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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백만 명 이상을 집단 학살한 인도네시아 암살단의 리더에 대한 다큐멘터리 [액트 오브 킬링][침묵의 시선]으로 유명한 감독입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학살자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재연해 보이는 장면과 그들의 실생활을 보여주고 있으며 속편 [침묵의 시선]은 희생자 가족인 아디의 시선으로 가해자들을 찾아가 이야기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중 정치적 테러와 악마 같은 인간성을 신랄하게 밝힌 [침묵의 시선]은 2015년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엠네스티국제영화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을 대표하는 최고의 다큐멘터리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의 리뷰입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

 

액트 오브 킬링(2014년) 안와르 콩고 / 헤르만 고토 / 시암술 아리핀  

 

1965년 인도네시아 쿠데타 당시 군은 ‘반공’을 명분으로 백만 명이 넘는 공산주의자, 지식인, 중국인들을 비밀리에 살해했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대학살을 주도한 암살단의 리더 안와르 콩고는 국민영웅으로 추대받으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들의 ‘위대한’ 살인의 업적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오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직접 시나리오도 쓰고 연기도 하며 자랑스럽게 살인을 재연해 보이기도 합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자들이 자신들은 양심에 따라 죽인 것뿐이라고 뻔뻔하다 못해 당당한 얼굴로 말한다. 어떤 영화로도 다 표현해 내지 못할 정도의 참상을 저지른 자들이 자기들은 정의에 따라 움직인 것뿐이기에 죄책감도 없고 우울증에 걸릴 일도 없으며 악몽을 꿀 일도 없단다. 자신들이 이렇게 버젓이 대우받으며 잘 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란다.

 

그 주범이 바로 대량학살의 주도자 안와르 콩고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미소마저 지으며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후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반드시 잘 찍어야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말 그대로 '악마를 보았다'고 할 밖에?ㅠㅠ

 

오른쪽 인물이 안와르 콩고. 자신이 어떻게 사람을 목매달아 죽였는지 재연을 하며 활짝 미소를 짓고 있다.ㅠㅠ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지금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왜 그런 악마 같은 자들이 떵떵거리고 배 두드리며 살아가도록 내버려두고 있을까? 일본에 당한 우리나라, 나치에 당한 유태인들만 참혹한 꼴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었건만, 이곳은 또 다른 차원의 킬링필드를 펼쳐보여 준다.

 

효시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 알 것 같다. 그들에게 내리는 벌은 똑같이 꼴을 당하게 한 후 효시를 해야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돌이든 뭐든 마구 던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다고  이 극도의 분노가 가라앉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백만여 명을 죽인 대학살의 주도자가 자기 손주는 엄청 사랑스러운가 보다. 손주를 바라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더라.ㅠㅠ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사람도 트라우마를 치료해야겠지만, 이 악마 같은 자들도 정신과 치료가 필히 필요하지 않을까? 정신과 치료 중에 역할 바꾸기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역지사지의 심정을 억지로라도 주입시킬 필요가 있을 듯싶다.

 

영화 후반부에 안와르 콩고가 직접 고문을 받는 연기를 재연해 보이던 중 죽어간 이들의 고통을 얼마간이나마 돌아보게 되었듯이 말이다. 지금이라도 당시 잔혹한 살인 행각에 참여했던 자들에게 집단치료가 반드시 실행되었으면 싶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의 또 하나의 작품인 [침묵의 시선]도 이어서 보려고 하는데, 벌써부터 눈쌀이 찌푸려진다. 마음도 몹시 무겁고. 그렇다고 피해가거나 외면할 수는 없지. 도전!

 

인도네시아의 군부정권 시절 형을 잃은 아디. 그는 50년 만에 형을 죽인 살인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다.

 

침묵의 시선(2015년)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 대학살의 기억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람리’라는 이름은 곧 학살을 의미했다. 그는 비밀리에 사라졌던 백만 명의 사람 중 유일하게 목격당한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도 모른척 숨죽여 살아야 했던 사람들에게 ‘람리’의 또 다른 이름은 침묵이자 망각이다.

 

그러나 그의 동생 아디는 50년 만에 형을 죽인 살인자를 찾아가 그때의 이야기를 묻기 시작하고, 가해자들은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자신이 저지른 소름 끼치는 살인을 증언한다. 죽음은 있지만 책임은 없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고요하고 잔혹한 이야기다.

 

 

어릴땐 빨갱이라고 하면 온몸이 핏빛으로 물든 도깨비 모습에 머리엔 뿔도 달린 기괴한 인간인 줄로만 알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북한 아이들이 헐벗은 몰골로 먹을 게 없어서 국수가락이나 먹으면서 사는 줄 알았다. 때문에 꼭 그렇지는 않다는 의구심이 들었을 때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또 한편으로는 아마 지금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서 그런 식의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전쟁의 실상에 대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을 넘어 왜곡된 교육까지 시키는 듯하기 때문이다.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공산주의로 몰아 학살한 가해자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아직도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자신의 공적을 인정하기 때문이란다. 그 뒤엔 자기합리화를 위한 음험하고 은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바로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공산당이란 사람의 눈을 파내는 괴물이어서 처단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교육을 계속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야 가르치면 가르친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지만, 성인들은 왜 그 가해자들을 두고 보고만 있는 걸까? 가해자들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거들먹거리며 자신들이 세운 공을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알려야 한다고 큰소리치고 있는데 말이다. 

 

아직도 언제 그때 그 시절처럼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걸까? 하지만 타인의 곤경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자신이 곤경에 빠졌을 때도 침묵의 시선을 받게 될 뿐이다.

 

"공산당이 싫어요"는 우리나라 역사인 줄만 알았는데, 인도네시아에서도 반공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문제는 공산주의 색출을 빌미로 무고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갔다는 것이다.

 

이상,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액트 오브 킬링 / 침묵의 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