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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마션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맷 데이먼의 화성분투기

 

마션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맷 데이먼의 화성분투기

 

마션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맷 데이먼의 화성분투기 

 

'혼자서도 잘 놀아요"의 진수를 멋지게 보여줄 사람을 꼽아보라고 하면 전 맨 먼저 예능인 노홍철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 팬이라고까지는 할 것 없어도 늘 싱글싱글 웃는 얼굴에 초긍정마인드,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의 최고봉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보면 왠지 유쾌한 기분이 됩니다. 그를 '혼자 놀기의 대가'로 꼽게 된 것은 어느 프로그램에서인가 혼자 자동차를 타고 다녀도 전혀 심심하지 않은데, 그 이유가 <내비녀>, 즉 내비게이션의 여성과 재미나게 대화를 나누며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비녀가 직진을 하라고 하면 "싫어! 난 우회전할 거야!" 하며 오른쪽으로 돌고, 내비녀가 길을 잘못 들어섰으니 200미터 앞에서 U턴을 하라고 하면 "안 돼! 난 직진이 좋아!" 하며 일부러 자꾸 말을 하게 한다는 거였지요. 

 

그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저도 흉내를 내보려고 한 적이 있는데, 보는 사람이 있건 없건 뻘쭘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ㅎㅎ. 게다가 그에겐 은근히 악바리 근성도 느껴져 흔히 말하듯 사막에 떨어뜨려놔도 "내가 죽을까 보냐"며 여느때처럼 싱글싱글 웃는 얼굴로 쨘! 하고 살아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당사자와는 상관 없는 순전히 제 느낌일 뿐이지만요.

 

마션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맷 데이먼의 화성분투기 

 

그런데 사막도 아니고 무려 <화성>에서 혼자 재미나게 놀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 [마션]의 주인공 맷 데이먼입니다.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기 불가능한 화성에서 재미나게 놀다니, 그게 말이 될 법한 소리냐고 하겠지만, 제 눈엔 정말 그렇게 보였습니다. [에이리언]으로 SF 장르의 포문을 연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마션의 스토리는 리더인 제시카 차스테인(영화 속 이름 멜리사 루이스)이 이끄는 NASA 아레스3 탐사대가 화성을 탐사하다가 초강력 모래폭풍을 만나 서둘러 돌아갈 준비를 하던 중 팀원 맷 데이먼, 즉 마크 와트니가 보이지 않자 죽었다고 판단하고 그를 남겨둔 채 지구로 돌아가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다들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믿었던 마크는 극적으로 살아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인 것인지 알게 된 그는 초긍정마인드와 낙관적인 자세로 기어이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전혀 기죽지 않은 담담한 표정으로 남은 식량을 살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고, 지구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안다 한들 4년 후에나 구조하러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후의 식량으로 쓰기 위해 자신의 인분을 거름으로 해서 감자도 심습니다. 

 

물이 모자라자 두 개의 수소원자와 하나의 산소원자를 공유결합시켜 물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주변의 것을 활용해 살아남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일상을 차분하면서도 유쾌한 목소리로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서 돌아가건, 아니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건 살아남은 자들을 위해 멋진 선물이 될 자료입니다.

  

 

완전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의 모습입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을 당한다면 누구든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날 게 뻔한 영화인지라 "혼자서도 기가 막히게 잘 노는" 마크를 짠하다는 마음 한 조각 없이 아주 재미나게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무인도 하면 로빈슨 크루소를 떠올렸다면, 앞으로는 화성 하면 마크를 떠올리게 되겠구나 생각하면서요. 

