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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세 가지 색 블루 / 화이트 / 레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세 가지 색 블루 / 화이트 / 레드

 

폴란드의 세계적 영화 거장인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세 가지 색 블루], [세 가지 색 화이트], [세 가지 색 레드]의 간략한 줄거리 소개와 리뷰입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프랑스와 폴란드의 관계를 나타내는 <세 가지 색 3부작>의 영감을 프랑스 삼색기에서 얻었다고 하는데, 블루는 자유를, 화이트는 평등을, 레드박애를 뜻합니다. 이 중 [세 가지 색 블루]는 제50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세 가지 색 블루 / 화이트 / 레드

 

세 가지 색 블루(1993년) 줄리엣 비노쉬 /  베누아 레겡 / 위그 케스테

 

정적만이 가득한 시골길, 가족들과 함께 피크닉을 가던 줄리(줄리엣 비노쉬)는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로 유명한 작곡가인 남편 파트리스(위그 케스테)와 다섯 살짜리 딸 안나를 잃는다. 한순간에 사랑했던 모든 것을 잃은 줄리는 가족과 함께 했던 공간과 흔적들, 심지어 남편이 쓰다만 곡까지 버리고는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떠난다.

 

타인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세상과도 단절해 버린 채 고독한 나날들을 보내던 줄리는 어느 날 우연히 남편의 동료이자 자신을 줄곧 사랑해 왔던 남자 올리비에(베누아 레겡)가 남편의 유작을 완성시키려 한다는 사실과 남편에게 숨겨 둔 애인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세 가지 색 블루 / 화이트 / 레드

 

살아남은 자의 슬픔처럼 독한 것이 있을까? 교통사고로 자신만 살아남고 남편과 딸을 잃은 줄리(줄리엣 비노쉬)는 죽느니만 못한 삶 앞에 서게 된다.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거대한 슬픔은 그녀를 짓누르고, 혼자 살아남은 죄책감과 남편과 딸을 잃은 상실감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블루의 빛깔로 표현된다.

 

격한 슬픔을 눈물을 쏟아내야 함에도 줄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편과 함께 살던 집을 팔고, 거처도 옮기고, 작곡가였던 남편의 악보도 모두 없애버리는 등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자기 삶에서 모조리 삭제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사람으로 인해 치유하는 법. 줄리의 삶에 푸른 희망이 깃들기를 바래본다.

 

 

본디 푸른색은 희망과 용기, 도전을 상징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처음에는 우울함, 절망감, 상실감 등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 푸른빛이 결국에는 줄리에게 이 영화의 주제인 <자유>를 주는 빛깔이 된다.

 

줄리엣 비노쉬가 줄리의 절망을 놀랍도록 잘 표현해 낸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같이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26년 전 작품이어서 그런지 [퐁네프의 연인들]에서의 앳된 모습도 많이 엿보인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 아름다운 여인이다.

 

 

세 가지 색 화이트(1994년) 즈비그니에프 자마호브스키 / 줄리 델피 

 

폴란드 남자 미용사 카롤(즈비그니에프 자마호브스키)은 아내 도미니크(줄리 델피)한테 이혼을 당한다. 이혼 사유는 성적 욕구 불만. 모든 것을 잃게 된 카롤은 조국 폴란드로 돌아간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자본주의화되어 가는 그곳에서 도미니크와의 재결합을 위해 돈벌이에 혈안이 된다.

 

웬만큼 돈벌이에 성공한 카롤은 모든 것을 아내에게 양도한다는 유언장과 함께 거짓으로 죽는다. 연민과 속죄의 눈물을 감추며 장례식에 참석한 아내는 지친 몸으로 호텔에 돌아오지만, 침실에서 기다리던 카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카롤이 뜻한 바가 무엇이었던가를 깨달은 그녀는 카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코미디는 코미디인데, 눈물겨운, 짠내나는 코미디다. 그래서 우스운데도 차마 웃을 수가 없다. 카롤(즈비그니에프 자마호브스키)의 불운에 쓴웃음조차 짓기가 미안할 정도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어찌 그리 되는 일이 없는지.. 하지만 아내에게 이혼당했음에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그는 다시 아내와 재결합할 날만 꿈꾸며 사력을 다해 돈을 모은다.

