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들 조승우 이병헌의 유쾌상쾌통쾌 사이다!
너무 기대감을 가졌다가 자칫 실망하게 될까봐 조심스러웠던 조승우 이병헌의 영화 [내부자들]은 일단 기대 이상이어서 기분좋게 영화관을 나올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마무리까지 아주 깔끔하고 확실하게 해주어서 곁에 있었다면 우민호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만일 그렇지 않고 용두사미처럼 흐지부지 끝을 맺거나, 아니면 이어령비어령처럼 각자 해석하기 나름인 결말을 보여주었다면 추잡하기 짝이 없는 진흙탕 싸움을 머리가 아프도록 열심히 봐준 데 대한 보상이라도 청구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끝간 데 모를 탐욕으로 가득한 까마귀떼 같은 인간들 속에서 단 하나의 백로였던 조승우가 영화 중반을 넘어선 지점에서 변절자가 되어 나타났을 때는 짜증이 치밀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나가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하는 싫증이었다.
내부자들 조승우 이병헌의 유쾌상쾌통쾌 사이다!
[내부자들]의 인물관계도다. 조승우 이병헌이라는 두 내부자가 없었더라면 영화 제목을 [내부자들]이 아니라 [배신자들]이라고 붙여도 하등 이상할 게 없을 만큼 배신을 떡먹듯이 하는 인간들 일색이다. 내부자들은 [미생], [이끼] 등 부패와 갑질로 물든 우리 사회를 리얼하게 그려내는 윤태호 작가의 웹툰을 영화로 만든 범죄드라마다. 특히 정치깡패로 변신한 이병헌은 원래도 누구나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오직 연기로만 승부하겠다는 투지가 그대로 연기에 녹아들어가 있어서 역시..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빽도 없고 족보도 없어서 늘 승진을 눈앞에 두고 물만 먹는 검사 우장훈 역을 맡은 조승우는 이번 영화에서야말로 확실한 자신만의 깃발을 정상에 꽂은 것 같다. 물론 그 동안에도 믿고 보는 명품배우였지만, 개인적으로 영화에서도 그렇고 뮤지컬에서도 그렇고, 남자치고는 가냘픈 목소리 때문인지 강력한 카리스마 면에서 왠지 2%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던 부분을 이 영화에서 완전히 불식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까라면 까고 덮으라면 덮는 것이 대한민국 검사 아니냐"며 자조어린 멘트를 날리는 많은 검사들과 달리 목숨을 내걸고 정의를 실천하는 검사의 본분을 멋지게 지켜준 우장훈 검사다.
신정당의 유력한 대권 후보 장필우 역을 맡은 이경영은 온갖 더러운 짓은 다른 사람에게 시키고 자신은 그 달콤한 열매만 따먹는 악의 화신이다. 앞으로는 믿음을 주는 얼굴로 신뢰정치를 부르짖으면서 뒤로는 "잘못되면 나 혼자 안 죽는다"며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은 무조건 제거하고, 그 뒤치다꺼리는 정치를 설계하는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에게 몽땅 맡긴다.
장필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자신도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탐욕으로 가득찬 논설주간 이강희 역을 맡은 백윤식은 "말은 권력이고 힘이라고 믿는" 꼴통이다. 그래서 무릇 "칼보다 강한 펜의 힘"을 정의가 아닌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만 휘두르는 교활하며 음흉하기 짝이 없는 이 인간은 재벌이며 조폭 등 여러 인물들을 연결해 주면서 자신의 실익을 챙기는 능구렁이다. 정떨어질 만큼 노회한 언론인의 모습을 백윤식은 너무도 리얼하게 표현해서 화면에 그의 얼굴만 나타나면 열이 확 뻗치는 것을 지그시 눌러야만 했다.(ㅎㅎ) 두말하면 잔소리인 백윤식의 연기력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대중들의 말은 개돼지들이 떠드는 소리로 생각하라"는 이강희야말로 진짜 개돼지 아닐까?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는 무학대사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언론과 정치판의 든든한 돈줄인 미래자동차의 오현수(김홍파) 회장이 번번이 벌이는 성접대파티는 정말 더럽다 못해 추악했다. 산해진미로 그득한 음식상을 앞에 두고 알몸으로 낄낄거리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부럽기는커녕 이 세상 혹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랄 게 없는 불행한 인간의 비애가 느껴졌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거대한 오물신이 등장하는데, 이 오물신이 내뿜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만큼이나 이들이 벌이는 아방궁 파티에서도 골때리는 악취가 뿜어져 나와 코를 틀어막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서로 구린 놈끼리 가야지 냄새를 풍겨도 괜찮지 않겠나"라고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은 물론 자신과 같이 노는 자들이 구린 인간인 줄은 알고 있는 셈인데, 그 정도의 양심은 아직 살아 있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또 한 사람,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이 사람은 권력가의 숨은 해결사로 알려진 조상우(조우진)다. 관심이 갔다고 해도 좋은 의미에서의 관심은 아니고, 마치 살인병기처럼 딱 저 표정으로 사람을 때리고 팔다리를 잘라내고 죽이는 그 무심함에 혐오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움이나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저 눈초리가 오히려 분노해서 저지르게 되는 살인이나 폭력보다 더 섬뜩하고 무서웠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가졌을 게 분명하다.
저런 사람에게도 가족이 있을까? 물론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부모는 당연히 있을 테지만, 함께하면 할수록 주변사람을 황폐화시켜 버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아니면 타인의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날려도 자신의 부모, 혹은 아내나 아이들에게만은 좋은 자식, 좋은 남편, 좋은 아빠일까? 아무튼 평생을 살면서 저런 사람과 만나지 않는 것을 행운으로 여겨야 할 듯싶다.
빽도 없고 족보도 없어서 조직을 위해 개처럼 살아온 우장훈(조승우) 검사는 마침내 대선을 앞둔 대대적인 비자금 조사의 저격수가 되는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비자금 파일을 가로챈 안상구(이병헌) 때문에 수사는 종결되고, 우장훈 검사는 그 책임을 지고 좌천된다. 한편 미래자동차 회장과 논설위원 이강희, 대통령 후보 장필우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오른팔이 잘리고 의수까지 하게 된 안상구는 “복수극으로 가자고, 화끈하게"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무족보 검사 우장훈과 함께 세상을 더럽히는 추악한 인간들을 향한 화끈한 복수의 칼을 빼든다.
위 <내부자들>의 빨간 글씨 내부자<들>에 주목해야 한다. 성공한 복수의 기쁨은 내부자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결국은 정의가 이기는 것으로 사필귀정의 묘미를 일깨워준 이 영화가 정말 고맙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를 부르짖을 줄은 알아도 정의를 실천에 옮기는 능력은 없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할지 너무 막막하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국민들을 위해서"라고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남발하는 정치가도 기업가도 언론인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니 말이다. 거기다 누구보다도 정의를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할 검사집단까지 그들의 하수인 노릇이나 열심히 하고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더 바랄 게 있다면, [내부자들]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정의가 영화에서만 이루어질 게 아니라 현실에서도 빛을 발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여름에 개봉했던 황정민 유아인의 [베테랑]이 차갑게 식힌 시원한 캔맥주 같았다면. 내부자들은 가슴속 저 깊은 곳까지 뻥 뚫어주는 사이다 맛이다. 안상구, 우장훈 검사, 부디 모히또에 가서 기분좋게 몰디브 한 잔 기울이시기를!! ㅋ.
이상, 내부자들 조승우 이병헌의 유쾌상쾌통쾌 사이다!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