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된 무기력..가해자에게 대응하는 법 4가지
오래 전 개구리를 찍소리도 못하게 죽이는 법이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 개구리를 냄비에 넣고 대번에 불을 지피는 게 아니라 서서히 온도를 높여가면 물이 점점 뜨거워져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개구리가 뛰쳐나올 생각도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이었지요. 덩치가 산만한 코끼리도 늘 쇠사슬을 채워서 묶어두면 나중에 그 사슬을 풀어줘도 도망갈 생각을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묶여 있는다고 합니다. 또 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려견으로 주인에게 듬뿍 사랑을 받고 사는 개들도 많지만, 개중에는 악랄한 주인을 만나면 번번이 죽도록 맞을 것을 알면서도 벌벌 떨면서 주인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합니다.
동물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극한상황에 내몰려 공포에 짓눌리면 동물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태도를 보이게 되니까요.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학대받는 아이들이나 아내들(요즘은 매맞는 남편도 많다고 합니다)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도, 또 이따금 터지곤 하는 현대판 노예사건도 다 같은 맥락입니다. 요즘 각 분야에서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갑질의 횡포도 그 이면에는 무기력해진 을들의 무대응이 멍석을 깔아준 탓도 있을 것입니다.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 교수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여느사람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이 학습된 무기력과 위해를 가하는 가해자에게 대응하는 법 4가지를 알아본 것입니다.
학습된 무기력..가해자에게 대응하는 법 4가지
매일 아버지나 남편에게 맞는 아이들이나 아내들은 손찌검을 당하지 않는 날이면 오히려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언제 어느 때 주먹이 날아올지 몰라 신경이 곤두서 있기 때문입니다. "때린 놈은 다리 뻗고 못 자도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잔다"는 속담은 틀렸습니다. 때린 놈은 다리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 뻗고 못 자니까요. 평범한 삶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로서는 왜 피해자들이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지, 왜 가해자에게 반항 한 번 못해 보고 고스란히 당하고만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하지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 네 번..열 번이 되면 나중엔 자존감이 무너지고 학습된 무기력에 의해 그 이해불가한 상황을 옴쭉달싹 못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게 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요즘 인분교수라는 향기롭지 못한 별칭으로 불리는 강남대 J교수의 엽기적인 행각 뒤에도 이 학습된 무기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어느 교수님이 "범죄역사에 길이 남을 가공할 엽기"라고 말했듯이, 아무리 납득을 해보려고 해도 하나같이 싸이코패스의 광기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계속 쏟아져 나옵니다. 게다가 그 주변에서 엽기교수의 빽을 딛고 가학행위에 가담한 인간들은 또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완장을 찬 자들의 꼴값은 변할 줄을 모르나 봅니다. 다행히 피해자의 피폐해진 몰골을 이상하게 여긴 한 동료가 그 내막을 알게 되어 피해자에게 녹음을 하고 카톡을 캡처해서 기록으로 남기라고 조언해 준 덕분에 이 전무후무한 엽기행각의 전모가 밝혀졌으니, 피해자에게는 그분이 평생의 은인이나 다를 바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접하면서도 피해자가 왜 그토록 오랜 세월 그런 끔찍하고 참담한 학대를 고스란히 받고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셀리그만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은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 개 24마리를 대상으로 한 학습된 무기력 실험