 

돈의 힘과 성적 만족은 비례하는 것일까? 남편과의 관계에서 단 한 번도 만족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구실로 이혼을 요구했던 아내 도미니크(줄리 델피)는 이제 돈을 많이 번 남편에게 만족을 하니 말이다.

 

 

부부의 사랑을 받쳐주는 것은 돈과 성적 만족이라는 이야기일까? 그래야 부부가 평등한 상태에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그렇다면 한쪽이 부족해서 그 부족함을 감싸주기 위해 결혼한 사람은 뭐가 되지? 사랑이 꼭 평등한 두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말이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의도에 따르면 카롤은 폴란드를, 도미니크는 프랑스를 상징한다고 한다. 불평등한 관계에 있던 카롤과 도미니크다. 하지만 카롤이 재산을 축적하고 힘을 가지면서 점차 도미니크와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이처럼 폴란드와 프랑스도 점차 평등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듯하다.  

 

[세 가지 색 화이트]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작품에는 흰색이 많이 등장하지만, [세 가지 색 블루]만큼은 인상적이지 못했다. 아름다운 줄리 델피도 이 작품에서는 왠지 초췌하고 그리 두드려져 보이지 않았다.

 

 

세 가지 색 레드(1994년) 이렌느 야곱 / 장 루이스 트레티냥 / 장-피에르 로릿

 

발렌틴(이렌느 야곱)은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 학생이며 패션모델로 활동한다. 그녀의 이웃에는 오귀스트(장-피에르 로릿)라는 법대생이 살고 있는데 두 사람은 빈번하게 지나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어느날 패션쇼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발렌틴은 개를 치는 교통사고를 내게 된다. 개의 목에 달린 인식표의 주소지로 찾아가지만 개 주인인 노인(장 루이스 트레티냥)은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

 

개를 치료하여 다시 찾아갔을 때 발렌틴은 노인이 남의 집 전화를 도청하는 기벽이 있다는 걸 알고 혐오감을 느낀다. 게다가 노인은 법적 도덕성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껴 1년전에 조기 은퇴한 법관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욱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노판사를 이해하게 된다.

 

한편 노판사는 점차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회복하게 되고 발렌틴의 따뜻한 손길을 보듬는다. 그리고 우연한 만남들이 실은 얼마나 의미가 큰 필연적 만남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발렌틴에게 일깨워준다.

 

 

박애라는 낱말은 흔히 쓰이는 말은 아니다. 교과서나 인문서적 혹은 철학서에서나 보게 되는 말. 사전적인 뜻으로는 모든 사람을 널리 사랑함,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것인데, 갈수록 사람그릇이 작아져 가는 요즘,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선과 악, 선인과 악인, 누가 더 힘이 셀까?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는 속담대로라면 선이, 선인이 더 힘이 세다. 그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발렌틴과 노판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악하게 구는 사람도 온전히 선한 사람 앞에서는 점차 본디의 착한 모습을 되찾아가니까.

 

사랑하는 여자가 외도를 한 후 그 남자와 떠나버리자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사랑도, 사람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 노판사(장 루이스 트레티냥). 그 마음을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위무하는 발렌틴(이렌느 야곱)이다. 처음엔 선을 베푸는 것이 사실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 자신의 만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냐고 다그치던 노판사는 발렌틴의 한결같은 마음 앞에서 결국 무장해제를 해버린다.

 

 

[세 가지 색 블루]에서는 다양한 빛깔의 블루가 표현됐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여 레드를 표현하고 있다. 붉은 신호등은 물론 컵에 담긴 음료조차 붉은빛을 띠는데, 정열적이지만 위험하게 느껴지는 레드는 이윽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빛깔이 되어간다.

 

<세 가지 색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어서인지 [세 가지 블루][세 가지 색 화이트]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요소요소에 나타나 잔재미를 주고 있지만, 작품 자체는 상당히 심오하고 철학적이다. 두고 두고 곱씹어봐야 할 대화도 많고.

 

[메기스 플랜],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레타 거윅만큼이나 잘생긴(?) 이렌느 야곱이 인상적이었고, [아무르]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장 루이스 트레티은 이 작품에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연기를 선보인다.

 

이상,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세 가지 색 블루 / 화이트 / 레드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