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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광복절에 본 봉오동 전투(유해진 류준열)와 절정(김동완)

광복절에 본 봉오동 전투(유해진 류준열)와 절정(김동완)

 

지난 8.15광복절에는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고 돌아와서 오후에는 20011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절정]을 챙겨보았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봉오동 전투]는 항일투쟁을 그린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과 싸워 역사상 첫 승리를 거둔 봉오동 계곡의 전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절정]은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는 시로 우리에게 항일투쟁 정신을 새겨준 이육사의 항일저항 시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광복절에 본 봉오동 전투(유해진 류준열)와 절정(김동완)]의 간략한 리뷰를 포스팅해 보았습니다. [봉오동 전투]에 대해 더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광복절에 본 봉오동 전투(유해진 류준열)와 절정(김동완)

 

봉오동 전투 원신연 감독 / 유해진 류준열 조우진

 

1919년 3.1운동 이후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고 만다.  

 

광복절에 본 봉오동 전투(유해진 류준열)와 절정(김동완)

 

잘 만들어진 전쟁영화였다. [봉오동 전투]라는 제목답게 시종일관 전투가 이어지지만, 그럼, 전쟁영화에서 전투 씬 말고 뭘 더 바란단 말인가?

 

보는 내내 가슴이 울컥거렸다. 조선인들, 일본인들 할 것 없이 총질에 칼질에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들이 너무 비극적으로 여겨져서였다. 사람으로 태어나 도무지 할 짓이 아닌 짓들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일본군들이나 식민지가 되어 독립을 애타게 갈망하는 조선일들이 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움과 분노를 넘어 슬픔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왜 조선을, 대한민국을 그토록 얕잡아보는 걸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듯한 그 나라를 이웃으로 둔 게 무엇보다도 큰 불행인 걸까? 설혹 자기네 나라보다 부족한 점이 있다 한들 꼭 그렇게 온갖 이유를 들어 짓밟아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걸까? 여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필요 이상 넉넉한 마음도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실제로 있었던, 일본군을 대패시킨 독립군의 첫 승리였던 봉오동 전투. 그 전투는 물론 그 후의 전투에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죽어간 분들에게 감사와 경의의 마음을 보낸다.

 

유해진도 믿보배답게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류준열이 누구보다 선전을 한 것 같다. 특히 다람쥐처럼 날쌔게 산을 오르내리는 그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매 영화에서마다 존재감을 더욱 더 높여가는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앞으로 얼마나 대성할지 지켜보는 마음도 함께.

 

홍범도 장군으로 특별출연한 최민식의 등장이 놀랍고 무척 반가웠다. 다음은 청산리 대첩이다!  

 

 

절정 김진만 기획 이상엽 연출 / 김동완 서현진

 

[절정]은 아무도 빛의 존재를 믿지 않았던 암흑시대에 시를 통해 빛이 얼마나 따뜻하고 찬란한지를 보여준 시인 이육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그는 의열단 등 각종 독립운동단체에 참여해 항일투쟁의 불꽃을 피웠고, 생애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한 애국지사였다.

 

일제강점기에 끝까지 민족의 양심을 지키며 죽음으로써 일제에 항거했던 그는 1943년 6월 동대문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돼 베이징 감옥에서 옥사했다.

 

 

"내 고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유명한 이육사의 본명은 이원록이다. 이육사는 항일운동으로 처음 감옥에 수감됐을 때 매겨진 수감번호다. 항일시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항일투쟁을 시만이 아닌 행동으로도 전격 옮긴 독립투사 이육사, 그리하여 마흔의 생애 동안 옥고를 17차례나 치른 이육사다. 

 

일본이 하는 짓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하는 짓이 조선에 시혜를 베푸는 거라는 어이없는 자만심과 오만. 자기네 나라 내부의 분열과 혼란을 조선을 희생양으로 삼아 분출시키려는 교활한 수작. 

 

그런데 그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왜 달라지지 못하는가? 지금도 우리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은 일본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그들과 시간과 공감을 함께하는 동시대 사람들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부끄러움은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들의 몫일 뿐이다.

 

 

그러나 이육사는 자신의 항일정신의 바탕은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었다고 말한다. 딱히 핍박받는 조선인들뿐만 아니라 그 가엾은 조선인들을 가혹하게 고문하며 사악하게 구는 또 다른 친일파 조선인들, 그 조선인들을 짓밟는 일본인들 모두 측은히 여기는 데서 오는 거대한 슬픔, 그리하여 그 슬픔을 시로 토해내고, 그 시를 읽는 사람들은 그 시 귀절들에서 슬픔을 다스리고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가 보다.

 

독립운동은 당사자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부모, 아내, 자식의 고생과 기다림이 있었기에 그들의 항일투쟁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일부러 찾아 보았던 드라마 [절정]이다. 그리 길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에 온갖 감정들이 가슴 속에서 조용히 회오리쳤다. [동주]처럼 이육사 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 <절정>

 

이상, 광복절에 본 봉오동 전투(유해진 류준열)와 절정(김동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