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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최인호 유고집 눈물..고흐 헤밍웨이 가우디 도스토예프스키의 열정적인 삶과 죽음

 

최인호 유고집 눈물은 작가 최인호님의 마지막 원고가 수록된 책입니다.
침샘암으로 지난해 가을(2013년 9월 25일) 세상을 떠난 최인호님은 유고집 눈물을 통해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은 진실된 마음으로 지나온 삶의 아름다움과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신의 기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최인호 베드로는 세상을 떠나기 전 주보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나가신 글이어서 읽고 있노라면 

몹시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토록 외롭고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었지만 그는 그 고통 속에서도 

결코 열정을 잃지 않고 자신은 글을 쓰는 작가인 만큼 작품을 쓰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는 것,

그래서 버틸 수 있는 한 손톱이 빠진 손가락에 골무를 끼고서라도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으며,  

"난 정말 환자로 죽고 싶지 않고 작가로 죽고 싶다"고 절절한 마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최인호 유고집 눈물-죽어버린 육체의 거부할 수 없는 마지막 자백 

 

 

오늘 포스팅은 최인호의 유고집 눈물 중에서 삶이 저마다에게 던지는 불운을 딛고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어니스트 헤밍에웨이,

안토니오 가우디, 김환기 화백, 찰스 디킨스에 관한 글을 발췌요약 및 보충한 글입니다.

 

 

 건축의 성인(聖人) 안토니오 가우디 

안토니오 가우디 

 

 

 

안토니오 가우디는 스페인이 낳은 금세기 최고의 건축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가우디가 지은 건물은 모두 달라서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을 관찰하여 응용한 그의 건축물들은

벽이나 천장에 곡선이 많고 내부장식과 색, 빛이 모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가톨릭에서 찾을 수 있었던 심오하고 탁월한 미적 감각을 건축에 부여한 

그는 하나의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새로운 창작의욕이  넘쳤으며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건축의 성인(聖人)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대성당)

 

 

'건축이야말로 희생의 길’임을 강조했던 가우디가 남긴 20세기 최고의 걸작품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성가족성당)이다.

1882년, 가우디가 첫 돌을 한 개 쌓아올림으로써 시작된 이 성당은

“이것은 마지막 성당이 아니라 어쩌면 새로운 형태의 최초의 성당일 것이다”라고 예언한

그 자신의 말처럼 건축을 단지 건축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진정한 예술로 승화하여

종교와 접목시킨 20세기 전 세기를 통한 최고의 건축물이다. 

 

 

 

12개의 자화상으로 남은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는 평생 동안 12장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가 그린 자화상은 대부분 권총으로 자살하기 3년 전에 시작해서

주로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작품이었다.
“죽을 때까지 정신병원에 갇혀 있더라도 얼마든지 그림 그릴 소재는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고흐에게 있어 자신의 얼굴이야말로 그가 마음놓고 그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소재였다.

 

고흐가 살아 생전에 팔았던 그림은 단 한 장뿐이다. 그래서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동생 테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던 이 위대한 화가는 때로는 돈이 없어 물감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듯 그의 일생은 불운과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사후 가장 영예를 누린 화가이기도 하다.

 

 

 

한국 근현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연 김환기 

김환기

 

 

 

한국 근현대회화의 추상적 방향을 여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김환기 화백은 

무려 3천여 개라는  어마어마한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며

마지막까지 많은 시도를 보여주준 화가다. 

 

1960년대 말, 뉴욕에 살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오랜 친구인 김광섭의 시를 읽었다.

당시 가난과 고독에 지쳐 있었던 그는 긴 투병 끝에 놀라운 기적으로 소생한

김광섭이 펴낸 시집에서 그는 눈이 번쩍 뜨이는 시를 발견하게 된다.

<저녁에>라는 제목의 시였다.
이 시를 읽는 순간 그는 자신이 버림받은 존재라는 것을 이겨내고

그립고 다정한 얼굴들을 생각하며 점과 선이 무수히 반복되어 찍혀지는

점묘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다음은 김환기 화백으로 하여금 말년의 대표작을 낳게 한 시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러시아 문학의 최고 거장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1849년  봄, 몇 명의 사형수가 형장으로 끌려나왔다.

