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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관계의 착각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려라

 

관계의 착각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려라

 

 

사람들이 하는 착각 중 가장 큰 착각이 아마 "제눈에 안경"이라는 착각이 아닐까 합니다. "고슴도치도 제 어미 눈엔 고와보인다"는 것도 같은 의미의 속담일 테구요. 고슴도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곱지 않은 동물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이 전혀 달갑지 않을 테지만, 유연하고 편안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라면 때로는 이런 착각도 꼭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착각은 대부분 바람직한 인간관계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착각만 거둬내도 힘겨운 인간관계의 문제가 반은 풀린다"는 말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은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일 겁니다. 서울대 곽금주 심리학 교수가 [습관의 심리학]에서 들려주는 관계의 착각 나는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려라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얼마나 심각한지 느끼지도 못하는 몇 가지 착각만 거둬내도 인간관계가 훨씬 풀릴 것입니다. 착각에 관한 글을 더 읽고 싶으신 분은 다음 글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중잣대의 함정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능력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발달한다. 하지만 이러한 능력의 발달과는 별도로 인간은 편협하고 왜곡된 착각 속에 빠질 때가 많다. 스탠포드대학의 에밀리 프로닌의 연구는 이 착각이 우리가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얼마나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지 밝히고 있다. 바로 인식의 불균형 때문이었다. 연구는 자신을 판단하는 잣대와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가 얼마나 비대칭적인지를 보여준다. 인간관계가 삐걱거린다고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중잣대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

 

첫번째 착각 내가 상대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먼저 대인간 문제에서 사람들은 상대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상대를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있게 말한다. "너는 나를 너무 모르지만,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 그리고는 누군가가 내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줄 때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아"라고 말할 만한 상대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대는 오랜 시간 생각과 감정을 깊게 공유하고 나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한다.

 

여기에는 결정적인 허점이 있다. 상대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의 감정이나 생각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라면 자신도 타인을 잘 알 수 없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 논리가 자신이 타인을 인식할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경우에는 그렇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내면적 성향을 타인의 외면적 행동만을 보고 쉽게 판단하는 것이다.

 

두번째 착각 넌 나를 모르지만 난 나를 잘 알아

 

착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개인 내부에서도 착각은 일어나는데, 오히려 이 착각이 인간관관계에서 더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한다. 타인의 자기표현을 무시하거나 심한 경우 타인을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인식하게끔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구결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 스스로를 알고 있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넌 너 자신을 너무 몰라. 하지만 난 주제파악을 잘하지"라고 여기는 것이다.

 

타인은 자기중심성, 방어적 태도, 다른 편견들로 인해 스스로를 잘 보지 못하지만, 본인은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신뢰라는 인간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성립되지 않으며, 인간관계의 발전이란 기대할 수조차 없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해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이미 자신이 규정해 놓은 상대가 있고, 이 낙인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내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의 티끌은 잘 본다"는 말은 상대에게는 고스란히 적용되지만 자신에게만은 예외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잣대가 적용되면, 흐트러진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 1차적 수단인 의사소통마저 불가능해진다. 두 가지 상황을 전제해 보자. 첫째, 나는 상대를 잘 알지만 상대는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둘째, 나는 나에 대해 파악하고 있지만 상대는 그 스스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때에는 일방적인 자기주장을 거듭할 수밖에 없으며 상대의 이야기도 귀게 들어올 리 없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

 

- "넌 너 자신을 너무 몰라"라면서 상대에게 지나치게 충고한다.

- "너는 나를 너무 몰라" 하면서 상대의 충고는 철저히 무시한다.

-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애써 설명한다.

-  상대의 오해를 바로잡아야 하니 목소리가 더욱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고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다.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은 라틴어로 '나누다'를 의미하는 'communicane'에서 유래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경쟁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기술을 습득하려고 노력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기표현일 뿐, 반쪽짜리 의사소통에 불과하다. 펜실베이니아대학의 데이비드 번즈 교수는 인간관계에서 가장 경예해야 할 것은 자신의 감정과 주장을 우선시하는 태도라고 경고한다.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자신을 존중할 때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과정이 선행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상대를 이해하려는 동기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려라

 

착각이 언제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저 사람을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은 그를 신뢰하고 그에세 협조하며 그와 가까워질 준비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뭔가 의사소통에서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면, 잠시 자신의 인간관계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보다는 나의 착각을 먼저 거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또한 관계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면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의견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상대의 의견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상대는 자신의 견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특히 조직과 조직, 집단과 집단의 의견이 갈등을 일으킬 때 이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부터 버리자. 그것이 삐걱거리는 인간관계를 개선하는 첫걸음이며,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이상, 관계의 착각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려라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