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힘들 땐 쉬어가라

 

 

休라는 한자는 사람이 나무에 기대 쉬는 모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나무에 기댄 모습은 대자연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혹은 대자연에 녹아들어 있는 모습입니다.
긴장하는 것은 분명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동시에 적당히 완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긴장한 후에는 잠시 마음을 비우며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살아가는 힘, 창조적인 힘, 여유로운 마음의 눈을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라갈 때 못 본 것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위 시는  고은님의 <그 꽃>이라는 시다. 

아주 짧은 시이지만, 그 함축미 강한 싯귀를 읊조리고 있노라면,

활짝 큰 날개를 펴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 수가 있어서 좋다.

그래서 공연히 실속도 없이 마음이 바쁘거나, 너무 버거운 일들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면, 이 네 줄의 시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힘을 내면에서 불러올 수 있다.

 

올라가면서 못 본 것은 그만큼 마음이 어지러워져 있었기 때문일 테고,

내려오면서 올라갈 때 못 본 꽃이 눈에 띈 것은 그만큼 헝클어져 있던 마음이

잠시 쉼을 통해 안정을 되찾은 덕분일 것이다.

즉 단지 눈이 좋거나 나쁜 시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쳐 있거나 힘겨운 일로 경황이 없으면

눈앞에 있는 사물조차 제대로 보아낼 수 없는 우리 마음의 눈에 달린 문제인 것이다. 

 

올라갈 때도 언제나 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를 바란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 해도 ,
올라가면서는 못 보았을지언정 내려올 때만이라도 꽃을 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로움은 잃지 말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만일 올라갈 때도 못 보고, 또 내려올 때마저 못 본다면 스스로에게 대체 뭘 보며

살고 있느냐고 자문해 보는 시간도 꼭 가져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우리의 눈은 마음이 일러주지 않으면 못 보고 넘어가는 것이 너무 많다.

아무리 시력이 좋다고 해봐야 1.2에서 1.5 정도이고, 게다가 이 정도 시력을 가진 사람도 실은 별로 없다.
TV며 스마트폰이며 갖가지 스트레스 등으로 눈의 수정체가 항상 긴장한 상태여서 다들 시력이 형편없이 저하돼 있고, 

각종 즐길거리 등으로 바쁜 날들을 보내느라 마음의 눈마저 그리 명료하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한집에 사는 가족들의 얼굴조차 대충 건성으로 보는 바람에

관심과 배려의 눈으로 보면 금세 알아차릴 수 있는 가족들의 아픔조차 제대로 보아내지 못한다.
그러니 타인들의 아픔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더더욱 바라기 힘든 일이다.

 

실제 눈이든 마음의 눈이든 제 시력을 찾으려면, 그저 멍하니 자신을 내려놓는

휴식을 취하거나 걷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아름다운 산과 숲향기를 맡으며

정상에 올라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등산이 좋다고 한다.

저마다 좋은 방법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을 내려올 때는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은 다츠노 카즈오의 <머리를 비우는 시간> 중에서 발췌한 글이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 <15세(학교 4)>에서 중학생 다이스케는

학교에 나가지 않는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가출을 한다.

소년은 여행 중에 만나 트럭을 채워준 중년여성의 집에 머무르며 그 여성의 아들과 친해진다.
헤어질 때 그 아들은 소년에세 자신이 그린 그림을 준다.

그 그림 뒤쪽엔 ‘떠돌이’라는 시가 씌어 있다.

 

다이스케에게

 

초원 한가운데 한 줄기 길을
정처없이 떠돌이가 걷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말을 타고 가도
떠돌이는 걸어서 초원을 가로질러 간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구름보다 느려도 괜찮다.
별이 떠돌이에게 준 것을 지나쳐버리고 싶지 않다.

풀잎에 맺혀 있는 새벽 이슬,
흘러가는 구름,
작은 새의 나직한 속삭임을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떠돌이는 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소년은 그 후에도 발랑과 모험을 계속했고, 학교에서는 얻을 수 없는 많은 것을 체험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학교로 돌아간 날 아침, 소년은 말한다.
“나는 혼자 초원을 천천히 걸어간다. 괜찮다. 학교라는 모험이 시작된다.”

 

그렇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천천히, 혼자 걸어가라. 
그런 야마다 감독의 격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우리 살아가는 길 위에서
즐겁고 기쁜 일을 만나게되면
가슴 뿌듯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길을 가다가
눈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에게서
늘 새로움의 생동감을 얻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날마다 즐거움을 만날 수 없고
눈에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다 생동감 넘치는 행복일 수는 없다.
순탄한 길이 어디 있던가.

가다 보면 때론 힘든 고갯마루에 앉아
눈물을 흘릴 때도 있는 법이다.
까닭 모를 서러움에 목이 메는 것은
육신이 지쳐 있어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 땐 쉬어가라.
쉼터에 앉아 눈물을 흠쳐내고 나면
웅크려 닫힌 마음은 크게 열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움의 길이 보인다.

 

인생은 쉼이다.
가끔은 지금 그 자리에 앉아 쉬며
온 길을 돌아볼 일이다.
발 아래 까마득한 저 길
많이도 오지 않았는가.

 

내가 온 길 위에 진리가 있었음을 알겠는가.
그러기에 즐거움만 찾지 말고
불행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아픈 눈물을 닦은 후에야
문득 새로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떠라.
행복은 닫힌 마음안에
고스란히 숨어 있을 뿐이다.
눈물을 거두고 마음을 열어라.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시간은 짧다
남은 길 어찌 가면 좋을지 보이지 않는가.

 

<좋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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