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와 부인 멜린다는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세상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는 "만약 혁신이 순전히 시장 주도로만 이뤄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큰 불평등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놀라운 진보와 발명은 세계를
더욱 더 크게 갈라놓고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오늘 포스팅은 빌 게이츠의 축사를 읽고 생각난 일들을 적은 것입니다.
7, 8년 전이었습니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카메라를 하나 새로 사려고 남대문 쪽에 나갔다가
서울역에 볼일이 있어서 그쪽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길을 가로질러가려고 서울역을 향해
대각선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그 길 가운데에 처음 보는 나지막한 지하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왠지 어둠침침해 보여서 다른 길로 갈까 하다가 그래도 그 길이 지름길인 것 같아
무심코 발을 들이밀었는데, 그 순간 뜻하지 않은 장면에 접하게 되었지요.
지하도 안 가장자리에 꼬질꼬질한 이불이며 낡은 종이박스 등으로 잠자리를 마련한
노숙인들이 벽에 기대앉아 있거나 혹은 드러누운 모습으로 양옆으로 죽 늘어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쳐지는 심정이었지만, 초췌하고 늙스구레한 아저씨들이
마치 뱀이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매서운 눈초리로 빤히 지나가는 저를 보고 있어서
애써 태연한 척하며 그리 짧지 않았던 그 지하도를 간신히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노려보는 듯한 눈초리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였습니다.
여름이어서 더 그랬을 테지만, 숨을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마음 같아서는 코를 움켜쥐어서 사정없이 파고드는 냄새를 막고 싶었지만,
그분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되도록 숨을 억누른 채 가까스로 그곳을 빠져나왔었지요.
▶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런 신산스러운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그분들에게 손쓸 길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그곳을 지나오면서, 왠지 전에도 언젠가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기억을 되짚어보니,
직접 보았던 것은 아니고 프랑스 신문기자 출신인 도미니크 라피에르가 인도 캘커타에 머물면서
그 나라 극빈층들의 삶을 그린 [천개의 태양]에 그와 유사한 장면을 묘사한 글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태풍이며 홍수며 가뭄이며 해마다 쉴새없이 번갈아 찾아드는 천재지변으로 농촌에 살던
인도사람들은 도저히 끼니를 잇기가 어려워 가족단위로 무작정 도시로 도시로 몰려나옵니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이불보따리며 솥단지, 식기 등 가재도구가 들려 있습니다.
집도 절도 없는 그들이기에 하루 종일 각자 그 짐들을 들고 다니다가,
밤이 되어 오가는 차들이 뜸해지면 자동차길 가장자리에 자신들의 잠자리를 마련합니다.
낮 동안 들고 다녔던 짐들을 자신들의 주변에 쌓아 낮은 담을 만들고 나면,
딱 그만큼의 공간이 그날 밤 그들이 묵을 숙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면 그 집은 사라지고, 다시 하루 종일 정처없이 떠돌다가
그날 밤 발길이 머문 곳이 다시 그들의 잠자리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비참한 삶속에서도 정작 그들은 그 모든 고난을 카르마(업)라 여기고,
이승에서 고난이 심할수록 업장소멸하여 다음 생에서는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것을
굳게 믿고는, 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밝고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삽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아프게 다가왔던 것은 단지 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단지 극빈층의 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죽을 때까지 끝모를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사람들의 불행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무슨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을 이런 처참한 가난으로 내몰고도 천연덕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사는 사람들도 많지만, 직접, 간접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입니다.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은행가]인 무하마드 유누스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은행인 그라민은행의 창립자입니다.
방글라데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유학을 하고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고향의
대학교수가 되어 돌아온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극빈자들의
가난 문제에 눈을 뜨게 된 것은 1974년 방글라데시에 대홍수가 닥쳤을 때입니다.
국토의 절반이 물에 잠기고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떨며
뼈만 남은 앙상한 모습으로 거리를 떠돌다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학문의 전당이라는 상아탑에서 강의하는 공허한 경제학 이론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하는 회의와 환멸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큰 충격에 빠진 그는 극빈자들의 삶을 알기 위해 책과 대학을 내팽개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서 받은 돈 중에서 겨우 10분의 1만을 자기 몫으로 갖는
구조라면 절대로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많이 가진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은행들의 행태에 반기를 들고 그라민은행을 창립했고,
그 후 1억이 넘는 극빈자들에게 무담보대출을 제공함으로써 끔찍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유누스는 “왜 이 지구상에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라는 물음에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달나라에 가고 싶어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
멀리 살아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전화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이루고자 한 것은 기필코 이뤄냈다.
만일 우리가 이뤄내지 못한 것이 있다면,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욕구가 지금도 변함이 없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가난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는 속담도 있지만, 그는 그런 가난조차도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최대 최대 갑부 명단에 오르는 한 사람이자 세계 최대 기부자이기도 한 빌 게이츠입니다.
지난 6월 15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와 부인 멜린다는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졸업생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세상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빌 게이츠는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때 자신이 '순진한 낙관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마법이 모든 이들에게 능력을 부여할 것이고, 이에 따라 세계는
훨씬 좋은 곳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당시에는 큰 회사들만 컴퓨터를 살 수 있었지만,
우리는 보통 사람들에게 이와 똑같은 힘을 제공하고 컴퓨팅을 '민주화'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1997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소웨토 지역 빈민들의 삶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기, 수도, 화장실, 도로가 없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만약 혁신이 순전히 시장 주도로만 이뤄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큰 불평등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면, 놀라운 진보와 발명은
세계를 더욱 더 크게 갈라놓고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부인 멜린다는 당시 빈민들의 끔찍한 삶을 목격한 남편이 집으로 전화를 했을 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하면서 "낙관론은 수동적으로 있으면서 '모든 게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이며 믿음이다.
희망을 품고,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도움을 주라"고 당부했습니다.
이어서 멜린다는 "가난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보고 저게 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공감은 더욱 강해진다"면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빌은 믿을 수 없이 열심히 일했고, 성공을 위해서 많은 희생을 했다.
하지만 성공에는 또 다른 필수요건이 있다.
바로 '운'이다.
완전히 순수한 운이다.
여러분들이 언제 태어나는지, 부모는 누구인지, 어디서 성장했는지,
그런 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성취하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일 뿐이다.
만약 그런 운을 타고나지 못했고 우리가 누렸던 혜택을 못 받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면,
가난한 사람을 보고 '저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다'고 깨닫는 게 쉬워진다.
그게 바로 공감이라는 것이다."
언행일치의 실천적 삶을 살고 있는 게이츠 부부이기에 그 말에 진정으로 큰 무게가 실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