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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구르미 그린 달빛 효명세자의 세자빈 신정왕후(채수빈)

 

구르미 그린 달빛 효명세자의 세자빈 신정왕후(채수빈)

 

 

효명세자 박보검과 남장내시 김유정(홍라온)의 궁중로맨스를 다룬 드라마 팩션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달달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 사이를 훼방놓기라도 하듯 나타나곤 하는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얼마 후 효명세자의 세자빈이 되고 그 후 신정왕후로 불리게 되는 풍양조씨 가문의 조하연(채수빈)입니다. 

 

후세에는 신정왕후라는 이름보다는 '조대비'라는 이름으로 더 오래도록 명성을 떨치게 되는 신정왕후는 효명세자가 왕위에도 오르지 못한 채 22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아들 헌종이 왕이 되지만, 순조의 정비이자 안동김씨의 세력의  중심에 있던 순원왕후가 헌종 뒤에서 수렴정청을 하는 바람에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숨죽인 채 인고의 시간을 보냅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 효명세자의 세자빈 신정왕후(채수빈)

 

그 후 순원왕후가 사망하자 왕을 지명하는 힘을 가진 대비가 된 신정왕후는 조정을 좌지우지하는 절대적 힘을 휘두릅니다. 철종이 33세에 요절하자 신정왕후는 26대 왕으로 고종을 지명하는데, 이때 고종의 나이가 겨우 12세였습니다. 우리나라가 고종 때 일본의 힘에 짓눌려 대한제국이라는 칭호를 받아들였는데, 역사에는 만일이라는 가정이 없다고는 하지만 어린 고종이 아닌 다른 왕이 그 자리에 앉았더라면 그 후의 우리 역사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선왕조실록과 KBS [역사저널 그날]을 바탕으로 효명세자의 세자빈 신정왕후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았습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효명 세자부부의 엇갈린 운명


어려서부터 총명했던 효명세자는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순조를 대신해서 대리청정에 나선다. 그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인 조하연을 순조 19년(1819년) 세자빈으로 맞는데, 세자의 장인이 된 조만영은 그 후 승진을 거듭해 이조참의, 성균관 대사성, 금위대장 등을 역임한다.

 

대리청정을 시작한 효명세자는 장인과 세자빈의 집안인 풍양조씨 가문과 함께 안동김씨를 견제하는데, 그 동안 안동김씨에 밀려 국정에서 소외되었던 인재를 등용하고 궁중무용을 정비하여 왕실잔치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는 등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1830년,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3년 3개월 만에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갑자기 숨을 거두는데, 그로 인해 신정왕후의 삶 또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기록에 따르면, “세자빈 조씨는 품성이 온순했고, 덕성은 천성으로 타고났다. 규방의 예의를 극진히 갖추었기에 좋은 소문이 자연스럽게 밖에 드러나고, 스승의 가르침이 번거롭지 않아도 몸가짐은 예법에 맞았다. 오래도록 덕을 쌓아 상서를 길렀으니 특이한 품질을 받아 태어났고, 아름다움이 드러났으니 원량의 배필로 마땅하다”고 한다. 하지만 신정왕후로 추정되는 위 초상화를 보면 그 삶이 참으로 고단하기 짝이 없었던 듯 표정이 잔뜩 굳어 있다.

 

1830년 효명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신정왕후는 음식도 들지 않고 슬피 울어 곁에서 감히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고 4세인 세손과 단둘이 남은 신세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거기다 그로부터 4년 후에는 시아버지 순조마저 승하하여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것은 역대 최연소 8세의 세손 헌종이었다. 그런데 어린 헌종을 위해 시행된 수렴청정에서 발 뒤에 앉은 사람은 어머니 신정왕후가 아니라 할머니 안동김씨 순원왕후였다.

 

이 모든 상황을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풍양조씨 신정왕후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되고 소외돼 있었다. 순원왕후의 비호로 더욱 세력을 키운 안동김씨는 헌종의 왕비도 안동김씨 집안에서 간택하고, 안동김씨에게 위협이 될 만한 효명세자의 측근들도 모조리 제거한다.

 

 

신정왕후,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다

 

그 후 헌종이 후사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대를 이을 왕손으로 강화도령 이원범이 낙점되어 철종으로 왕위에 오른다.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의 손자였던 이원범은 당시 역모의 가문으로 몰리면서 평민의 삶을 살고 있었다. 철종 8년 순원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비로소 신정왕후는 왕실의 최고어른이 된다. 그리고 6년 뒤인 1863년 철종도 후사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나자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최고어른으로서 반전의 키를 쥐게 된다. 40여 년의 기다림 끝에 후계자 지명권을 갖게 된 것이다.

 

그 신정왕후가 조선의 미래를 결정지을 후계자로 선택했던 것이 바로 고종이다. 사실 고종은 철종에 이어 즉위하긴 했지만 신정왕후의 양자로 들어와 익종을 계승했으므로 혈연적으로 선왕인 철종과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신정왕후가 철종의 후사로 고종을 선택한 것은 안동김씨에 의해 무수한 종친들이 희생당해 당시에는 남연군의 후손들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흥인군, 흥선군 등 익종과 항렬이 같은 사람들 중에 누군가를 보위에 올리면 자신이  수렴청정을 할 수 없게 되므로 신정왕후는 남연군의 손자들 중에서 왕위 계승자를 골랐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둘째아들로 12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고종을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올린 신정왕후는 수렴청정을 시행한다. 그리고 4년간의 수렴청정 동안에 고종을 통해 오랜 세월 국정을 농단해 온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핵심기구인 비변사를 혁파한다. 그리고 부정부패로 유명무실해진 과거제를 정비하고, 서얼이라도 능력이 있으면 관직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등 남편 효명세자가 이루지 못한 꿈을 하나씩 실현해 나간다. 또 조선 왕실의 정궁인 경복궁을 중건하게 한다.

 

 

신정왕후의 정식명칭은 효유헌성선경정인자혜홍덕순화문광원성숙렬명수협천융목수령희강현정휘안흠륜홍경태운창복희상의모예헌돈장계지경훈철범신정왕후(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文光元成肅烈明粹協天隆穆壽寧禧康顯定徽安欽倫洪慶泰運昌福熙祥懿謨睿憲敦章啓祉景勳哲範神貞王后)로 조선 왕비들 가운데 가장 시호가 긴 왕비이기도 하다. 1899년 대한제국 성립 이후 남편인 익종이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자 함께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추증되었다. 능은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수릉(綏陵)으로 효명세자와 함께 합장되어 있다.

 

이상, 구르미 그린 달빛 효명세자와 세자빈 신정왕후(채수빈)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