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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 보는 세상

세종대왕의 지식경영과 토론의 적 네 가지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이라는 부제를 단 <세종처럼>세종대왕의 리더십을 현대경영에

접목시킨 책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 및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전통연구실장으로 세종실록학교,

서울대학교 등에서 세종과 정조의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는 저자 박현모 교수는 실록에 나타난

세종의 모습을 '신하들과의 소통', '백성에 대한 헌신', '국가 최고경영자로서의 리더십'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면서 우리 시대를 이끌 최고의 한국형 리더십 의 표본으로 세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책에서 어록으로 살펴본 세종의 십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② 왕을 추대한 백성들에게 헌신하라

③ 인재를 기르고 선발하고 맡겨라

④ 싱크탱크를 활용하고 회의를 잘하라

⑤ 억울한 재판이 없게 하라

⑥ 외교로 전쟁을 막고 문명국가를 건설하라

⑦ 영토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

⑧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온힘을 기울여 실천하라

⑨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라

⑩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라

 

 

세종이 그토록 많은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국가의 일을 내 책임이라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세종이 이러하기에 여러 인재들도 "임금은 비록 세종이지만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라는 마음으로 소임을 다했지요.

이것이 세종리더십의 가장 핵심적인 비결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저자가 세종의 국가경영 마인드맵을 통해 살펴본 인재경영, 지식경영,국방외교경영,

북방영토경영, 창조경영, 감동경영 중 <세종의 지식경영 평가와 토론의 적 네 가지>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세종은 잘 알고 있듯이 글을 몰라 삶이 답답한 백성들을 위해 애민(愛民)정책을 펼쳐보였고,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소통과 논쟁과 연구를 했던 통치가다.

특히 세종은 어전회의에서 회의라는 기본적인 제도를 잘 이용함으로써

중요한 정보와 고전 속의 지식을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했다.

한마디로 지식경영을 잘한 것이다.

 

최고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자 자신의 최상의 판단과 조직원들의 적극적인 동참이라고 볼 때,

세종은 경연 등 어전회의에서 중요한 정보와 지식을 획득해서 신중한 결정을 내리곤 했다.

집현전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을 만들어 인재를 기르고, 서적수집과 보관, 편찬 등

고급정보를 바로바로 이용할 수 있게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세종은 어떤 정책과 관련된 전문가들의 숙의를 거친 후 적임자에게 전적으로

위임함으로써 신료들이 높은 참여의식을 가지고 결정된 사안에 적극 참여하게 했다.

"의심스러우면 맡기지 말고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라”라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다.

 

 

 

 

세종 회의의 제1원칙은 <충분한 토론과 전적인 일임>, 제2원칙은 <좋은 의견이 나오면 바로 힘 실어주기>였다.

반면에 세종이 <토론의 적>으로 여긴 것은 다음 네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토론의 적 1-형식적으로 일관하는 사람

 

건국 후 태종시대까지의 정치적 격변을 거치며 관료들은 보신(保身)을 위해 회의시간에 침묵하기 일쑤였다.
기껏해야 주어진 업무를 마지못해 보고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마음속의 말을 꺼내지 않고 일만 보고하는 것은 회의에서 제일의 장애물이었다.
세종이 신하들의 의견을 두루 듣되 직언을 요구한 것은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신하들의 말을 듣고 좋은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 매우 적극적이었는데,

특히 말끝마다 “경들의 의견을 말해 보라”고 하여 신료들을 토론에 초청하곤 했다.

이 때문에 당시 신하들은 세종을 “토론을 즐겨하는” 군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토론의 적 2-현학적 지식으로 일관하는 사람 

 

두번째 장애물은 일과 무관한 말을 현학적으로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너무 장황하게 말만 많으면 회의 참석자들은 괴로워하는 법이다.
당시 예조판서 신상이라는 사람이 그랬다.

말재주가 있어서 매양 회의 때마다 절실하지도 않은 일을 끌어다가 되풀이 이야기하므로

어떤 때는 해가 저물도록 끝내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회의에 나가면 사람들은

"말이 긴 사람이 온다. 오늘 회의는 틀림없이 오래 가야 끝날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회의시간에 사사로운 이야기를 옆사람과 수군거리다가 세종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말하자면 세종시대에도 ‘토론의 적’들이 있었던 셈이다.

 

정확성이나 사실성이 없는 장광설을 늘어놓는 사람들에 대한 세종의 대처법은 간단했다.

말 사이사이에 왕이 개입하여 구변 좋은 사람의 말이 바다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한편,

해당업무의 실무자를 배석케 하여 당면문제를 제기하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토론의 적 3 - 무조건 찬성하는 사람

 

세번째 난관은 국왕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려는 태도였다.
태종시대에 위로부터 내려오는 지시를 수행하는 데 익숙해져 있던 신료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논해서 아뢰라”는 등의 회의방식은 낯선 것이었다.
매번 좋은 의견을 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왕의 뜻을 거스르는 주장을 했을 경우 당하게 될 문책이 두렵기도 했다.

따라사 가장 안전한 방법은 국왕의 눈치를 보아서 그 뜻을 추종하는 일이었다.

 

이에 대한 세종의 해결책은 명쾌했다.

회의 참석자 중에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토론을 통해 사전에 문제점을 발견하고 예방한 것이다.

 

 

토론의 적 4 – 토론 참가자들의 의견차이와 감정대립

 

네번째 어려움은 회의 참석자들끼리의 의견차이 및 감정대립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황희의 역할이 컸다.
“네 말도 옳다”라는 옛이야기로 유명하듯 황희는 어느 편을 들지 않고 듣는 쪽의 입장에서

말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회의시간에 논의된 내용을 정리하는 데 뛰어났다.

 

세종은 논의의 맨 마지막에 황희 정승이 토론내용을 정리한 다음 짤막하게 생각을 덧붙이면

“황희의 말대로 하라”고 그 의견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결론적으로 세종은 토론과정에서 반대자들까지도 납득할 정도의 조건을 조성해 주는 것과 설득을 바탕으로

자신의 비전을 향해 모든 신민들이 “국가의 일을 나 자신의 임무로 느끼며”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을 우리 역사 최고의 지식경영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은  세종의 회의규칙 6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세종의 6가지 회의규칙

 

 

1. 곧은 자세로 회의에 임하라.

    신하들에게 어전에서 땅에 엎드리지 말라고 지시했다.

 

2. 국왕의 잘잘못을 모두 직언하라.

    상서를 만나면 상서를 말하고, 재변을 만나면 근심과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3. 긴급사안이 발생했을 때는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라.

    조속히 결정해야 하는 공사의 경우 한 장소에서 가부를 회의하여 서로 논란한 후 계달하도록 했다.

 

4. 소수의 의견도 끝까지 경청하되, 한 사람의 말만 가지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5. 모든 말을 다 듣되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논의 끝에 왕이 옳다고 판단한 일이나 소모적인 정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문제는

    신하들의 개진을 차단하기도 했다.

 

6. 회의에서 좋은 의견이 나오면 힘을 실어주어서 정책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