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식민지배에 ‘비폭력’ 으로 맞섰던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의 조각상이
영국 런던의 의회 광장에 들어설 것이라는 뉴스입니다. 중국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반성은 고통스러웠지만 옳은 것이었다”며 과거 침략의 역사를 반성한 데 이어,
인도를 식민지배한 영국이 자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펼쳤던 간디의 조각상을
의회 광장에 세우는 것은 과거사를 기억하는 영국 나름의 방식이자 일종의 사과로도
보인다고 7월 8일 AFP통신은 전했습니다.
헤이그 외무장관은 “간디의 평화사상과 차별에 대한 저항, 인도를 나아가게 하려는 열망과 비폭력주의는
오늘날에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고, 오스본 재무장관은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의 아버지인
간디를 ‘의회들의 어머니’(영국의회) 앞자리에 모실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런던 의회 광장에는 현재 윈스턴 처칠 등 역대 영국총리 7명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신인
남아프리카연맹의 얀 스머츠 전 총리,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등 10명의 조각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간디 조각상은 2015년 초까지 완성될 예정이며, 2015년은 간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다가 인도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나선 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간디의 금욕과 무소유
간디의 조각상을 세운다는 뉴스를 들은 김에 간디의 비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그가 있기 위해서는 인도 5천 년의 종교문명과
유럽 5백 년의 과학발달, 그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짓눌려
고통받는 20억이 넘는 유색인종이 필요했다. 간디는 현대 역사의 조명탄이며,
20세기 인류는 간디라는 위대한 혼을 쏘아올렸고,
지금도 그 타오르는 빛 속에서 새 시대의 길을 찾고 있다.”
위 글은 함석헌님이 간디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수십억 인구 중에서 간디 외에 누가 이처럼 위대한 존재로 표현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인류의 횃불로 일컬어지는 간디의 핵심사상은 아힘사(사랑과 비폭력),
브라마차리아(금욕), 아파리그라하(무소유), 사티아그라하(진리)입니다.
그리고 간디의 일생은 한마디로 아힘사, 즉 사랑과 비폭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를 평생을 지키며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했습니다.
간디의 사랑과 비폭력
그가 아힘사를 처음 접하고 깨달은 것은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그는 열두살 때부터 나쁜 친구의 꾀임에 빠져 종교적으로 금지된 담배를 피우고
또 육식마저 취했습니다. 비싼 고기를 사려면 돈이 필요했으므로 처음에는
하인의 돈을 훔치다가 나중에는 형의 팔찌에 붙은 금 한 조각을 훔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철저한 종교정신과 엄한 부모의 교육 아래 있던 그는 자신의 나쁜 행동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고백한 글을 드렸습니다.
그때 그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으리라고 예상했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사랑의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그런 아버지 모습에서 그는 아힘사, 즉 사랑과 비폭력의 힘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다시 말해 비폭력이란 상대에게 매를 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매를 가했을 때보다
더 막중한 책임을 부여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때 느낀 아힘사를 간디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실천에 옮겨갑니다.
그는 아힘사에 대해
“진정한 아힘사는 단순히 내가 폭력을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이 몸과 마음, 생각 모두를 지배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며,
그 안에서 영혼이 숨쉬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간디의 진리
이런 아힘사가 갖는 힘의 한계는 무한대이며, 이는 겸손의 극치에서 나옵니다.
당시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머무르는 동안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로 수차례 3등열차나
3등칸의 배를 탔는데, 간혹 2등칸 표를 사서 앉아 있다가 검표원에게 발각되어
역으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합니다. 그 역은 너무 추워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3등칸의 배 안에서는 용변을 보려면 주변 가득 똥오줌이 즐비한 곳을
건너야 하는 대접을 받았지만, 간디는 단 한 번도 그들과 몸싸움을 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순순히 시키는 대로 끌려가 말없이 그런 수모를 겪었습니다.
이 외에도 그는 변호사로서 혹은 민족운동가로서 활동할 때도 정부에서
몽둥이를 휘두르고 피를 흘리는 상황임에도 당당히 비폭력으로 맞섰습니다.
그에게 있어 모든 인도인은 한가족이었으며, 힌두교인 외에도 이슬람교인,
기독교인, 그 외 종교인들도 모두 하나로 보았습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상대방을 두고도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는 무(無)를 솔선수범해 보인 것입니다.
“비폭력은 원자폭탄도 파괴할 수 없다”는 간디의 말에
당시 인도 관리였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은
“인도 독립을 위해 일하는 저 벌거벗은 탁발승을 깔아뭉개 죽이고 싶다“는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는데,
그에 대해 간디는 “육체는 깔아뭉갤 수 있을지언정 영혼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맞받아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간디였기에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눈 암살자에 대해서도 항변하지 않고
“오, 하느님!하는 한 마디만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간디의 사랑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있는 간디기념 공원묘원에는 간디가 말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1. 원칙 없는 정치
2. 노동 없는 부(富)
3. 양심 없는 쾌락
4. 인격 없는 교육
5. 도덕 없는 상업
6. 인간성 없는 과학
7. 헌신 없는 종교
그때나 지금이나 그토록 부르징어도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을 보면,
인간으로서는 정말로 바로잡기 어려운 사회악들인 건가 싶어집니다.
한편 1999년 4월 18일 미국 시사주간지 뉴욕타임스는 지난 천년간 최고 혁명으로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한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운동 을 선정한 바 있습니다.
▶ 참조도서 <성격리더십> 조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