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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더 폰 손현주 배성우의 스릴러인 듯, 스릴러 아닌, 스릴러 같은

 

더 폰 손현주 배성우의 스릴러인 듯, 스릴러 아닌, 스릴러 같은

 

 

"만약 당신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1시간밖에 없고, 단 한 번의 전화 통화만을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를 걸 것이며,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 있는 글귀입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겠느냐는 첫번째 질문에는 사랑하는 가족, 즉 부모님이나 아내, 자녀와 통화하겠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두번째 어떤 말을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용서해라"는 말을 하고 싶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하긴 느닷없는 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면 돈도, 명예도, 궁전 같은 집도, 또 삐까번쩍한 차도 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습니다. 흔한 말로 죽을 때 무덤으로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믿고 보는 배우 손현주의 [더 폰]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저 글귀였습니다. 

 

더 폰 손현주 배성우의 스릴러인 듯, 스릴러 아닌, 스릴러 같은

 

살인사건으로 붉은 피가 낭자한 살해현장이 등장하고 보기에도 섬뜩한 칼이며 가슴을 철렁하게 만드는 총소리까지 난무하는 영화, 더욱이 살해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랑하는 아내여서 그 끔찍함이 더했던 액션 스릴러를 보고 난 후의 감상으로는 너무 동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목밑까지 바짝 죄어들어온 긴장이 일순간에 탁 풀리면서 잠시 멍한 순간이 지나고 나니 어이없게도 "그래, 있을 때 잘해야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잘 놀다가 뒤통수라도 한 대 보기좋게 후려맞은 것 같아 헛웃음도 터져나왔습니다. 쉴새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날실과 씨실을 엮어나가는 스토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온몸과 마음을 집중해서 본 대가치고는 너무 관객을 우롱한 것 아닌가 싶어 슬몃 화도 났구요.ㅎㅎ

 

 

추리소설의 매력에 빠져 국내외 추리소설이란 추리소설은 다 읽고야 말겠다며 덤벼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몇백 권은 읽었던 것 같은데, 한꺼번에 마구잡이로 읽다 보니 작가며 내용이 서로 뒤섞여버려서 몇십 종 정도 빼고는 어떤 작가, 어떤 제목의 책인지 모르게 뒤죽박죽돼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때 읽었던 추리소설 중에 영화 [더 폰]의 소재와 흡사한 내용의 책이 있는데, 제목은 모르겠어도 아마 우리나라 최고의 추리작가이신 김성종님의 작품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내가 살해되고, 아내가 살해된 것만으로도 분노를 이길 수 없던 남편이 누명을 뒤집어씁니다. 결국 남편은 아내를 죽인 놈들에 대한 복수와 또 자신이 뒤집어쓴 아내 살인죄를 스스로 벗겨내기 위해 일상의 모든 일을 접고 범인을 잡으러 나섭니다. 더 끔찍한 것은 아내를 죽인 자들이 아내 몸에 문신을 해놓은 거였는데, 공교롭게도 그 문신을 단서로 해서 남편은 살인자를 잡아낸다는 스토리였습니다. 추리소설의 특성상 한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었던지라 그때 거의 매일 밤을 추리소설을 읽느라고 뜬눈으로 새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시체가 돌아왔다]의 조감독 김봉주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더 폰]에서도 남편 고동호 변호사(손현주)는 1년 전 어느 날 아내(엄지원)가 살해되는 끔찍한 일을 당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죽인 범인이라는 누명을 씁니다. 사실 그는 극중 노동조합 측과 갈등을 겪는 한 중견기업의 사측을 변론하고 있던 탓에 노조 측으로부터 계속 협박을 받고 있었던 차입니다. 남편은 말합니다. 

 

 "2014년 5월 16일 제 아내는 살해됐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그녀는 그 날도 평소와 다름 없이 오전 9시에 병원으로 출근했습니다. 제가 오래 다닌 직장을 떠나는 알이었기 때문에 아내와 저녁 약속을 잡았죠. 하지만 퇴사를 아쉬워하는 후배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와중에 시간이 훌쩍 흘렀고, 먼저 약속장소로 향하던 아내는 가벼운 접촉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황한 아내가 수차례 전화를 걸어왔지만 술에 취한 나머지 받지 못했죠. 그리고 바로 그날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정체불명의 괴한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과연, 누가 어째서 그녀를 죽인 걸까요? 경찰도 해결하지 못한 의문의 사건을 파헤치면서 용의자 선상에 오른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사건 당일 접촉사고로 인해 아내와 언성을 높인 낯선 남자, 둘째는 밤늦은 시간에 집을 찾아온 택배기사, 마지막으로 블래박스에 잡힌 검은색 카니발의 차주입니다."

