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부활자 모르고 지은 죄, 귀찮아서 지은 죗값까지 치른 김래원
김래원 김해숙 주연, 곽경택 감독의 [희생부활자]는 박하익 작가의 웹툰 [종료되었습니다]를 을 원작으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전 세계 89번째이자 국내 첫 희생부활자(RV) 사례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희생부활자, 이른바 Resurrected Victims(RV)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경우 복수를 하기 위해 살아 돌아오는 사람을 뜻하는데, 작가는 우리 사회가 죄지은 사람에게 온당한 처벌을 주고 있는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동시에 가해자에게 그에 걸맞는 벌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실제로 때로는 큰 죄를 지었음에도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자신이 지은 죄에 비해 지나치게 큰 벌을 받고 억울해하는 일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조차 모르고 사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그 피해를 입은 사람만 억울할 뿐, 정작 가해자는 그에 대한 죗값도 치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 경우 피해자는 죽어서라도 그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이 생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모를까, 제대로 된 벌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저 세상에서 희생부활자가 되어 돌아오고 싶을 것이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소망이 모티프가 되어 전개된다. 그런데 처음에는 실화라고 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가 있을까 하고 무척이나 궁금하면서도 의아했었는데, 사실은 영화를 위한 허구의 현상이라는 말에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영화를 보는 동안 정말로 희생부활자라는 존재가 있어서 자신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와 함께 죄를 짓고도 버젓하게 살아가는 진짜 범인에게 그에 걸맞는 응징을 내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마도 희생부활자가 돌아와 복수를 행할까봐 무서워서라도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희생부활자가 되어 돌아온 엄마 김해숙이다. 그런데 이 희생부활자는 진범에게 처벌이 내려지지 않을 경우에만 나타나며, 그 동안 희생부활자의 복수가 잘못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하는데, 뜻밖에도 엄마는 살아 생전에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 김래원을 향해 복수의 칼을 겨누어 아들은 물론 주변사람들을 경악케 한다. 그 동안의 전례대로라면 아들 김래원이 엄마를 죽인 살인자로 지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희생부활자 모르고 지은 죄, 귀찮아서 지은 죗값까지 치른 김래원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면, 7년 전 김해숙은 사법고시에 패스한 아들 김래원에게 건네줄 먹거리며 돈이 든 가방을 들고 횡단보도 앞에 서 있다가 오토바이 강도 사건으로 살해를 당한다. 그 장면을 역시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던 김래원이 목격하는데, 그 후 그는 눈앞에 멀쩡히 엄마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이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엄마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남몰래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김래원은 누나로부터 “죽었던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충격을 받는다. 게다가 더 놀랍게도 돌아온 엄마는 예전의 그 따뜻하고 상냥하고 헌신적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심지어는 아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죽이려고 덤벼든다. 한편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은 김래원을 엄마를 살해한 진범으로 의심하고, 궁지에 몰린 김래원은 그 누명을 벗고자 엄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곽경택 감독은 “서양의 좀비와 동양의 귀신 사이, 어떻게 RV를 표현하는가가 중요했다”고 말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나 귀신과 달리 평범한 얼굴을 한 희생부활자 김해숙은 오직 복수를 향한 집념에 불타는 맹목적이고 살기등등한 연기를 선보인다. 어떤 역을 맡든 철저하게 그 역할을 해내는 명품배우 김해숙이 우리에게는 낯설디낯선 희생부활자로 또 한 번의 훌륭한 변신을 이룬 것이다.
한편 엄마의 간절하고도 끝없는 희생으로 검사가 된 김래원이다. 그런데 그는 친구들과의 축하파티 후 잔뜩 술에 취한 와중에서 엄마의 트럭을 몰고 오다가 어떤 여자아이를 죽이게 되고, 이 여자아이의 아버지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대형사고를 일으킨다. 하지만 그는 그 일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즉 모르고 지은 죄를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른 채 엄마가 희생부활자가 되어 되살아오기까지 법정에서 언제나 단호하고도 가차없는 구형을 내린다. 누구든 자신이 지은 죗값은 스스로 톡톡히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처럼 지은 죄에 대한 죗값을 치르게 하는 데 단호한 김래원이 사실은 엄마를 죽인 살해범일지도 모른다니..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화는 행여나 하는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몰입하게 만든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도 제 눈의 대들보는 못 본다는 말도 있듯이, 자신이 지은 죄는 외면한 채 다른 사람에 대한 죄의 대가는 칼같이 치르게 하는 김래원의 이중성이 언제 밝혀질까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는 재미도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는 맥이 빠지는 엔딩일지도 모르겠지만, 왜 엄마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했으면서도 좀더 신속하게 엄마에게 달려가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김래원은 "귀찮아서 그랬다"고 대답한다. 평생을 아들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해 온 엄마에게 아들은 불과 몇 초의 시간마저 내주기 아까워한 죄를 지은 것이다. 그래서 그의 죄명은 "엄마를 죽인 죄"가 아니라 엄마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부리나케 달려가서 구해내지 못한, 즉 "엄마를 죽게 만든 죄"다.
결국 그는 자신이 모르고 지은 죄와 더불어 귀찮아서 지은 죄까지 뼈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오로지 아들에게만 헌신해 온 자신이 살해를 당하는데도 순간적으로나마 방치한 아들의 태도가 억울해서 엄마는 다시 살아 돌아와 그 죗값을 치르게 한 셈이다. 이 부분은 자신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 특히 부모를 외면하는 것도 처벌받아야 마땅한 죄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준다.
사람을 목적이 아닌 도구나 수단으로 여기는 현상이 점점 짙어져 가는 요즘,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를 던져주는 나름 나쁘지 않은 영화였는데, 흥행에서 실패한 것이 아쉽다.
이상, 희생부활자 모르고 지은 죄, 귀찮아서 지은 죗값까지 치른 김래원입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