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손예진의 기품어린 연기로 재탄생한 조선의 마지막 황녀
세월이여, 진정 따뜻한 손길을 보내주오. 내 속으로 낳은 아이마저 나를 모른다 하오. 나와 살을 섞은 남자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를 낳은 나라도 나를 모른다 하오.
나는 부유하는 먼지처럼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소. 이토록 삶이 무겁다니, 이토록 고단하다니..."
위 글은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권비영 장편소설 [덕혜옹주]에 나오는 글귀다. 1945년 패망한 일본이 항복선언을 한 이후에도 오매불망 조국 조선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렸던 덕혜옹주였건만 왕실재산을 국유화하고 왕족들을 천대하면서 왕정복고를 두려워한 이승만 전대통령은 덕혜옹주의 조선 입국을 허용하지 않았다.
영화 [덕혜옹주]에서는 조선독립 소식을 들은 덕혜옹주가 서둘러 딸 정혜와 함께 자신들을 조국으로 태워다줄 배를 타기 위해 시모노세키 항구로 간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종용으로 강제결혼을 했던 남편 소 다케유키와의 사이에서 낳은 정혜, 일본이름 마사에는 엄마 때문에 조센징으로 불리며 괴롭힘당하는 것이 싫어 덕혜옹주를 멀리하다가 나중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된 후 숨진 채 발견된다. 그리고 오랜 동안 아내 덕혜옹주의 처지를 가엾이 여겨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펴주던 남편 다케유키도 일본 패망 후에는 자신의 처지가 곤궁해지자 조현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만다. 그토록 사랑하는 딸, 함께 손잡고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던 그 딸도 잃고, 남편도 자신을 버리고, 조국도 등을 돌린 처지에 놓인 덕혜옹주가 그 삶을 어찌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덕혜옹주 손예진의 기품어린 연기로 재탄생한 조선의 마지막 황녀
이런 덕혜옹주의 비운의 삶을 영화 [덕혜옹주]에서 절제된 연기로 잘 표현해 준 <배우> 손예진에게 찬사를 보낸다. <여배우> 손예진이 아니라 염연한 <배우> 손예진이다. 인생작 [덕혜옹주]에서 그녀, 손예진은 <배우>라는 타이틀을 붙이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배우로 등극했다는 치하가 부끄럽지 않을 연기를 보여주었다. 흔히 조금은 낮춰보는 시선으로 붙이는 <여배우>라는 딱지도 이참에 확실히 떼어버려도 될 만했다.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기품마저 어린 외모여서 그것만으로도 이미 손예진의 가치는 충분하지만, 이젠 그 동안 노력하는 배우의 길을 걸어온 시간이 어느덧 연기력이라는 멋지고 감동적인 꽃을 활짝 피웠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딸 정혜를 데리고 허겁지겁 조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기 위해 시모노세키 항구로 달려간 그녀가 조국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한 것을 알고 아연실색해 있는 그 곁을 한택수(윤제문)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실성해 버린 연기는 압권이었다.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이완용 밑에서 일본을 위해 갖가지 악행을 일삼던 친일파 한택수도 조국으로 돌아가는데, 조선의 황녀였던 자신은 입국을 거부당하는 이 아이러니하면서도 가혹한 상황에 누군들 어찌 정신줄을 놓지 않을 수 있으랴.
그대로 철퍼덕 차가운 바닥에 누워버린 덕혜옹주 손예진은 비극적인 슬픔도 극에 달하면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그 바닥에서 온몸을 뒹굴며 미친 웃음을 끊임없이 공허하게 내뱉는다. 눈은 울고 있어도 입은 기괴하게조차 들리는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설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만나 결혼한 남편 소 다케유키와의 이야기가 많이 그려졌다면 영화 [덕혜옹주]는 주로 어린시절 일찌감치 덕혜옹주의 부마로 점찍었던 김장한(박해일)과의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소 모호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의 연기를 펼쳐 실재인물에 대한 평가마저도 왠지 무어라 딱잘라 규정하기가 어려웠던 박해일은 드디어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신비스러운>(?) 베일을 벗어던지고 조선의 황녀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목숨을 건 투쟁을 벌이는 강렬한 남성의 면모를 보여주어서 좋았다.
