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탐지기..인간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을까?
로마의 코스메딘 산타 마리아 성당 입구 한옆에는 좀 괴기스럽게 보이는 둥그런 석판이 걸려 있습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그 입속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는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입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나와서 더 유명세를 탄 진실의 입은 중세시대에 사람들을 심문할 때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서약하게 한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 역할을 한 셈인데, 아마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여느사람들도 그 입속으로 손을 넣을 때는 왠지 좀 쫄아드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 죄지은 것 없어도 불심검문을 당하거나 뭔가 의심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괜히 불안해지는 게 보통사람들의 심리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 탐지기..인간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을까?
최근 발생한 농약사이다 음독사건에서 용의선상에 오른 할머니가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면서도 경찰이 요구한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는 응하지 않아서 의심을 사고 있는 듯합니다. 사건의 내막이며 범인이 누구인지는 더 조사를 하면 확실히 밝혀지겠지만, 단순히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범행을 확실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합니다. 거짓말 탐지기를 무조건 신뢰하다가는 자칫 결백한 사람을 유죄로 몰고 가거나, 반대로 죄를 지은 사람을 풀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 즐거운 발견]의 저자인 애드리언 펀햄 심리학 교수도 거짓말 탐지기가 선용될 수도 있지만 오용될 수도 있음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거짓말 탐지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거짓말에 관한 다른 내용을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방법
고대 힌두인들과 중세교회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썼던 방법에서 유사 거짓말 탐지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피의자에게 다양한 물질을 씹은 다음 뱉어내게 했는데, 침을 얼마나 쉽게 뱉는지, 타액의 점도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유죄 여부를 판단했다. 당시 사람들은 두려움이 타액의 분비를 줄이고 점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현상을 불안감이 타액을 통제하는 자율신경계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고 표현한다. 19세기의 많은 과학자들은 두려움에 동반되는 신체적인 부수현상을 측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피의자를 조사하는 동안 사지의 맥박과 혈압, 손가락의 떨림, 반응시간, 어휘연상 등을 기록하는 맥파계(脈波計)를 비롯한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했다.
■ 거짓말 탐지기의 역사
거짓말 탐지기(lie detector)는 1921년 미국 경찰관이자 법의학자인 존 라슨이 개발했다. 검사를 받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그래프에 변화가 생기는데, 이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정서적 반응으로 인해 나타난다. 그러나 결과가 항상 백 퍼센트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와 심리학자들은 거짓말 탐지기를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고, 많은 비난이 뒤따랐다. 그리고 1988년 거짓말 탐지기 보호법이 제정됨에 따라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절반 가까이 되는 주에서 여전히 거짓말 탐지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캐나다, 태국, 이스라엘에서 대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제한적으로나마 사용되고 있다.
■ 거짓말 탐지기의 작동원리
가슴, 배, 손가락 등 신체의 여러 부위에 감지기를 부착하고 자율신경계의 활동을 측정한다. 호흡(호흡의 깊이와 빈도), 심장의 활동(혈압)과 발한의 변화를 측정하며, 두뇌의 전기활동도 측정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지표들은 대개 감정에 따라 유도되는 생리적 변화만을 보여줄 뿐이다. 기계는 몸의 특정 부위에 부착된 감지기에서 포착된 신호를 증폭시킨다. 즉 기계는 거짓말을 탐지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분노, 죄책감 등 특정한 감정의 결과로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만을 감지할 뿐이며, 이 중 어떤 감정이 변화를 일으키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관련된 질문만 받는 게 아니라 통제질문(피검사자의 심리상태를 통제할 목적으로 제시하는 질문)도 받는다. 여기에는 결백한 사람이라면 관련된 질문과 통제질문에 응답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편 약을 복용해서 자율신경계 활동을 억압하고 생리적인 기록을 교란시킬 수도 있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아서 검사를 무력화시키는 여러 테크닉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검사는 신뢰성이 매우 낮을 뿐 아니라 결백한 사람을 유죄로 몰고 가거나 죄가 있는 사람을 풀어주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범죄심문, 보안검색, 인사채용 상황 등에서 거짓말 탐지기가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낮아서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또 검사가 나쁜 인상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탐지기를 사용하거나 혹은 사용하겠다고 협박함으로써 기계가 없었다면 인정하지 않았을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효과만으로도 거짓말 탐지기 검사가 유용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 거짓말 탐지기를 신뢰할 수 있을까?
