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붕괴된 터널에 갇힌 하정우와 생수 두 병, 그리고 이타심
김성훈 감독, 하정우 배두나 주연의 재난영화 [터널]을 보고 나니 왠지 당분간은 터널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몸이 움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터널 붕괴사고는 아니지만 최근 터널 입구에서 잇따라 연쇄 추돌사고가 발생해 왠지 예사로운 마음으로 터널을 지나치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터널]의 엔딩에서 터널을 앞두고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짓던 하정우의 모습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터널 붕괴된 터널에 갇힌 하정우와 생수 두 병, 그리고 이타심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 정수 역을 맡은 하정우는 큰 계약건이 곧 성사될 거라는 기쁨에 젖어 집으로 가던 중 갑자기 무너져 내린 터널에 갇히고 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뿐,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에게 주려고 산 생일케익이 전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재난의 희생자가 된 하정우다.
하지만 재난영화를 표방한 [터널]의 하정우는 느닷없는 사태에 놀라기는 했어도 곧 평정심을 되찾고 마치 무인도에 조난당한 로빈슨 크루소처럼 혹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처럼 "혼자서도 잘 놀아요"의 진수라도 보여주듯 터널 속 삶에 잘 적응해 나간다. 보통 재난영화라고 하면, 아니, 재난영화가 아니어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의 특징이자 단점은 감정과잉이 심해 신파로 흐르기 십상이라는 것인데, [터널]은 실제로 터널이 무너져 혼자 갇히는 재난을 당했음에도 너무 담담하다 싶을 만큼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와서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하정우도 그렇고 김성훈 감독도 그렇고 실제로 캐스트 에웨이를 참조하면서 연출을 하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덕분에 재난영화임에도 큰 긴장감 없이 하정우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저 무너진 터널에서 잘 빠져나오게 될까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터널]을 굳이 재난영화의 주요소인 긴박감과 긴장감이 넘치지 않아도 기꺼이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를 통해 얻은 메시지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정우가 터널에 갇힌 채 무려 39일을 견딜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터널에 들어서기 직전 그는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르는데, 3만원어치만 넣어달라고 했는데도 가득 채워 9만 3천원을 청구받는다. 여느사람이라면 기름을 넣은 사람이 아무리 귀가 어두운 노인분이라 하더라도 흔쾌히 "됐어요. 어차피 또 넣을 건데"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개중에 못된 심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옳다쿠나! 하고 갖은 패악을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초긍정 마인드를 가진 그는 크게 개의치 않고 돈을 지불한 후 룰루랄라 주유소를 빠져나오고, 그런 하정우에게 고마움을 느낀 주유소 할아버지는 잘 걷지도 못하는 걸음으로 종종거리며 달려와 500밀리짜리 생수 두 병을 건넨다.
평소라면 보통 생수 한 병쯤은 주었을지 모르고, 아니면 왜 말을 잘못 알아듣고 기름을 더 넣었느니 뭐니 하고 핏대를 세우며 실랑이를 벌였다면 자신이 한 실수 때문에 얼이 빠져버린 할아버지가 경황이 없어 생수를 아예 챙겨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일이 하정우의 생사를 가름하는 중요한 기로가 돼버린다.
왜 [터널]에서 생수가, 그것도 생수 한 병이 아니라 두 병이 중요한 의미를 갖느냐 하면, 그것이 바로 무너진 터널에 갇혀 무려 39일을 견뎌낸 하정우에게는 생명을 이어나가는 끈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업무로 무척 바쁜 와중에도 잊지 않고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빠 하정우가 챙긴 생크림 한 상자 또한 그에겐 중요한 생명줄이 되어준다.
만일을 가정해 본다면, 그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더 넣었다고 길길이 날뛰다가 생수 두 병을 받아가지고 오지 못했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딸의 생일케익을 챙기지 않는 무심한 아빠였다면 어땠을까? 또 터널 안에서 발견한 또 다른 생존자와 퍼그와 그 귀한 물과 생일케익을 나눠먹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케익은 하정우가 주려고 했던 게 아니라 퍼그 녀석이 몰래 와서 냉큼 다 먹어버린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ㅎㅎ) 그래도 그 녀석 덕분에 또 당분간 사이좋게 "네가 내 케익을 훔쳐 먹었으니까 난 두 개, 넌 한 개..." 하고 개사료를 나눠 먹으며 연명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먹을것도 먹을것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또 한 생명체가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으면서.. (덕분에 하정우는 개사료를 7, 80개 먹었다고 한다. 개사료에는 간이 전혀 안 돼 있더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맛은 별로였던 모양이다.)