 

한편 로빈슨 크루소의 유일한 동무였던 프라이데이 역은 신나는 디스코풍의 노래가 대신 해줍니다. 그러고 보면 혼자 있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이 다 동무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새도 나무도 풀도 바다도 동굴도 감자도 음악도... 그래서인지 리더인 멜리사가 우주에서 듣기 위해 담아온 경쾌한 음악은 천길 낭떠러지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시종일관 담담하고 유쾌한 마크와 멋지게 어우러져 마치 화성으로 여행이라도 온 줄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마션의 제작노트에 따르면, 리들리 스콧 감독은 72일 동안 마크가 혼자 살아가는 화성과 그의 구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NASA 본부, 그리고 광활한 우주의 모습까지 다양한 장소를 통해 완벽하게 담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고 합니다. 먼저 무인로봇 큐리오시티가 전송한 화성의 사진들을 참고해서 화성과 가장 비슷한 모습인 요르단의 <와디 럼>을 찾아냈습니다. 실제로 와디 럼은 요르단 정부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한 장소이지만 이곳의 바위 색깔이 그 동안 화성 사진에서 보았던 것 중 가장 흡사하다고 생각되어 끝까지 허락을 얻기 위해 노력했고, 덕분에 화성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두번째 장소는 NASA 본부입니다. 마션에서는 NASA의 분량이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합니다. NASA는 영화 마션을 위해 촬영장소를 대여해 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덕분에 NASA 역시 영화 속에서 보다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세번째 장소는 아레스3 탐사대가 머무는 헤르메스호입니다. 헤르메스호는 세트로 구현되었으며, 제작진은 우주선 내/외부를 제작하기 위해 영국의 대형 세트장을 섭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크가 살아가는 거주 모듈인 막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세트장에 마련되었고, 실제로 부다페스트의 세트장에서 감자를 키워 사실감을 극대화했다고 합니다.

 

또한 화성을 구현하기 위해 촬영했던 <와디 럼>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로 360도 촬영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크가 겪는 모습을 실감나게 구현하기 위해 고프로 카메라를 사용하며 한 씬을 촬영할 때마다  평균 6대의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합다. 덕분에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이미지는 마크의 1분 1초도 놓치지 않았고, 마크가 주로 있는 막사, 화성탐사차량 로버, 연구실, 샤워실까지 약 50개의 카메라를 동원해 촬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 마션이 제게 준 더 뜻깊은 메시지는 이런 촬영상의 훌륭한 기법 등이 아니라 <우물안 개구리 같은 근시안적인 삶에서 벗어나 저 광활한 우주로 눈길을 돌리게 하는> 데 있습니다. 뻔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드벤처류의 영화들을 보면서 매번 힘을 얻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즉 찌들 대로 찌든 일상에서 더 크고 넓은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릴 수 있는 꿈을 갖게 해주는 것 말입니다. 더불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난쯤 얼마든지 이겨내보겠다는 도전정신과 용기도 가슴 가득 차오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면서 "그래,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저 화성 여행도 정말 좋겠다" 싶었습니다. 굳이 해외까지 갈 것도 없이 국내여행만 하고 돌아와도 마음이 한 뼘쯤 커지는 듯한 기분이 드는데, 하물며 화성을 여행하고 온다면 그 후로는 얼마나 스케일이 다른 삶을 살게 될까 싶었으니까요. 아우구스투스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책의 한 페이지만 읽는 것과 같다"는 명언을 남겼는데, 화성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남들은 겨우 몇 페이지 읽었을 뿐인 그 책 한 권을 통째로 읽은 셈이 될 테니까요.   

 

"바람을 마주보고 서면 역풍이지만, 바람을 등지고 서면 순풍이 된다"고 합니다. 생각의 방향을 바꾸면 인생의 방향도 바뀐다는 말입니다. 마션의 마크 와트니야말로 이 말에 꼭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강력한 모래폭풍으로 몰아쳐온 역풍을 초긍정마인드로 몸을 돌려세움으로써 아직 누구도 경험해 본 적 없는 <화성 여행>이라는 순풍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어차피 죽을 게 아니라면, 잘 살아남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물 밖 세상을 본 마크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상, 마션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 맷 데이먼의 화성분투기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