셀리그만은 개 24마리를 세 집단으로 나누어 저마다 환경이 다른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가합니다. 먼저 첫번째 집단의 개들은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스스로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습니다. 개 앞에 매달아둔 나무토막을 밀면 전기가 차단되도록 해놓은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전기충격을 주면 개는 코앞의 조작기를 눌러 전기충격을 피하는 방법을 학습하게 됩니다. 두번째 집단은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서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전기충격 시간은 첫번째 집단의 개와 똑같이 했습니다. 즉 첫번째 집단의 개가 코로 조작기를 눌러 전기충격을 멈추는 순간 두번째 집단의 개도 전기충격을 중단했습니다. 즉 첫번째 집단과 두번째 집단은 동일한 전기충격을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집단은 전기충격을 주지 않고 얼마간 상자에 넣어두었다가 그냥 풀어줍니다. 즉 이 집단은 전기충격에 대한 선행학습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개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한 후 셀리그만 박사팀은 24시간 후 이 세 집단을 다른 상자에 옮겨놓은 후 전기충격을 줍니다. 그 상자에는 한가운데에 담이 가로놓여 있습니다. 그 담은 쉽사리 넘을 수는 없지만 노력만 하면 넘을 수 있는 정도의 담이었다. 그런데 전기충격을 받은 개들은 놀라운 행동을 보였습다. 스스로 조작기를 눌러 전기충격을 피하는 학습을 경험한 첫번째 집단과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은 세번째 집단의 개들은 전기충격을 주자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한가운데에 가로놓인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피했지만, 두번째 집단은 전기충격이 주어졌음에도 피하려 하지 않고 그냥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니다. 처음 30여초 동안은 다른 집단의 개들처럼 이리저리 날뛰었지만 곧 움직임을 멈추고 조용히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셀리그만은 이것은 두번째 집단이 24시간 전의 경험, 즉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이 학습된 결과라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프리미엄조선)
■ 원숭이 4마리를 대상으로 한 학습된 무기력 실험
경영계의 석학 게리 하멜(Gary Hamel)과 프라할라드(C.K. Prahalad)가 소개한 학습된 무기력 현상도 있습니다. 원숭이 4마리를 한방에 넣고
긴 장대의 꼭대기에 바나나를 매달아둡니다. 배가 고파진 원숭이 한 마리가 그것을 먹으려고 장대를 타고 올라가자 샤워기에서 찬물이 뿌려 지고, 물세례를 받은 원숭이는 깜짝 놀라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다른 원숭이들도 바나나를 먹으려고 시도해 보지만 장대를 오를 때마다번번이 찬물이 쏱아지자 더 이상 바나나를 따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 한 마리를 새로운 원숭이로 교체합니다. 그런데 새로 온 원숭이가 바나나를 보고 장대 위로 올라가려고 하자 먼저 있던 원숭이들이 몰려가 소리를 지릅니다. 그 소리에 위축된 새 원숭이는 결국 바나나 따기를 포기하게 되고, 그 후 차례로 새로운 원숭이로 한 마리씩 교체되면서 포기하는 현상은 반복됩니다. 그 후 모든 원숭이들이 교체되고 샤워기도 없앴지만 어떤 원숭이도 감히 장대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어느새 장대 위에 매달린 바나나는 어떤 원숭이도 따먹지 못하는 금단의 열매가 된 것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학습된 무기력을 실험한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혐오자극으로는 소음(noise)을 택했습니다. 대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눠 A집단(도피가능 집단)은 조작기를 누르면 소음이 꺼지는 방에 들어가게 했고, B집단은 동일한 소음을 듣도록 되어 있지만 어떤 반응으로도 소음을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두었습니다. C집단은 전혀 소음을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든 피험자들에게 반응을 유도한 결과 A와 C집단은 소음을 회피하는 행동을 했지만 B집단은 대부분 수동적으로 앉아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소음을 꾹 참고 있었다고 합니다.
■ 자기효능감을 높여야 한다
기업 카운슬러 사사키 켄지는 이러한 <학습된 무기력> 상태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는 ‘부정적 자기암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불가항력적인 혐오환경을 경험한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암시를 잠재의식 속에 입력하게 되고, 그러면 이 잠재의식의 작용으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포자기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져 있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자동으로 작동하는 기계처럼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는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는 자기효능감은 자신의 성공경험, 타인의 성공을 보거나 들은 것, 타인으로부터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것, 자신의 신체적/ 감정적 반응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등 4가지 요인에 의해 강화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첫번째인 자신의 성공경험입니다. 스스로 행동에 옮겨서 뭔가 성과를 얻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되고 다음 목표에 도전하고자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거기서 또 잘되면 자기효능감은 더욱 더 올라갑니다. 이 호순환(好循環)을 반복하면서 자기효능감이 높아지고 불안감이 생겨도 행동으로써 확실하게 길을 헤쳐나갈 수 있게 됩니다.
