만식의 <탁류>와 <태평천하> 같은 리얼리즘 소설들은
식민지 지배 아래 경제·사회상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탁류>에서는 ‘미두’(米斗)가 등장하는데, 미두란 실제 쌀(현물) 거래 없이 쌀값 변동을 이용해
매매하는 일종의 투기거래로, 요즘으로 치면 선물(先物)거래에 해당된다.
초봉의 아버지가 당시로서는 선진기법인 미두로 인해 몰락하고
초봉이 기구한 삶으로 전락하는 과정은 식민지경제가 보여주는 귀결이다.
<태평천하>에서도 주인공 윤직원 영감은 식민지경제 환경이 자신에게는 ‘태평천하’라고 독백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대다수 민초들에게는 ‘지옥 같은 삶’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 연암 박지원의 독점과 경제의 윤리
연암 박지원 <허생전> - 독점과 경제의 윤리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의 허생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17세기 조선을 개혁하고자 하는 이상주의자다.
하지만 허생이 돈을 버는 과정을 보면 현대의 경제원리를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생은 매점매석(독점)의 대상으로 과일과 말총을 택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중시하는 당시 조선에서 대추, 밤, 배 등 제사상에 쓰일 과일은 가격이
올라도 수요가 줄지 않는다. 즉 가격 변화에 대해 수요변동폭이 미미한 비탄력적인 품목이다.
또 말총은 망건을 만드는 유일한 재료여서 대체재가 없으니 독점적인 공급자가 가격을 좌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협상에서든 자신의 욕심만 채울 수는 없다. 그래서 상거래에서는 상도의가 필요하다.
최인호의 <상도(商道)>는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좌우명인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즉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라는 교훈과
‘계영배’(戒盈杯, 넘침을 경계하는 잔)의 교훈을 던져주는데,
이 가르침은 ‘욕구’가 지나쳐 ‘탐욕’으로 흐르기 쉬운
오늘날의 경제상황에 대입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