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위대한 리더 5인
어느 시대에나 지도자들은 다양한 일을 했으며 갖가지 기술과 능력, 특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리더십은 국가라는 큰 조직에서부터 기업, 혹은 작은 팀에 이르기까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위기에 처했을 때의 리더의 위기관리 능력은 조직의 존폐는 물론 구성원들의 생사를 가르기도 합니다.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인 조너선 기퍼드는 [역사를 이긴 승부사들]에서 1천년간 가장 탁월했던 리더들의 위기관리법을 들려주고 있는데, 이 중 누구보다도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위대한 리더 5인], 즉 에이브러햄 링컨과 리콴유, 넬슨 제독, 조지 패튼, 장제스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위기에 더 강해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 탄력적인 리더십의 상징 - 에이브러햄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은 위대한 지도자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가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예리하고 탐구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많은 양의 정보를 흡수할 수 있었으며, 법률을 공부하고 변호사로 활동한 덕분에 논쟁의 모든 측면을 검토하고 중요한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설명할 수 있었다.
또한 링컨은 뛰어난 연설가이기도 했다. 장황하고 상세하게 말할 때도 있었지만, 때로는 간결하면서도 숨이 막힐 만큼 감동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단, 언제나 타협할 자세가 되어 있는 링컨이었지만 근본적인 확신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았으며, 해결책에 대해서는 타협했지만 원칙은 타협하지 않았다.
대단히 강인한 정신과 육체의 소유자였던 링컨은 사람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났으며, 좋은 팀을 구성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쳐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도왔다. 뿐만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는 상당한 재량권을 주기도 했다. 대통령으로서 링컨은 미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 명확하고 상세한 비전을 지니고 있었으며, 가장 힘든 정치상황이라 할 수 있는 내전의 와중에서도 그 비전을 한결같이 추진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2 영광의 'CEO 싱가포르' - 리콴유
리콴유는 싱가포르라는 도시국가를 탄생시켰다. 그는 과거 대영제국의 동남아시아 식민지 건설을 위한 해군기지라는 전략적 중요성밖에 지니지 못했던 작은 섬나라를 홍콩, 타이완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신흥 경제국인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바꿔놓았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싱가포르의 이러한 도약은 리콴유라는 한 인물이 지닌 비전 덕분에 가능했다.
리콴유와 싱가포르의 관계는 아마도 CEO와 기업의 관계로 보는 시각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리콴유의 이력을 정치가가 아니라 기업가의 이력으로 본다면, 리콴유는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각 단계를 현명하면서도 단호하게 헤쳐나갔다고 말할 수 있다. 법학을 공부한 그는 예리한 두뇌로 갖가지 문제들과 주요 인물들의 관심사를 명확하게 파악해서 능숙하게 다루었다. 권력을 쥐기 위해 다양한 당파를 활용했으며, 일단 권력을 잡을 뒤에는 이들을 가차없이 (그리고 성공적으로) 내던져버렸다. 자기 기업에 대한 리콴유의 비전은 언제나 한결같았으며, 그는 자신의 비전의 실현을 방해하는 모든 방해물을 영리하게 극복해 나간 것이다.
분석가나 잠재 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업의 대표자로서 리콴유가 기울인 노력은 유례없는 성장과 경제적 성공으로 이어져 직원들과 주주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리콴유에 대한 의구심은 그가 기업의 CEO가 아니라 현대 싱가포르를 세운 정치가였다는 점, 그리고 기업에서는 단호한 행동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정계에서는 억압적인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편에서는 목적을 위해 지나칠 만큼 강력한 수단을 사용했다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호레이쇼 넬슨, 즉 넬슨 경은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지만 호감이 가는 인상에 열정적이고 지적인 인물이었다. 뱃멀미를 한다거나 자만심이 강한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던 그는 나폴리에 파견된 영국 특사의 아내와 공공연하게 무분별한 연애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 당시 넬슨이 작은 배의 선두에 서서 스페인군과 백병전을 벌이고 있을 때, 존 사이크스라는 키잡이가 넬슨의 머리로 날아오는 칼을 맨팔로 받아내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라고 말했을 만큼 넬슨이 병사들의 사기에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유능하고 노련한 넬슨은 팀에게 진정한 자율권을 준 대표적 지도자로 꼽힌다. 바다 위의 전함만큼 독립적인 것은 없다. 어떤 전함이든 몇 년씩 계속될 수 있는 파견기간 동안 스스로 물자를 보충하고 심지어 수리도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이유뿐만 아니라, 전장의 자욱한 연기와 혼란 속에서 깃발로 신호를 보내기가 어렵고 때로는 불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넬슨은 휘하 함장들과 함께 전략과 전술을 논의하며 가용한 공격계획의 윤곽을 잡았고, 또 적의 강점과 약점을 토론하면서 동료 함장들이 자신과 동일한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예상치 않게 갑자기 전투가 벌어져도 함장들이 넬슨 자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기를 원했다.