 

그리고 1년 뒤 고동호는 살해당한 아내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태양 폭발로 인한 통신 오류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방송이 이어지는 날이었습니다. 1년 전 아내가 살해됐던 그 날도 그랬습니다. 남편 고동호는 만일 시계를 1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러니까 아내가 살해되기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아내가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생각과 더불어 타임머신에 올라 1년 전 그 날과 1년 후인 오늘 사이를 수시로 오가면서 아내를 구하기 위한 사상 최악의 사투를 벌입니다. "1년 전 사건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아내를 살려낼 수도 있는 그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간절하고도 단호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아내 살해범으로 쫓기고 있는 터여서 범인을 추적하다가 범인 혹은 경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잡히기 일보 직전 온몸을 던져 물속으로 뛰어들고

 

 

지하철로 죽어라 도망을 가지만...쫓고 쫓기는 추격전도 그다지 긴박감이 안 느껴지고 시종일관 살인사건 하나를 가지고 풀어나가는 스토리도 너무 밋밋해서 액션 스릴러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순간 심장을 쫄깃하게 만드는 긴장감도 전혀 없었구요. 포스팅에 쓴 제목처럼 말 그대로 손현주 배성우의 스릴러인 듯, 스릴러 아닌, 스릴러 같은 더 폰이었습니다. 아쉽다면 아쉬울 수도 있지만, 갈수록 상상을 불허할 만큼 잔혹해지고 있는 다른 스릴러들과 달리 쓸데없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았던 점도 있습니다. 

 

다만 저렇듯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을 넘나들면서 스토리를 진행시켜 나가더라도 결국은 어느 한쪽만이 현실이라는 것이 곧 밝혀질 텐데,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이며, 또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풀어낼까 하는 궁금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컸습니다. 결국은 둘 다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요. 누설의 염려가 있어서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쓰지 않겠습니다. 김빠진 맥주로 만들어서는 안 되니까요.  

 

 

이 배우, 살인자 역을 맡은 배성우라는 분, 아주 멋졌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다작배우로 유명한 분이라고 하는데, 그 사실 자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을 만큼 존재감이 미약했던 이분, 만일 그 동안 자신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서 서글펐다면, 그 서글픔, 더 폰에서 완전히 날려버렸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매의 눈초리로 지그시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 같은 저 포즈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아치리게 된다면, 머리끝이 쭈뼛 서는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경찰 출신이지만 어떤 연유로 잘린 후 간간이 살인청부로 생계를 꾸려가는 캐릭터인데, 적인지 동지인지 구별할 수 없을 때 나타나게 마련인 경계심을 끊임없이 유발시키는 역으로 완벽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스토리상 아쉬웠던 점은, 나중에라도 자신의 딸이 소중한 만큼 남의 딸도 소중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손현주가 출연했던 또 한 편의 스릴러 [숨바꼭질]에서도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메시지를 느꼈는데, [더 폰]에서도 손현주는 너무나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잊고 살게 마련인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줄 뿐 아니라 큰 욕심 없이 소소한 일상을 누리는 행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나아가 자신의 부를 축적하거나 내 안락한 삶을 위해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거나 원한을 살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도 머리 한구석으로 쏘아 날려줍니다.

 

 

 

우리는 늘 습관적으로 후회를 하면서 삽니다. 그래서 그때 그 일을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만나러 갔더라면 혹은 만나지 않았더라면, 1년 전으로 혹은 1주일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 또는 하지 못했던 일을 아쉬워하며 후회에 후회를 거듭합니다. 또 상상의 나래도 펴봅니다.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듯하니, 머릿속으로나마 잘못 꿰어진 단추를 처음부터 올바르게 다시 꿰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고 잠시나마 위로를 받기 위해 상상 속이나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뿐입니다.

 

흘러간 물을 되돌릴 수 없듯이 이미 벌어진 일 또한 결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만일 진짜로 1년 뒤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되돌릴 기회가 주어지고 또 실제로 되돌릴 수 있게 된다 한들, 굳이 그때 가서 두 번 다시 후회할 일은 하지 않겠다면서 법석을 떨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든 일이든 일단 내 곁을 떠나고 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기란 불가능하니까요.

 

이상, 더 폰 손현주 배성우의 스릴러인 듯, 스릴러 아닌, 스릴러 같은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