하정우가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도 어렵사리 또 다른 생존자를 위해 휴대폰을 쓰도록 빌려주고, 망설임 속에서도 생명수 같은 물을 나눠준 배려심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보답을 받은 셈이라고나 할까. 타인이 입장이 곤란해질까봐 좀 손해보는 것을 감수하고, 또 바쁜 와중에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고, 없을수록 더 열심히 서로 나눠주는 이타심은 이처럼 남을 위한 행동인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행위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고 보면 이타심이야말로 궁극의 이기심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바보예찬으로 유명한 위대한 바보학자인 일본의 무라카미 카즈오 교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이타심이 내재돼 있는데, 이러한 이타심은 조금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유전자가 결정짓는 인간의 선천적 특성이라는 것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은 비록 이익을 향한 멀고 험한 길을 가야 하지만 자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가능성을 넓힐 수 있고 그 결과 큰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을 손익관계로 따져보면 누군가를 위해 베푼 선행이 돌고 돌아서 결국은 자신의 이득으로 돌아온다는 의미이리라.
[터널]의 하정우를 보면 그 말에 수긍이 간다. 보기에 따라서는 바보스러울 만큼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성품에 기인한 하정우의 이타심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타심의 본좌 하정우가 갇힌 터널 밖은 인간에게 내재된 또 다른 단면인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특종, 단독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들, 부실공사로 물의를 일으킨 시공업체, 그리고 실질적인 구조는 뒷전인 채 윗선에 보고하기 급급한 정부 고위 관계자들, 이들은 터널 안에서 오로지 구조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는 하정우보다는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실적을 올리는 일에만 급급해 하고 있는 것이다.
생사를 다투는 하정우를 두고 터널에 갇힌 날짜나 계산하면서 최장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에만 관심을 갖는 기자, 남편이 터널에 갇혔다는 소식에 넋을 잃고 허겁지겁 달려온 아내 배두나와 염치 불구하고 어떻게든 사진이나 찍으려는 정치가들, 터널이야 무너지건 말건 공사비용을 빼먹으려고 부실공사를 마다하지 않았던 시공업체, 구조작업이 길어지자 터널 안에 누가 갇혔든, 혹은 살았든 죽었든 어서 빨리 작업을 끝내고 싶어하는 구조대원들의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터널 안에 있는건 파충류가 아니라 사람인데도" 자기만 아니면, 자기 가족만 아니면 상관 없는 이기심이 드글드글 끓어오른다. 처음엔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행여나 하정우가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릴까 귀를 쫑긋 세웠던 시민들조차 시간이 흐르자 점점 더 무관심해지면서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나 싶은 듯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김성훈 감독은 “[터널]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상황에 빠진 터널 속 한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를 둘러싼 터널 밖 사람들과 사회,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는데, 그 말대로 터널 속 세상과 터널 밖 세상의 대비를 통해 재난을 당했을 때 사람들이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점차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남편 하정우의 무사귀환만을 기다리는 아내 역을 맡은 배두나는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강인한 아내의 모습을 절제된 연기로 잘 보여주었다. 하지만 너무 침착하고 의연해서 나중엔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흠이었다.
되나캐나 "남편 어서 살려내라"고 미친 듯이 울부짖는 모습도 그렇지만, 오히려 남편이 터널에 갇힌 것이 마치 자기 죄라도 되는 양 시종일관 지나치게 조신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 감정과잉도 문제지만 지나친 절제도 흥미를 반감시킬 수 있구나 싶어졌던 것이다. 감정을 좀 오버하면 감정과잉이니 신파니 하고 지적질을 하고 또 절제된 연기를 하면 너무 지나치게 절제한 게 아니냐고 흠을 잡으니,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냐고 따져도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ㅎㅎ)
하정우를 구하기 위해 끝까지 사력을 다하는 구조본부 대장 오달수는 [터널]에서도 역시 따뜻한 인간미를 갖춘 오직 한 사람의 모습을 원없이 보여준다. 터널 속 하정우도 터널 밖 오달수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즉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의 반대쪽 끝에는 이처럼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결국은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달수 같은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이 우리를 가시밭길 같은 이 험난한 세상을 그래도 기죽지 않고 살아나가게 해주는 크고도 중요한 힘인 것이다.
이상, 터널 붕괴된 터널에 갇힌 하정우와 생수 두 병, 그리고 이타심이었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