해방 전에도 덕혜옹주의 망명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던 그는 해방 후에도 조국에 잊혀져 버린 존재가 된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성치 않은 몸으로도 하나하나 수순을 밟아나가는데,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창작의 로맨스 스토리가 가슴을 아리게 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뭐랄까. 버려지고, 잊혀지고, 쓸모없어진 것들에는 더 이상 이득볼 게 없다는 생각에서 가차없이 고개를 돌려버리는 사람들이 숱한 요즘 세상에서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고귀하고 소중한 것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따스함과 훈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마 박해일도 가상의 세계인 영화에서일망정 이 아름다운 역을 맡아 하는 동안 마음에 강렬하면서도 따스한 물살이 흐르지 않았을까 싶다.
소설에는 덕혜옹주 그녀의 죄는 세 가지였다는 글이 나온다. 첫째는 지나치게 영민했던 것, 둘째는 품어서는 안 될 그리움을 품었던 것, 셋째는 조선 마지막 황제의 딸로 태어났던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다 시대를 잘 타고났더라면 그 무엇보다 큰 미덕이 되었을 요소였건만, 일개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이 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라를 잃은 것이 어찌 그녀 탓이고, 일본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꼭두각시 황실에서 태어난 것이 왜 그녀 탓이며, 일제와 친일파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열세 살 어린 나이에 강제로 일본으로 볼모로 끌려간 것을 어떻게 그녀 탓으로 떠넘길 수 있겠는가? 기꺼이 일본에 복종해 풍족한 생활을 누리던 다른 친일파들처럼 그 상황을 받아들였더라면 일본의 감시는 받을망정 호의호식하면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오직 조국으로 돌아갈 그 순간만을 기다리면서 비참하고 굴욕적인 삶을 감내한 덕혜옹주였다. 일본의 어떤 호의도 수용하지 않고 불편한 삶을 견지하면서 조선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는 것으로 그녀는 조선 황녀로서의 꼿꼿한 절개와 조국 사랑을 보여준 것이다. 더욱이 그 시간이 한두 해가 아니라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이었기에 기약도 없는 기다림 속에서 얼마나 뼈저린 외로움과 눈앞이 캄캄한 절망에 맞서 있었을지 당사자가 아닌 타인으로서는 그저 짐작만 가능할 뿐이다.
영화 [덕혜옹주]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은 몇 년 전 덕혜옹주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해방이 되고도 곧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1962년에야 조국땅을 밟은 덕혜옹주의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소설 [덕혜옹주]를 읽고 그 소설 속 인물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으며, 더불어 실제 조선 독립군들이 의친왕 등 왕족을 망명시키려 했던 시도에 대한 기사에서 영감을 얻고 기존 소설의 스토리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이번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였던 고종 역을 맡은 백윤식이다. 덕혜옹주는 바로 이 고종의 늦둥이 딸이다. 일본에 조선을 통째로 넘겨주고 대신 대한제국이라는 칭호를 얻은 허수아비 왕 고종이다. 이 왕족들이라고 해서 어떻게 죄를 피해갈 수 있을까.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들을 조센징으로 만들어버린 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평생의 역사를 오직 뒤집고 뒤집히는 당쟁으로 물들여온 왕족들이야말로 나라 내부의 싸움도 모자라 남의 나라의 세력까지 끌어들이더니 멀쩡하니 두 눈을 뜨고도 백성들을 부모 잃은 고아로 만들어버린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
"<나의> 육해군 장병이 용감히 싸우고, <나의> 모든 신하가 열심히 일하고, <나의> 1억 신민이 뜻을 받들어 최선을 다했음에도 전쟁상황이 호전된 것만은 아니었으며, 세계의 대세 역시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말로 일본 천황은 세계 만방에 항복을 선언했는데, 저마다 소중하게 태어난 한 개개인을 <자신의> 물건으로라도 여기는 그 오만방자함이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비통한 삶으로 끌어들였는지 그는 지옥에서 보고 있을까? 지옥이 있다면 제발 지옥 중의 지옥에 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곳에서나마 제발 자신이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저질렀는지 알고 고통의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 그런다고 해서 그 죄를 닦을 길은 없을지라도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친일을 일삼으며 거들먹거린 매국노들에 대한 분노에 더해 구중궁궐에서 눈부시게 화려한 용포를 떨쳐입고는 허깨비 짓만 해댄 왕족들에 대한 분노까지 겹쳐 쓴웃음이 나왔다. 책임을 지는 자리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나라든 가정이든 이런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으리라. 부디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가 아니라 그 누구란 한들 <지나치게 영민한 것을>, <품어서는 안 될 그리움을 품은 것을>, 그리고 <태어난 것을> 죄로 여겨야 하는 서글프고 뼈아픈 삶을 사는 일은 없기를 소망해 본다.
이상, 덕혜옹주 손예진의 기품어린 연기로 재탄생한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