모든 위대한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넬슨에게는 장점이 많았다. 특히 군생활에서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뛰어난 용기와 솔선수범하는 습관이었다. 해안의 적을 공격하다가 한쪽 눈과 눈 하나를 잃기도 한 넬슨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무엇이든 부하들에게도 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언제든 부하들이 자신을 따르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4 땀이 피를 대신한다 - 조지 패튼
조지 패튼은 나치스 독일을 물리치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 진행되던 1944년 북유럽으로 진군한 연합군의 제일선에 섰던 미 제3군 사령관이었다. 제3군을 지휘하여 베를린을 향해 진군한 패튼은 "베를린에 조착해 히틀러를 발견하면 뱀을 쏴버리듯 그 빌어먹을 사기꾼 개자식을 직접 쏘아버리겠다" 말했다.
하지만 다혈질적인 열변과 고의적으로 입에 달고 살았던 욕설이 패튼의 전부는 아니었으며, 그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 그는 적과 싸울 준비를 할 때 무엇보다도 훈련과 규율을 신봉했다. "병사들이 작은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장에서 상관의 지휘를 따를 수 없다. 나는 규율을 엄중하게 적용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다"라며 병사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엄격한 규율을 고집했다. 대충대충 넘어가거나 군기가 빠져 있거나 참호에서 적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가는 죽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튼은 상관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균형잡힌 지도자는 아니었다. 때로는 공격성과 투지, 병사들과 장교들에게 자신과 똑같은 전의를 불어넣었으며, 그 전의가 지나쳐 부하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영국의 참모총장이었던 앨런 브룩은 추진력과 돌진이 필요한 작전에는 적합하지만, 기술과 판다력이 요구되는 작전에서는 불안정한 지휘관"이었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가혹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의 최고사령부가 가장 두려워한 연합군 사령관이 바로 조지 패튼이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1온스의 땀이 1갤런의 피를 대신한다"는 오래된 법칙을 믿은 패튼은 적들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부하들을 가혹하게 몰아붙인다는 불평도 기꺼이 감수한 사령관이었다.
장제스, 즉 장개석은 흔히 '중국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불린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만일 장제스가 없었다면 잃어버릴 중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설될 때부터 억압받는 것처럼 보이던 중화민국은 민주적인 대의제 정부의 등장을 예고했고,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당이 창설되었다. 장제스는 국민당의 지도자이자 국민당 군대의 최고사령관으로 북부와 중부에서 세력을 떨치던 주요 군벌 대부분을 물리치고 중국을 재통일했다.
중국이 재통일되고 중국에 국민정부가 들어서자 장제스는 평소 존경하던 쑨원의 미망인 여동생과 결혼해서 국민당 창당의 원칙을 계승하는 데 적합한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이후 10년 동안 장제스와 국민당은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중국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법체계와 금융제도가 현대화되었고, 도로와 철도 건설로 나라 안에서의 왕래가 활발했으며, 항공운송도 개시되었다. 의료시설이 개선되고 공업과 농업생산도 늘어났다.
지도자로서 장제스는 이처럼 세계를 변화시킬 수많은 기회를 만들어냈다. 군벌들이 통일성 없게 모여 있는 것에 불과하던 중국을 국가로 재탄생시켜 세계무대에 재등장시켰을 뿐 아니라 일본의 침략에 장기간 저항하며 국제적인 지원을 얻어내 새로운 국가를 존속시켰다. 공산당에게 패해 타이완으로 물러간 뒤에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로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을 일구어 동북아시아의 경제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들어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던 타이완은 선진경제국 중 하나가 되었다. 장제스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이상,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준 위대한 리더 5인이었습니다. 도움이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