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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

성난변호사 이선균 이기는 게 정의라구? 정의가 이겨야지!

 

성난변호사 이선균 이기는 게 정의라구? 정의가 이겨야지!!

 

성난변호사 이선균 이기는 게 정의라구? 정의가 이겨야지!!

 

"우리가 진실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위대한 인물들의 부도덕함이 아니라, 인간이 자주 부도덕함을 통해 거대한 존재로 부상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프랑스의 역사학자 토크빌이 한 말입니다. 유럽과 독일 등지에서 고품격장편추리소설 작가로 널리 알려진 헤닝 만켈의 [미소지은 남자]를 한마디로 압축해 주는 글귀이기도 합니다. 기품있는 옷차림, 갈색으로 그을린 멋진 얼굴에 언제나 선한 미소가 떠올라 있는 50대의 남자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수출입사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합니다. 사회적으로도 큰 명망을 얻은 그는 자신의 조국인 스웨덴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지를 가능케 할 만큼 경제적으로도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그는 실제로는 전 세계에 걸쳐 불법 장기매매로 돈을 끌어모으고 있으며 필요하면 언제든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악의 화신입니다. 토크빌의 말처럼 부도덕함을 통해 거대한 존재로 부상한 인물인 것입니다.

 

성난변호사 이선균 이기는 게 정의라구? 정의가 이겨야지!!

 

[성난 변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주인공 변호성 변호사 역을 맡은 이선균이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까지 쳐대며 맹활약을 펼쳐나가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모처럼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떡이는 이선균이 아니라 잠깐씩 등장하는 이 영화의 악의 축을 맡은 제약회사  회장 문지훈(장현성)에게 더 관심과 흥미가 끌렸던 것은 장현성에게서 <미소지은 남자>의 미소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평소 워낙 연기파 배우여서 선한 사람 역은 물론 악역도 이미지상  별 충돌 없이 잘 해내는 장현성은 이 영화에서 앞과 뒤가 다른 두 얼굴의 사나이 역도 멋지게 해냅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자신의 제약회사에서 판매되는 약이 부작용이 심해 한 사람씩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악마의 미소를 떠올리며 분개한 목소리로  "그 약으로 99명을 구할 수 있다면 한두 명의 목숨쯤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냐!"라고 자신의 당위성을 주장할 때도 그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대답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에게 "그 한두 명의 목숨이 바로 당신의 목숨이라 해도 그 말이 여전히 유효하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모르면 몰라도, 너무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무슨 소리야? 난 근본 혹은 태생이 달라. 흙수저 물고 나온 미생들의 목숨값과 내 목숨값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라고 반문할 게 분명합니다. 그런 자이기에 자기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가차없이 <치워버리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치워버리라>니!? 사람이 무슨 물건도 아니고, 아무리 영화 속 멘트라 해도 인간으로서 참으로 모욕적이고 모멸감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더욱이 그의 이 말은 눈앞에서 안 보이게 하는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곧바로 살인 지시가 될 수도 있으니 정말 끔찍합니다.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이 돈과 권력과 힘을 갖게 되면 이렇듯 눈에 뵈는 게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아무튼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어느 분야에서나 쉼없이 자행되고 있는 고약한 갑질들의 행진입니다. 게다가 자신의 악행을 천사의 미소로 덮은 채 기꺼이 지킬 앤 하이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체가 폭로되어 경악하게 만드는 일도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1994년에 씌어진 [미소지은 남자]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2001년, 불과 15년 전만 해도 겉으로는 천사의 얼굴을 하고 뒤로는 악행을 일삼는 캐릭터가 참 생소하게 느껴졌었는데 말입니다. 

 

 

대법원에 있다는 정의의 여신상입니다. [성난 변호사]의 허종호 감독과 제작진에 따르면 아무리 정교하게 세트를 만들어도 실제 공간이 주는 권위와 분위기를 구현해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삼고초려 끝에 대법원으로부터 촬영 허가를 받아 찍은 거라고 합니다. 덕분에 실제 대법원 복도에서 수많은 취재진들에게 둘러싸인 변호성 변호사의 기자회견 장면 등은 더 현실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법원을 오가면서 저 정의의 여신상을 수시로 보았을 변호성 변호사는 저 앞에서도 너무나 당당하게 "이기는 게 정의지 뭐!"라는 멘트를 날립니다. 정의의 여신상도 "이기는 게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이기는 것이다"라고 바로잡아주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너무 멀고 높은 곳에 고고하게 자리잡고 앉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의보다 악법도 법이라고 법이 먼저이고, 법보다 돈과 권력과 주먹이 먼저인 세상에서 미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편에 서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억울한 분노로 가득찬 미생들은 성난 변호사나 베테랑, 치외법권 같은 영화를 보면서 자신을 위해 대신 싸워주는 경찰이나 변호사를 통해 잠시나마 위로를 받고 대리만족을 느낄 뿐입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황정민의 말에 환호하고, "나는 나쁜 놈들 잡으면 일단 패고 본다! 지금 패지 않으면, 벌주지 않으면 언제 또 풀려날지 모르니까!”라는 임창정의 말에 박수를 보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돈은 없어도 가오라도 있지만, 그리고 나쁜 놈들을 만나면 일단 패고 보는 힘센 주먹이라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도 없고, 가오도 없습니다. 그래서 밤 12시를 알리는 종이 땡땡 울리면 눈물을 머금고 화려한 파티와 왕자님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하는 신데렐라처럼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사이에 서둘러 꿈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추슬러야 합니다. 

 

다만, 잃어버리고 온 구두 한 짝을 누군가가 찾으러 와주기를 바라는 희망의 끈은 놓지 않습니다. 허무하디 허무한 희망일망정, 또 늘 속고 속는 희망일망정 그 희망마저 없으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부당하나 신은 공정하다. 결국 정의가 이긴다"라는 롱펠로의 말이 언제 어디서나 제 힘을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도 결코 내려놓지 못합니다.  

 

 

아쉽게도 이선균의 활약이 지나칠 만큼 눈부셨던 반면 은교, 차이나타운 등에서 깊이있고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고은은 기대에 못 미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 탓인지 검사로서의 카리스마도 거의 느낄 수 없었고, 이선균과 썸을 타는 여자후배로서의 케미도 전혀 느껴지지 않아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요.

 

 

또 늘 엉뚱한 매력으로 보기만 해도 절로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일명 웃음유발자 임원희도 이 영화에서는 자신의 특장점을 거의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특유의 무표정함 속에서도 제때에 맞춰 웃음 코드를 건드려줘야 하는데 번번이 빗나가버려서 웃어냐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그냥 안 웃게 됩니다. 그가 나오면 웃으려고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덕분에 이선균만 신났습니다. 하긴 허종호 감독도 이선균 맞춤 영화를 만들어볼 생각이었다고 하던데, 이기는 게 정의가 아니라 결국은 정의가 이긴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주었다면 뭐 아무려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뭘 더 바래?"ㅎㅎ)    

 

이상, 성난변호사 이선균 이기는 게 정의라구? 정의가 이겨야지!였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