사사키 켄지는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즐기는 가해자 앞에서 더 이상 전전긍긍하지 않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도 들려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정상인의 가면을 쓴 채 끊임없이 나약해 보이는 사람들만 골라 위해를 가하고 있을 그런 정신이상자의 횡포에 단호하게 "No!"를 외칠 수 있는 슈퍼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가해자에게 대응하는 법 4가지
1 의연한 태도를 취한다
고압적인 태도로 공격해 오는 가해자에게는 압도당해서 흠칫흠칫 놀라거나 쭈뼛거리거나 나약한 태도를 취하면 더욱 더 말려들게 된다. ‘이 녀석은 다루기 쉬운 녀석인데’ 라고 판단하고 점점 제멋대로 구는 것이다. 이런 상대에게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 ‘좀더 밀어붙이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맞서야 한다. 성희롱이나 괴롭힘 또한 심하게 굴어도 괜찮을 것 같은 만만한 사람이나 말없이 참는 사람이 표적이 된다. 따라서 가능한 한 ‘그만둬주세요’라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쉽지는 않은 일이겠지만, 의외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것이 그런 가해자들의 속성임을 알고 의연하게 맞서자.
의연한 태도로 대응해도 좀처럼 물러나지 않는 상대나 보복이 두려운 가해자에게는 그게 당한 일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떤 모욕적인 말을 듣고 어떤 가혹행위를 당했는지 되도록 정확하게 메모해 두는 것이다. 이렇게 해두면 누군가에게 중재를 요청할 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동료와의 갈등으로 인해 상사에게 중재를 요청할 경우 상사로서는 "○○가 항상 심한 말을 해요"라는 호소만으로는 대처하기가 곤란하다. ‘항상’ 이란 어느 정도의 빈도이지, ‘심한 말’ 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 구체적이 기록이 있으면 상사도 행동에 옮기기가 쉽다. 상사로부터 성희롱이나 괴롭힘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 더 높은 위치의 사람에게 구제를 요청하게 될 때도 구체적인 기록이 있으면 지원을 받기가 쉽다.
상대방을 움직이게 할 때는 애매한 표현을 피하고 이야기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은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상사로부터 "자네는 항상 일을 어중간하게 해" 라는 말을 들었다면 "저의 어떤 점이 어중간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고치고 싶어서 그러니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겠어요?"라고 차분하게 의연한 태도로 물어보자. 상사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어쩌면 상사는 그저 당신에 대한 인상만으로 주의를 주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경우 명확화의 질문을 받으면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가 없으니 "아니, 뭐, 어쨌든 주의해"와 같은 분명치 않은 대답이 돌아오거나 한다. 이것은 상사 스스로 자신의 지적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반응이므로 그 문제로 더 이상 시달일 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명확하게 질문을 하는 태도를 항상 가지고 있으면 가해자는 더 이상 애매한 지적질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자신의 느낌이나 의사를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습관을 들인다. 예를 들어 입사동기인 친구가 곧잘 "친구니까 당연히 도와줄 거지?"라며 당신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자꾸 부탁을 해오는 경우에는 "매번 그런 식으로 부탁하는군?"라며 슬쩍 말해 본다. 그리고 일도 잘 못하면서 지시를 하면 늘 말대꾸를 하거나 제멋대로 행동하는 부하직원에게는 "내가 일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면 자네는 항상 다른 의견을 말하는군. 그리고 내가 지시한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말이야. 자네도 그렇게 알고 있나?"와 같은 말을 던진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말을 들어도 태도가 바뀌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하면 조금은 개선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 학습된 무기력..가해자에게 대응하는 법 4가지였습니다. 도움이 되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