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펫의 이중생활 주인공 맥스보다 더 매력적인 스노우볼
어릴때 읽은 동화책 중에는 밤이 되어 그 집 가족들이 모두 잠이 들면 낮 동안에는 꼼짝도 않고 있던 벽시계며 소파, 책상, 의자 같은 가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 밤새 집안을 거닐고 서로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장면이 펼쳐지는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어 해가 뜨면 식구들에게 들킬세라 부랴부랴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 시침 뚝 떼고는 다시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이야기가 정말인 것도 같아서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시계가 제자리에 걸려 있는지, 행여나 책상과 의자가 움직였던 흔적은 없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했던 동심의 시절도 있었다.
애니메이션 [마이펫의 이중생활]이라는 제목을 보고 맨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어린시절 그 기억이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는 가구들이 아니라 반려동물들이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펼쳐지려나 보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이펫의 이중생활 주인공 맥스보다 더 매력적인 스노우볼
주인 케이티가 집을 비운 사이에 주인공 맥스를 비롯한 여러 펫들이 벌이는 스토리를 담은 것은 맞았다. 그러나 실제 내용은 조금 더 스케일이 커서 사람들 품에서 따뜻하고 풍요롭게 자라는 반려동물 대 주인 없이 떠도는 유기동물들의 대립, 그리고 자신들을 버려 떠돌이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유기동물들의 저항을 보여주는 것이 큰 주제였다.
주인을 잘 만난 반려동물들은 부모를 잘 만난 아이들처럼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자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낸다. 반면에 주인이 데리고 있다가 저마다의 이유로 내버려진 펫들은 배고픔을 견디며 거리를 떠돌다가 유기펫들을 잡으러 다니는 단속차량이라도 나타나면 잡혀가지 않으려고 죽어라 몸을 숨기는 힘겨운 삶을 살아간다. 유기펫 보호소에 끌려갔다가 새 주인이 안 나타나면 그 후는 곧 죽음만을 기다리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좋은 주인을 만나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맥스의 집에 어느 날 유기펫 보호소로 끌려갈 뻔한 덩치 큰 온 듀크가 들어온다. 그런데 "날아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속담도 있듯이 듀크는 맥스의 밥이며 간식, 집이며 침대 등을 하나하나 모두 빼앗더니 나중엔 주인의 사랑까지 빼앗아가는 바람에 맥스는 케이티를 만나기 이전과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그리고 듀크와 갖가지 일로 티격태격하던 맥스는 어느 날 듀크와 함께 뜻하지 않은 외출을 했다가 뉴욕 한복판을 헤매게 된다. 반려동물들을 다룬 애니메이션인데다 방학중이어서 그런지 영화 관람객 중에는 어른들과 함께 온 아이들 많았고, 그 아이들이 내는 즐거운 웃음 소리 덕분에 영화는 한층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니 주인공 맥스나 듀크, 그리고 다른 펫들보다 단연 돋보이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가 있었다. 바로 "이 구역의 미친 토끼는 나야!"라고 외치며 광기에 찬 모습을 보여주는 <스노우볼>이었다. 흔히 토끼 하면 순하고 귀여운 동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겁이 많아서 뭔가 나타났다 싶으면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모습도 그렇고, 두손으로 당근이나 야채를 들고 뾰족한 입으로 오물오물거리는 모습도 앙증맞다. 또 길다란 두 귀를 연신 쫑긋거리는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하지만 [마이펫의 이중생활]에 등장하는 스노우볼은 평소 생각했던 그런 캐릭터가 아니다. 얼핏 보면 여느 토끼와 다를 바 없지만, 사실은 자신들을 버린 주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모인 동물들의 모임인 ‘성난 펫들’의 보스답게 가히 악마적인 카리스마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만든 크리스 리노드 감독도 “‘스노우볼’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부활절 카드에 있을 법한 귀여운 토끼에 ‘케빈 하트’의 목소리를 입히려 했고, 그러다보니 ‘스노우볼’이 좀 더 크고 험악한 캐릭터가 됐다”고 반전 캐릭터가 탄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설명했다고 한다.
스노우볼을 보니 중학교 때 길렀던 토끼가 생각났다. 친구가 기르던 토끼였는데, 친구 엄마가 어찌나 싫어하는지 제발 내다 버리라고 해서 큰 고민을 하고 있기에 대뜸 내가 길러보겠다고 하고 받아온 것이었다. 안 그래도 미니토끼를 한 번 길러보고 싶어하던 참이어서 엄마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다행히 토끼를 보고도 엄마가 별말씀을 안 해서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미니토끼인 줄로만 알았던 그 녀석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자라기 시작했고, 얼마 안 되어 토끼집이 비좁을 정도로 몸집이 커져갔다. 작은 토끼집 안에서 움직이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 꺼내놓으니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아주 잘 놀았는데, 문제는 토끼똥이었다. 아무데나 싸놓은 동그란 토끼똥이 이리저리 굴러서 장롱 밑으로, 식탁 밑으로, 책상 밑으로 들어갔고, 그 때문에 기겁을 한 엄마는 그때부터 토끼를 다시 친구에게 돌려주라고 성화셨다.
