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디오리지널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강희(백윤식)의 엔딩 멘트
한 번 더 봐도 좋겠다 싶었는데 때마침 영화 [내부자들 디오리지널](우민호 감독)이 상영돼 기꺼이 보러 갔다. 무려 50분 정도 분량이 늘어났다고 해서 좀 지루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오히려 [내부자들]보다 더 몰입해서 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으니 이 영화,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흡입력만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것 같다.
미래자동차 오현수 회장(김홍파)의 돈, 신정당 대권후보 장필우(이경영)의 정치,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로 대표되는 언론, 이 셋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한 나라를 떡 주무르릇 마음대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강하게 머리를 때렸다. 어쩌면 그저 저마다 자기들 삶을 꾸리느라 오롯이 깨닫질 못해서 그렇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런 상황이며, 앞으로라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을 거라는 두려움도 새삼 엄습했다.
[내부자들]의 스토리는 지난번에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오늘은 [내부자들 디오리지널]에서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등장한 조국일보의 논설주간 이강희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요즘 방영되고 있는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김명민)은 신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그 왕으로 이성계(천호진)를 세우기 위한 조선 건국의 판을 짜고 있는데, 그때의 정도전이 한 일을 오늘날의 이강희가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일종의 킹메이커인 셈인데, 다만 당시의 정도전은 혼탁해질 대로 혼탁해져 그냥 두어도 결국은 멸망하고 말 고려라는 나라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백성들을 구해내보겠다는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었다면, 지금의 이강희는 그저 권력욕과 탐욕으로 찌든 몰골로 자신이 쥔 무소불위의 펜의 힘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리더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왜 품성과 도덕성이 요구되는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내부자들 디오리지널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강희(백윤식)의 엔딩 멘트
[내부자들 디오리지널]에서는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오프닝과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의 소름끼치는 웃음 소리가 마지막을 장식하는 엔딩 장면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끌어만 주시면 짖지 않고 예쁘게 따라갑니다"라고 딸랑거리며 안상구가 처음 이강희 밑으로 자진해서 기어들어가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의 풋풋한 모습도 그 후 어떤 끔찍한 배신을 당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때문에 저 어린 안상구를 데려다가 숱한 세월 여기저기 잘도 써먹어놓고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자 짤없이 내다버린 이강희가 더 몹쓸인간으로 비쳐졌다.
더욱이 이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 같은 이강희는 그 마음바닥이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든 황무지인지 친형님처럼 믿고 온몸을 바쳐 일해온 이강희가 배신을 때린 것을 알고 분노해서 찾아온 안상구에게 허투루라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이다. 이런 싸이코패스 같은 인간이 대중들의 눈과 귀가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언론사에 몸담고 있을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가 언론 권력의 부패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씁쓸한 절망감이 느껴졌다.
"이런 여우 같은 곰을 봤나?" 이 말은 자신의 주군을 위한답시고 미래자동차의 비자금 파일까지 갖다바친 안상구에게 이강희가 한 말이다. 도둑의 손에 장물을 안겨준 안상구의 딸랑이 정신이 "이런 여우 같은 곰"처럼 스스로 자신의 목에 오랏줄을 걸게 한 것이다. 그저 출세 한 번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에 이강희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미련을 다 떠는 안상구는 그렇다 치고, 이강희 쪽에서는 그런 안상구의 충정만은 알아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이강희에겐 딱 두 종류의 인간만 있을 뿐이다. 하나는 곰 같은 곰, 또 하나는 여우 같은 곰이다. 물론 곰 같은 곰이건 여우 같은 곰이건, 그의 눈엔 이들이 인간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오직 얼마나 쓸모 있느냐는 잣대로 판단되는 도구일 따름이다. 곰 같은 인간은 좀더 빨리 폐기처분될 테고, 그나마 안상구처럼 여우 같은 곰은 좀더 유효기간이 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 늦든 빠르든 결국은 충성맹세를 한 당사자에게 처절하게 농락당하는 것으로 끝날 운명인 게 불보듯 뻔하다.. .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강희가 <여우 같은 곰>이라고 칭한 인간 부류는 갑도 아닌 것이 을 노릇도 하기 싫어 죽어라 되도 않는 높이뛰기를 하고 있는 자들이 아닐까 싶다. 갑을 위해 몸바쳐 일하면 갑의 발뒤꿈치에라도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갑에게서는 온갖 모욕과 수모를 견디고, 을에게서는 갖은 비난과 못마땅한 눈초리를 감내하며 매일 수명을 단축하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무리들 말이다.
