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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부산행 공유와 마동석이 지켜낸 부산은 과연 안전지대일까?

 

부산행 공유와 마동석이 지켜낸 부산은 과연 안전지대일까?

 

 

암(癌)과 악(惡)은 닮았다. 특히 일단 먹잇감을 발견했다 싶으면 바로 침투해 강한 번식력과 감염력으로 주변을 오염시켜 버리는 점이 더욱 닮았다. 암은 일단 몸속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정상세포를 쇠퇴시켜 장기(臟器)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장기로 옮겨간 암 유전자는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한다. 이런 반복이 거듭되는 동안 결국 자신의 주거지인 몸 전체가 망가지고 자신 역시 죽고 만다. 예전에 어느 암 환자분이 "암아,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너무 바쁘게 서두르지 마라"고 했다던 우스갯말이 생각나게 하는 암의 무지몽매함과 맹목성이다.

 

악도 무지몽매함과 맹목성에서는 암과 다를 바가 없다. 그곳이 어디든, 어떤 사람이든 일단 그 씨가 뿌려지면 자신의 주거지가 완전히 망가져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오염시켜 버리니 말이다. 그 악에  붙들려 되살아나온 사람은 거의 없다. 죽어야 끝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숱한 사람들이 눈먼자들의 도시에서처럼 천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죽어라 악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그 길이 독버섯처럼 아름답고 화려하며, 그 맛이 천상의 과일처럼 달콤하기 때문이라고밖에 해석이 안 된다. 

 

부산행 공유와 마동석이 지켜낸 부산은 과연 안전지대일까?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고 공유와 마동석이 좀비들의 습격으로부터 자신의 딸 수안(김수안)과 아내 성경(정유미)을 지켜내고자 사투를 벌이는 재난 블록버스터 [부산행]은 악의 씨앗 한 톨이 얼마나 거대한 악의 정글을 순식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긴박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신파의 느낌이 강한 제목도 좀 그런데다, "재난영화가 아니라 좀비영화네"라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부산행에 관한 글은 어떤 것도 읽지 않았다. 미리 뚜껑이 열려 김이 다 빠져버린 맥주나 콜라맛이 돼버린 영화를 보게 될까봐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고 난 후의 소감은 좀비들이 떼거지로 출연하긴 해도 좀비영화가 아니라 재난영화가 맞다는 생각이다. 좀비는 다만 연상호 감독이 사람들에게 뿌려진 악의 씨가 얼마나 빠르게 뿌리를 내리고, 얼마나 빨리 줄기를 뽑아올리고, 또 얼마나 신속하게 그 꽃을 화려하게 피워내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암과 악, 좀비까지 모두 닮음꼴이다. 번식력이 강하고, 전파력도 엄청나며, 자신이 일단 들러붙은 상대는 기어이 망가뜨려 죽이거나 꼭 저 같은 꼴로 만들어놔야 직성이 풀린다는 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부산행]은 KTX에 탑승한 사람들이 이런 암이나 악과 같은 존재인 좀비를 상대로 대책 없는 싸움을 벌이는 재난영화다. 천재지변에 버금갈 재난이지만 사실은 몇몇 사람의 이기적인 탐욕이 빚어낸 인재(人災)다. 그 몇몇 사람의 탐욕이 마치 나비효과처럼 대형 허리케인을 불러들인 꼴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좀비는 또 하나의 좀비를 만들어내고, 그 좀비들은 다시 더 많은 좀비를 만들어내어, 처음에는 단 하나뿐이었던 좀비가 곧 떼거지로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어나가는 무시무시한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좀비에게 물리는 순간 좀비가 돼버리는 것은, 악의 손을 잡는 순간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케 해준다.

 

어떻게 이런 재난에 맞서나갈까? 펀드매니저, 일명 개미핥기로 큰손들의 종 노릇을 하면서 제 몫의 이익을 취하느라 바빠서 소중한 아내와 딸도 소홀히 여겨오던 주인공 석우 역을 맡은 공유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인물에서 재난을 만나자 이타적인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마블리'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리는 마동석은 원래도 남 일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사람이었지만 재난에 처하자 더더욱 이타적인 인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자 목숨을 불사하고 맹활약을 펼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김의성은 원래도 이기주의적이었던 사람이 재난을 만나자 더더욱 제 한 몸 귀한 줄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자가 되는 인물이다. 금수저니 은수저니 흙수저니 따지고, 민중을 개돼지 취급하고, 사람마다 목숨값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이 뿌린 악의 씨앗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할 줄 모르는 청맹과니들이다. 물론 자신들의 터무니없는 오만과 탐욕의 열매가 얼마나 고약한 악취를 내뿜는지도 알 리 없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최근 들어 공유나 마동석 같은 사람보다는 김의성 같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현세태를 일깨워주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재난이 덮치면 다른 누구도 아닌 제 한 목숨이 소중한 것이 여느사람들이다. 여차하면 가족도 몰라라 하고 삼십육계를 하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사고인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을 지켜줘야 할 나라마저 수많은 사람들이 좀비들로 변해가는 아수라장을 과격 폭력시위가 발생했다며 “잘 진압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멘트만 남발하며 손놓고 있는 상황에서 나 아닌 타인을 배려하는 마동석이나 정유미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기심과 탐욕으로 똘똘 뭉친 김의성 같은 인간에게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 먼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수많은 재앙을 겪으면서도 인류가 대를 이어 존재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타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 덕분이었을 게 분명하다. 즉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한 알의 밀알처럼 살신성인의 마음으로 자신의 목숨을 던진 사람들이 만들어준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인 셈이다. 김의성처럼 제 목숨만 귀중한 줄 아는 인간들이 다져온 세상은 결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지켜내온 세상에서 기고만장하며 사는 것은 김의성 같은 인간들이라는 것이 참으로 억울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국내에서 기차로 달려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인 부산, 이곳마저 무너지면 전 국토는 좀비들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 선의 마지막 보루랄까, 아직 악으로부터 지켜내야 할 청정지역이 부산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공유와 마동석이 지켜낸 부산, 그리하여 공유의 딸 수안과 정유미와 뱃속의 아이는 그곳으로 무사히 입성하지만, 부산이라고 해서 과연 안전할까? 그곳 또한 언제 악의 씨가 뿌려져 눈은 있되 앞을 가리거나 불이 꺼져 어두워지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조작으로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하면 영락없이 그곳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군중심리에 물든 좀비들의 세상이 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현실세계의 부산에서는 요 며칠 가스 냄새 때문에 문도 못 열고 광안리에는 개미떼가 출현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한다. 부산 수영구청은 장마 직후 개미 번식기여서 백사장에 개미떼가 대량으로 관찰됐던 것이며 특이한 현상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지진 전조현상이 아니냐는 추측도 확산되고 있는 모양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이제는 어느덧 일상이 돼버린 흉악한 범죄와 천재지변, '잊을 만하면'이 아니라 '미처 잊기도 전에' 터지곤 하는 갖가지 인재 등 뜻하지 않은 재난에 무방비로 노출된 삶이 점점 더 불안해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무튼 한번 좀비가 되면 다시 사람이 되기 힘든 것처럼, 일단 악의 구렁텅이에 발을 디밀면 그 악의 소굴에서 빠져나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시그널]에서 악의 손길을 내뻗는 김범주(장현성)에게 이재한(조진웅) 형사가 "한 번, 그 한 번이 악의 길을 걷게 하는 유혹의 손길이어서 거부한다"는 신념이 소중해지는 요즘이다.   

 

이상, [부산행 공유와 마동석이 지켜낸 부산은 과연 안전지대일까?]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