거짓말 탐지기가 타당한 검사로 수용될 수 있으려면 먼저 표준화된 시행방법을 확립해서 철저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반복해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명백한 방법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객관적인 점수를 얻을 수 있어야 하며 외부적으로 타당한 기준이 필요하다. 즉 진실과 거짓의 차이를 언제나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다음 4가지 조건을 고려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1 정확성과 유용성의 차이 - 어떻게 거짓말 탐지기가 정확하지 않은데도 편리하게 이용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2 기본적인 진실에 대한 탐구 -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절대적인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거짓말 탐지기의 정확성을 판단하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고려해야 한다.
3 거짓말의 기저율 - 피의자 집단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정확하게 치러진 검사가 여러 차례 오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4 거짓말을 억제할 수 있는 힘 - 어떤 사람들은 검사를 받는다는 상황 자체에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그 절차가 부적절하거나 부당하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억제받는다.
실험을 통해 확인해 본 결과 거짓말을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한 사람으로 잘못 분류되는 일이 놀라울 만큼 높은 비율로 나타났으며, 그 반대현상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이 이러하기 때문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나며, 오판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오판으로 인해 어떤 결과들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판의 비율은 2~10퍼센트에 이른다. 불안해하는 진실한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가 되고, 반대로 정신병적인 거짓말쟁이가 진실한 사람으로 판단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와 지식인 사회는 거짓말 탐지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그 기계의 사용에 대해 논의하게 되었다.
■ 인간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을까?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인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자해로 인한 고통(근육을 경직시키거나 혀를 깨물거나 신발에 핀을 까는 방법 등)이 신체적인 방법이다. 기계를 교란시켜 진짜 같고 극적인 판독을 얻어내기 위해 사람들은 이런 신체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정신적인 방법으로는 숫자를 거꾸로 세거나 에로틱한 생각이나 공상을 하는 것 등이 있다.
■ 감정적이고 언어적인 단서로 거짓말의 여부 포착하기
- 말을 하다가 멈추는 빈도와 길이가 늘어난다. 또는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했는지 자신없어하는 태도를 자주 보인다.
- 거리를 두는 언어를 쓴다. 즉 자신이 연관된 사건을 기억할 때조차도 “나, 그, 그녀”라고 말하지 않고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한다.
- 주저하거나 프로이트의 말실수(은연중에 속내를 드러내는 것)가 잦아진다. “음, 저..” 등의 군소리를 지나치게 많이사용한다. 말하는 속도가 갑자기 바뀌기도 한다.
- 어조가 느리면서도 고르지 않다. 말하는 동안 생각을 하려고 애쓰지만 티가 난다. 특정한 질문과 연관해서 말의 속도가 바뀌는 것은 무엇인가가 옳지 않다는 단서를 준다.
- 침묵을 깨뜨리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한다. 즉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계속 말을 하며 짧은 침묵에도 몹시 불편해한다.
- 어조가 너무 자주 고양된다. 응답이 끝날 때 억양이 내려가는 대신 질문을 할 때처럼 끝이 올라간다. 마치 “지금 나를 믿습니까?”라고 묻는 소리처럼 들린다.
- 음성의 울림이 없어진다. 목소리가 밋밋하고 깊이가 없으며 단조로워진다.
■ 비언어적인 단서로 거짓말 여부 포착하기
-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보상을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눈을 너무 자주 맞춘다.
- 놀라움, 분노, 상처 등의 미세하고 희미한 표정이 스쳐 가는데, 이러한 변화는 그 순간에 포착하지 못하면 알아보기 어렵다.
- 자신의 얼굴이나 가슴을 만지는 등 안심시키려는 몸짓을 많이 한다.
- 미소를 짓거나 눈을 깜박이거나 한 곳을 응시하는 등 표정에 변화가 온다.
이상, 거짓말 탐지기..인간은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을까?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