하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수명이 단축된들 그들로서야 억울해할 것도 없고 억울해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바로 이런 자들 때문에 <곰 같은 곰>들이 더 힘겨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데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곰 같은 곰>과 <여우 같은 곰>이 힘을 합쳐 대항해도 이강희 같은 인간을 이겨내기가 까마득한데, 이강희가 던져준 뼈다귀를 <여우 같은 곰>이 독식해 보겠다고 설쳐대는 통에 살기가 더 팍팍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서 <여우 같은 곰>들,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할 데가 어디인지를 알았으면 좋겠고, 또 몹쓸 갑이 던져준 코딱지만한 권력의 힘을 이용해 자신이 짓밟고 있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라는 것도 제발 알아차렸으면 좋겠다.
"아무런 팩트 없이 지껄이는 곳, 걔네들이 노는 곳이 바로 SNS 아닙니까? 씹을 대로 씹어대다가 단물이 빠지면 또 다른 뼈다귀에 덤벼들어 씹어대겠죠. 부르르 끓어오르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냄비근성 알잖습니까? 오른손이요? 까짓것 왼손으로 쓰면 되죠.하하하하하하"
이강희는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내내 기회만 있으면 대중을 개돼지 취급하면서 조롱하더니, 안상구에게 도끼로 오른손이 잘린데다 푸른 죄수복 차림을 하고서도 전혀 꿀리는 기색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조롱의 멘트를 날린다. 그것도 그때까지의 어떤 멘트보다 더 강력한 멘트다. 잽 잽 잽..하다가 어퍼컷! 완전 강펀치를 날리는 것이다.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에서는 시작부터 관객들을 향해 침을 튀기며 욕설을 던지고, 비난의 삿대질도 모자라 결국 객석으로까지 뛰어내려와 얼굴을 바짝 들이민 채 온갖 조롱의 말을 던지는데, [내부자들 디오리지널]은 엔딩에서 관객을 조롱하는 멘트의 세례를 걸판지게 퍼붓는다. [내부자들]을 보고 사이다 같은 통쾌함이 느껴져서 대리만족을 했다고 좋아라 하고 있었는데, 엔딩에 이렇듯 세게 뒤통수를 후려치는 복병이 숨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어쩌랴. 이강희의 그 조롱과 모독이 심히 불쾌하고 낯뜨거워도 달리 무어라 반박할 말이 없는 것을. 그리고 현세태를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탐욕의 펜을 휘두르는 그 이강희만이 아니라 그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펜대에 한.결.같.이. 그리고 끊.임.없.이. 놀아나는 나 자신을 비롯한 대중들인 것을. 이젠 이강희가 오른손도 아닌 왼손으로 쓴 기사에 놀아날 일만 남은 걸까.ㅠㅠ
(이강희 역을 맡은 백윤식님이 이 엔딩 장면이 편집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고 하던데,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이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은 곰 같은 곰이건 여우 같은 곰이건 가리지 않고 바로 마지막에 퍼부어지는 이강희의 조롱세례에 있기 때문이다. 이병헌과 조승우의 열연도 열연이지만, 백윤식의 열연이 없었더라면 [내부자들]도 화룡점정의 묘미를 발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상, 내부자들 디오리지널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강희(백윤식)의 엔딩 멘트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