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와이프 역지사지의 깨달음이 가져다준 행복
엄정화 송승헌 주연의 [미쓰와이프]는 지난여름에 개봉한 로맨틱코미디입니다. 로코여서 스토리가 너무 뻔할 것 같은데다 그 무렵 개봉된 다른 영화들을 보느라 별 아쉬움 없이 그냥 지나쳤었는데, 뒤늦게라도 안 봤으면 섭섭했겠다 싶을 만큼 잔잔한 감동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 후 한 달간 다른 여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 여변호사 이연우(엄정화)가 겪는 일들을 그린 스토리인데, 그 여자의 삶이 독하리만큼 도도하기 그지 없는 연우의 삶과는 너무도 판이한지라 연우 입장에서는 황당함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약속됐던 한 달이 흐르는 사이에 연우는 그런 역지사지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리 없었을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됩니다.
강효진 감독은 [미쓰 와이프]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부모를 일찍 여읜 후 모질고 독하게 살아온 연우는 결국 새로운 가족과의 만남 속에서 큰 부를 누리지 않아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가족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끼게 됩니다. 시종일관 유쾌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송승헌과 엄정화의 조합도 의외로 보기 괜찮았고, 아버지 역을 맡은 김상호, 같은 아파트 주민인 라미란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미쓰와이프 역지사지의 깨달음이 가져다준 행복입니다.
미쓰와이프 역지사지의 깨달음이 가져다준 행복
승소율 백 프로의 잘나가도 너무 잘나가는 변호사 이연우는 인생의 목적은 오직 성공추구에 있으며, 연애도 결혼도 자기 인생에서는 백해무익하다고 믿는 능력 충만한 커리어우먼이다.
하지만 당당하다 못해 도도해 보이는 그녀의 이면에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영화는 먼저 연우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이 독백을 통해 그녀를 이해하지 않으면 세상떠난 엄마의 영정 앞에서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는 연우를 그저 매정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독하게 공부한 연우는 자신이 목적한 대로 변호사, 그것도 아주 잘나가는 변호사가 되는 성공을 거둔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회경건설 박회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성폭행사건으로 수사를 받게 된 박회장의 아들 찬진의 문제를 잘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는 전화였다.
박회장의 전화를 받은 연우는 곧 찬진 편의 변호사석에 앉아 성폭행을 당한 당사자와 그 어머니를 회유하기 시작한다. 못 볼 꼴을 당한 딸의 불행 앞에서 분노가 극에 이르러 있는 어머니는 "다 필요없다. 저 죽일 놈!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콩밥을 먹이겠다"며 울먹인다.
그러자 연우는 "죽일 놈인 건 맞지만, 아시다시피 회경그룹이면 재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여기 있는 찬진군이 해외근무 1,2년하고 국내에 복귀하면 지금 이 사건 기억하는 사람 아무도 없다. 하지만 지민 양은 대학 졸업하면 우리나라에서 일자리도 구하고 신랑감 찾아서 시집도 가야 하는데, 지금 이 사건이 커져서 지민양 신상이 인터넷이 짝 퍼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막말로 강간사건도 아닌데"라며 한 손으로는 어르고 또 한 손으로는 뺨을 치는 멘트를 야죽야죽 날린다.
그 말에 더욱 화가 치민 어머니는 "지금 내 심정이 어떨지 아느냐! 합의 절대 안 해!" 하고 소리치지만, 잔뜩 겁을 먹은 딸은 변호사 말이 맞으니 그만하자며 엄마를 달래는 한편 연우에게는 그 대신 돈 많이 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으로 연우는 정당한 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 비열한 사건을 또 하나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다. 감성이냐 이성이냐가 엄청난 빈부의 차이를 만드는 기준이라고 믿는 연우이기에 일말의 연민조차 그녀에겐 사치일 뿐이다.
아들 일을 잘 처리해 준 것으로 신임을 얻은 연우는 회경그룹 박회장이 힘을 써준 덕분에 뉴욕 본사 발령을 앞두고 있던 중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한다. 하늘나라로 올라간 그녀는 생사의 위기를 다투는 자리에서 이소장(김상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는다. 아무래도 착오가 생긴 것 같으니 다시 세상에 내려가 한 달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면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연우로서야 일단 살고 볼 일이니 찬밥 더운밥 가릴 겨를이 있을 리 없다.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인 연우가 간 집은 남편과 아이 둘이 말 그대로 지지고 볶고 사는 가정이다. 아침이면 구청 공무원인 남편을 출근시켜야 하고, 중학생인 딸 하늘(서신애)과 유치원 다니는 막내 하루(정지훈)도 등교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수다스럽기 이를 데 없는 동네 아줌마들을 만나 반찬값이라도 벌기 위해 종이백을 접는 등 매끼 스테이크를 썰면서 우아하게만 살아온 연우로서는 참으로 스타일 구겨지는 삶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
하지만 착한 남편으로부터 생전 처음 느껴보는 따스한 감정에 연우는 "이게 뭐지" 의아해한다.
