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삐딱선을 타고 본 메릴 스트립의 초호화판 음치공연
[너목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Mnet에서 하고 있는 예능프로인데, <너목보>는 줄임말이고 본디 명칭은 [너의 목소리가 보여]다. 목소리를 듣지 않은 상태에서 혹은 립싱크를 하는 상태에서 그 날의 게스트로 나온 가수와 패널들이 출연자가 음치인지 실력자인지를 가리는 것이다. 무대 위 출연자만 보고 음치와 실력자를 가려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음치 같았는데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실력자였거나 반대로 실력자 같아보였는데 듣기 민망할 정도의 음치여서 반전의 유쾌함까지 주기 때문에 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묘미이자 의의는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기회를 갖게 된다는 데 있다. 음치라는 이유로 어디서고 입 한 번 뻥끗 못해 봤을 출연자들에게는 더없이 큰 선물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불러야 하는 순간이 되면 음치 출연자들은 게스트며 패널, 방청객들이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거나 말거나 기를 쓰고 끝까지 노래를 부르는데, 그 억척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나다.
플로렌스 삐딱선을 타고 본 메릴 스트립의 초호화판 음치공연
서두가 너무 길어졌는데,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플로렌스](스티븐 프리어스 감독)도 음치극복 혹은 음치탈출을 그린 유쾌한 스토리인 줄 알았다. 카피도 "1%의 재능과 99%의 자신감으로 카네기홀에 선 플로렌스"여서 지독한 음치였던 플로렌스, 즉 메릴 스트립이 피나는 노력 끝에 1%의 재능을 100% 발휘한 모양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꿈에도 그리던 카네기홀에서 드디어 마음껏 노래 실력을 뽐내는 순간을 가짐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줄 거라고 기대했다. 게다가 메릴 스트립의 멋진 연기와 인간미 넘치는 훈훈한 외모의 휴 그랜트까지 볼 수 있으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니, 아니, 보고 있는 동안에도 내내 입맛이 좀 썼다. 명품배우 메릴 스트립과 휴 그랜트에게 실망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고, 특히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휴 그랜트의 사랑도 그 진정성을 의심할 이유가 없을 만큼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좋았다. 더욱이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니, 플로렌스를 향한 그의 갸륵한 노력에 정말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느낄 까닭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웠던 것은 마지막까지 감정선을 미약하게나마 건드려주는 장면이 없었다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언제든 감동적인 씬이 나오기만 하면 기어이 감동을 받으리라고 만반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ㅎㅎ)
아마 영화를 보는 내내 씁쓸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플로렌스와 그 주변사람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여느사람들의 삶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보였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막바지에 치닫고 있을 때인데다 무려 70년 전 상황인데도 그 도를 넘는 호화로움이 눈에 거슬렸다. 당시 생사를 건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과 생계를 유지하느라 급급한 여느 서민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초호화판 공연을 철따서니없는 노부인이 강행하고자 하는 모습이 돈 많은 자들의 갑질로 여겨진 것이다
영화는 그냥 영화로 보면 되지 뭘 그렇게 삐딱선을 타고 보느냐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 무렵이 너나할 것 없이 힘겨웠던 시기였음을 알기에 자꾸 삐딱한 시선으로 보게 됐던 것 같다. 음치일망정 돈 많은 것 하나 믿고 큰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보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며 밀어붙이는 플로렌스도 그렇고, 그 플로렌스의 어린애 같은 투정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남편 휴 그랜트가 열일 제치고 나서는 모습 또한 배부른 자들의 일탈로 보였던 것이다.
프랑스에 기근이 들어 굶주린 파리 시민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자 마리 앙트와네트 여왕이 "빵이 없으면 케익(브리오슈)을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던 말도 떠오르고, 실제로 초딩 때 같은 반 친구가 결식아동 실태조사를 할 때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는데, 라면이 더 맛있는데..."라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남들이야 굶든 말든 부호들이 멋진 저택과 맛있는 음식, 호화찬란한 파티가 일상인 귀족 같은 삶은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또 동양이나 서양이 다를 게 없구나 싶었다.
실화라고 하니 이런저런 사족을 붙일 일은 아니지만, 만일 각색을 한다면 플로렌스가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기어이 음치에서 탈출해 무대에서 멋진 노래실력을 뽐냈다거나, 아니면 그녀가 무대 위에 한번 서보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고 가상해서 관객들이 음치가 부르는 노래라도 좋으니 기꺼이 듣겠다고 공연장을 찾게 된 거였다면 공연히 쓰잘데기 없는 삐딱선을 타지 않고도 유쾌하게 영화를 봤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뭣모르고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플로렌스의 소원풀이를 위해 그 악악거리는 노래를 제 돈 내고 들을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홈피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영화의 실제인물인 ‘플로렌스 포스터 젱킨스’는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음악가의 삶을 꿈꿨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포기한 채 살아가다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에야 자신이 원했던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바탕으로 베르디클럽이라는 사교모임을 만들어 음악가들을 후원하고 직접 오페라 공연도 하면서 소프라노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실 기본적인 음정이며 박자도 못 맞추는 최악의 음치였는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음치라는 사실을 몰랐다. 매니저이자 남편인 베이필드(휴 그랜트)가 매 공연마다 플로렌스에게 호의적인 관객들만을 엄선해서 초대하고 악평이 실린 신문은 모조리 폐기하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플로렌스는 1944년 일생일대의 꿈인 카네기홀 공연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실제로 음치 소프라노의 공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전석 매진이라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런데 카네기홀 공연 이후 그녀의 노래에 혹평이 쏟아졌고, 안타깝게도 플로렌스는 공연 한 달 후 죽음을 맞는다. 생을 마감하기 전 그녀는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한다고 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안 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죄송스럽게도 이 마지막 남긴 말조차 그리 달갑게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고 시도한 것 자체는 의미있는 일 아니었느냐는 뜻 같은데, 그러기에는 그녀가 행한 무모한 도전의 들러리가 되기 위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을 비롯해 주변사람들에게 너무 민폐를 끼친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플로렌스는 상속받은 재산으로 각자에게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면 된다고 생각했겠지만, 만일 그녀에게 그만한 돈이 없었더라면 세계적인 무대로 일컬어지는 카네기홀에서의 음치공연이 과연 실현 가능했을까? 게다가 플로렌스가 유언장이 든 가방을 늘 옆에 끼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자신의 필요에 따라 혹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나중에 남길 유산을 적는 장면도 돈 많은 노부인의 또 다른 형태의 갑질로 보였다면, 삐딱선을 타도 너무 삐딱선을 타고 이 영화를 본 것일까?
이상, 플로렌스 삐딱선을 타고 본 메릴 스트립의 초호화판 음치공연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