게다가 녀석은 안아주면 가만히 안겨 있지 있지 않고 윗옷을 씹어대어서 티셔츠란 티셔츠에는 다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도 큰 문제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어이가 없는 것은, 녀석이 도무지 주인을 몰라본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반가워하기는커녕 때로는 와락 물기까지 해서 손가락에서 피를 흘린 적도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키워보려고 했는데, "토끼가 마음껏 뛰어놀아야지 이 좁은 토끼집 안에서 갇힌 채 사는 게 가엾지도 않느냐"는 엄마의 말에 설득당해서 친구에게 토끼를 돌려주었고, 친구는 원래 토끼를 샀던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결국 토끼 기르기를 포기한 실패담이다.
그 토끼가 스노우볼로 재탄생해서 나타나기라도 한 것일까. (ㅎㅎ) 어찌나 방방 뛰면서 고약하고 심술궂고 살벌한 모습으로 맨하탄 지하세계의 성난 펫들을 조련하고 맥스와 듀크를 몰아붙이는지, 거의 미친 토끼 수준이었다. 말이며 행동도 거칠기 짝이 없어서 토끼에 대해 그 동안 완전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었다. [마이펫의 이중생활]이 사실은 [스노우볼의 이중생활]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건가 생각되기도 했다. .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악을 바락바락 쓰며 인상을 푹푹 그어대던 고약한 스노우볼이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따뜻한 품에 안기자마자 그악스럽게까지 느껴졌던 표정이 일순간에 귀엽디 귀여운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얼어붙은 마음도 녹인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사람과 동물과의 전쟁, 그리고 동물과 동물과의 전쟁도 결국은 <사랑의 부재>에 있었던 것이다. 사랑받고 있다고 믿는 순간 본래의 귀엽고 순한 토끼의 이미지로 되돌아가는 스노우볼을 보면서 역시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강한 북풍보다는 따스한 햇살이 마음을 무장해제시키는 데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마이펫의 이중생활]에 등장하는 펫들이다. 기다려'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말할 만큼 주인바라기인 맥스와 머릿속에 온통 ‘맥스’ 생각뿐인 달콤살벌한 기젯이다. 기젯은 새침하고 도도한 작은 강아지이지만, 맥스가 사라진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숨겨온 과격한 본성을 드러내며 사랑하는 맥스 찾기에 앞장선다. 종횡무진하며 큰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는데, 긁어대는 것 같은 목소리가 예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시크한 외모와는 달리 맛있는 것이 가득한 냉장고 앞에서 이성을 잃고 무너지는 식탐 고양이 클로이와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고 싶은 긍정요정 멜은 집밖에 모르는 겁쟁이지만 맥스가 사라진 후 친구를 찾기 위한 일생일대 모험에 동참한다.
인생은, 아니 견생은 육십부터라고 부르짖는 할배견 팝스도 빼놓을 수 없다. 뉴욕 맨하탄의 터줏대감인 그는 부실한 체력이지만 맥스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인맥과 60년 연륜을 총동원한다.
하나같이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겹쳐지는 캐릭터들이다. 이렇듯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저마다 다른 성격과 개성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펫의 이중생활>에서 또 한 가지 볼거리는 바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뉴욕 맨하탄이다. 영화의 오프닝 장면 속 하늘 위에서 바라본 듯한 맨하탄의 전경은 물론 펫들의 모험 중에 비쳐지는 곳곳의 풍경들이 생생히 펼쳐져 볼 만했다.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영화 속 맨하탄이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맥스의 시선에서, 즉 사람보다 조금 더 낮은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맨하탄 거리에 자리잡은 빌딩들은 더욱 거대한 느낌이 나도록 묘사됐고, 때문에 뜻하지 않은 외출을 하게 된 펫들의 모습은 거대한 숲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고 한다.
며칠 전에 피서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해수욕장 주변에 주인 잃은 유기견들이 많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구조된 개는 시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소로 옮겨져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동물보호법상 7일이 넘으면 개 소유권이 지자체로 넘어가는데, 새 입양자가 나서지 않으면 한 달 안에 안락사를 시킨다고 한다. 유기견이 너무 많아서 계속 돌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는 길거리를 떠돌다가 로드킬당하거나 영양탕집 등에 넘겨지는 것까지 합치면 전체 유기견의 절반 이상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필요할 때는 예쁘다고 데려왔다가 병이 들거나 귀찮아지면 내버려지고 마는 것이 그들의 가엾은 운명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안쓰럽다. 반려동물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만큼 뭔가 그에 대처할 해결책도 있어야 할 것 같고 말이다.
실제로 어디선가는 광분에 찬 스노우볼 같은 카리스마 보스가 거리를 떠도는 동물들을 불러모아 집에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사는 반려동물들이나 자신들을 내다버린 사람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잖은가. 아니,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오로지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동물들을 필요에 따라 내다버리거나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은 없어야겠다. .
이상, 마이펫의 이중생활 주인공 맥스보다 더 매력적인 스노우볼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