‘거총’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심장에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 달카닥, 탄환을 격발시키는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때 갑자기 말발굽 소리와 함께 한 병사가 소리치며 나타났다.
“사형 중지. 황제가 특사를 내리셨다.”
이때 한 사형수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총살당하기 직전에 발작을 일으키며 살아난

사형수는 바로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원고료로 겨우 먹고 살았다.

그래서 그의 후기 소설들은 굉장히 긴데, 그 이유는 소설의 길이가 늘어나면

원고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그나만 돈이 좀 있으면 도박으로 날리곤 했다.

그가 도박중독에 걸린 이유는 있는 돈을 다 날림으로써 

사형수가 되었다가 되살아났을 때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였다는 얘기도 있다.

판돈이 걸렸을 때의 느낌과 두근거리는 쾌감을 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평생을 불우하게 보냈으면서도 빚에 몰려 쓴 그의 작품은 불후의 명작이 되었다. 

 

 

 

생전에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해마다 발표된 5편 중 첫번째 작품이다.

 

주인공 스쿠루지는 인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수전노다.

그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동업자였던 사람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하룻밤의 꿈을 통해 어린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죄를 뉘위치게 된 스쿠루지는

마침내 성탄절 말 아침 꿈에서 깨어나 이렇게 탄성을 발한다.
“아, 어제와 다음 없는 오늘 아침인데 내 마음을 왜 이토록 편안하고 새털처럼 가벼울까.”

이 유명한 작품을 통해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철학’이라는 독특한 자신의 작품관을 표출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고 싶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며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 좋은 인생을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는 성서의 말처럼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우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행동을 낳고 

우리의 행동은 습관을 낳으며

습관은 성격을 낳고 성격은 운명을 낳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로 변하려면 우리들의 생각부터 바꾸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디킨스는 소설의 인기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가정적으로는 별로 행복하지 못했다.

게다기 돈을 번 뒤에도 어린시절처럼 가난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편집광 같은 두려움을 느껴 여러 은행에 예금을 해두었는데,

그가 죽은 뒤에도 그런 계좌가 몇 개나 되는지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삶을 사랑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밖으로까지 환히 불빛이 비쳐나오는 텅 빈 술집 안에 알코올중독자인

한 고독한 남자가 홀로 앉아 술을 마시며 중얼거린다.

 

“하늘에 계신 허무한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허무하게 빛나시며,

그 나라가 허무하게 임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허무하게 이루어지소서.
오늘 우리에게 허무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허무하게 용서하듯 우리의 죄를 허무하게 용서하시고

우리를 허무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허무한 우리를 구하소서.
허무한 주의 이름으로 허무하게 아멘.“

 

‘허무’는 헤밍웨이 작품의 공통된 주제다.

밤이 새도록 술을 마시는 그 허무한 술꾼에게 있어 마지막 한 잔의 술잔이야말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유일한 걸림돌이다.

딱 한 잔만, 계속 이런 미련 때문에 모든 것이 허무한 술꾼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바로 술 한 잔 때문에, 돈 한푼 때문에, 열쇠 하나 때문에, 훈장 하나 때문에

방황하면서 허무한 하느님에게 허무한 술타령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실제로 전쟁에 뛰어들기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추락하여

큰 중상을 입기도 하고 일생 동안 세 번 이상 이혼하고 새로 결혼했지만

자신이 소설 속에 표현하듯 허무한 이생과 허무한 고독 속에서

마침내 사냥총을 입에 물고 스스로 방아쇠를 당겨서 자살하고 만다.


항상 불끓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해 사냥, 복싱 등 위험하고 강렬한 스포츠를 즐기고,

싸움도 꽤 잘했던 그는 자신을 세상에 과시하는 것을 매우 즐겼으며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명 연예인처럼 자신의 화려한 사생활을 노출하는 것도 즐겼다. 자살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이 늙어 세상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였다는 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