그리고 변한 엄마의 모습을 걱정해 갱년기 약이라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비타민C를 건네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목을 껴안으며 품속을 파고들자 역시 그 달달한 느낌이 무엇인지 의아해하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기분을 느끼면서 연우는 매일 조금씩 그 삶에 익숙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딸 하늘이가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화가 나서 교장실로 달려간 연우는 잘나가는 변호사 시절에 앉았던 가해자 편의 자리가 아니라 상대측의 비열한 회유에 분노했던 피해자 측의 엄마 자리에 앉는다. 게다가 가해자 측 변호사는 "최경훈군은 사건이 불거져도 대안이 많다. 유학생활 4년, 해외근무 5년이면 다시 돌아와 자리잡는 데 전혀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김하늘 양은 사건이 커지면 신상이 전국에 쫙 퍼질 텐데 괜찮겠느냐. 솔직히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니잖느냐?" 며 "뭐 일단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적절한 금액에 정신적 보상도 고려하고 있다. 보상내용은 어머니와 김하늘 양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선이 될 것이다"라며 연우가 변호사 시절에 했을 법한 말을 늘어놓는다.
피해자가 되어보고서야 비로소 당시 피해자의 심정이 어떠했을지를 온몸으로 깨닫게 된 연우다.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 편 의자에 앉느냐에 따라 이토록 다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리 없을 경험이다. 게다가 하늘이 또한 예전의 그 여자아이처럼 "엄마, 난 괜찮으니까 그냥 저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하자, 어차피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우리집 돈도 없고 대출도 많은데 빨리 합의하고 집에 가자"고 말한다. 하지만 연우는 "돈도 없고 대출도 많으면 참아야 한다고 누가 그래?"라면 분연히 일어나 "연우도 유학보내겠다. 그리고 경훈군에 대해서는 해외유학을 간다고 해도 세계 어느 나라 공항에 발들 딛든 모든 사람들이 강간미수범으로 알아보도록 해주겠다.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절대로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해주겠다"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에 알게 모르게 적응을 해가면서 소소한 행복도 느껴가던 연우는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말을 의사로부터 듣는다. 아들 하루가 '망막색소변성증'에 걸려 수술을 해도 시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사실은 연우의 어머니도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었던 터여서 하루에게 유전이 된 것인데, 연우가 그 집을 떠나면 그 유전인자도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남편과 딸 하늘, 아들 하루와의 삶에서 짙은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된 연우이기에 그들을 두고 떠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아픈 아들 하루를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억누르며 연우는 고해성사를 하듯 되뇌인다.
이 또한 연우가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되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깨달음이다.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 딸을 두고 세상을 떠나면서 얼마나 가슴아팠을지, 자신이 어미가 되어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비로소 연우는 증오의 감정마저 느꼈던 아버지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고, 나아가 마음속 깊이 쌓여 있던 미움을 떨쳐내고 아버지를 용서하기에 이른다. 이제 연우의 가슴속 얼음동굴에는 따스한 바람이 불어들어 차갑디차가운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는 이 외에도 서로 입장이 다를 때 받아들이는 양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던 연우였는데 남편이 상사한테 당하는 것을 보고는 선배를 이해하게 되었다든가, 기업은 하루라도 빨리 아파트단지를 건립하고 싶어하지만 주민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늦춰지기를 바라는 마음 등이 그런 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지 않으면 서로 제 이익만 찾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상황이 되는 것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본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꼭 누군가의 삶을 직접 살아봐야만 그 사람의 심정을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공감이며 이해심, 배려심 같은 감정이 있어서 이를 통해 역지사지를 해보면 이해가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득 아내의 장례식을 마친 후 세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에 올랐던 아빠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직 어려서 엄마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은 황망한 마음으로 넋을 잃고 있는 아빠를 두고 지하철 안 여기저기를 마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러자 짜증이 난 손님 중 한 사람이 "아이들 교육 좀 제대로 시키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지금 막 아내의 장례를 마치고 오는 길이어서 제가 미처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라는 아빠의 말에 더 이상 아무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면 없던 이해심도 발휘하는 것이 여느사람들의 마음이다.
이상, 미쓰와이프 역지사지의 깨달음이 가져다준 행복이었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