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처럼 소통하라..사랑의 힘 7가지
이미지 출처 이순신닷컴
자신의 출세와 영광보다는 백성들을 위한 삶을 살았던 이순신 장군은 탁월한 소통의 달인이자 경영자이기도 했습니다. 이순신은 쉬는 시간을 대부분 부하들과 함께 바둑을 두거나 장기를 두면서 교류하고 소통하는 시간으로 보냈습니다. 이렇듯 이순신은 휴식까지도 부하들의 충성심을 만드는 기회로 활용했지만, 이것도 다 그의 가슴속에 그득한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골든에이지 박종평 대표의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에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이순신이 어떻게 방황과 시련을 겪으면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꾸었는지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저자는 이순신처럼 이겨내라, 이순신처럼 소통하라, 이순신처럼 경영하라 등 크게 세 파트로 나누어 이순신의 삶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 중 <이순처럼 소통하라..사랑의 힘 7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순신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이순신처럼 소통하라..사랑의 힘 7가지
1 백성을 먼저 살렸다
이순신은 전투는 군인이 하지만 전쟁은 백성이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때문에 자신의 군사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 백성이 없는 장수는 군사를 얻을 수 없다. 백성이 군사이고 군사가 백성이기 때문에 백성의 안전과 백성의 삶을 먼저 고려한 것이다. 백성을 괴롭히는 군사와 관리, 백성을 괴롭히는 백성, 적에게 항복하거나 적을 이롭게 한 백성들에 대해서는 한치의 용서도 없었다. 백성들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배려는 이순신의 수군 주변에 수백수천 명의 백성들이 항상 따라다니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순신은 백성들이 정착하고 먹고 살 수 있도록 안전한 곳을 찾아 살게 했다. 조정에서 임명한 둔전의 감독관이 목동들을 학대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른 사람믈 임명해 주도록 청원하기도 했다. 이순신의 백성보호 정책과 인품은 적에게 투항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돌아오게 하는 효과도 가져왔다. 심지어 백의종군에서조차 백성들을 먼저 배려하는 이순신의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이순신은 백성이 나라라는 믿음을 실천했고, 백성들은 쌀과 목숨으로 보답했으며, 이순신은 그 백성들과 함께 전쟁을 했고 승리했다.
2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깨웠다
백성을 먼저 돕고 백성에게 믿음을 얻은 이순신은 백성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군량을 충당하기도 했다. 특히 양반들이 중심이 되어 군량을 후원하는 책임자들을 계원유사(繼援有司)라고 하는데, 유기룡, 하응문 등이 대표적인 군량 후원 책임자였다. 이들은 식량이 부족하자 이순신에게 식량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때 이순신은 쌀 5섬을 지원했다.
그 후 그들은 그 보답으로 지속적으로 이순신에게 군량을 후원했다. 이순신이 백성들의 구휼을 위해 군량과 별도로 비축한 식량으로 그들을 도운 결과가 그들의 노를레스오블리주를 깨운 것이다. 양반들의 양심과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이러한 자발적 후원은 백성들과의 갈등을 없애고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3 부하의 잠재력을 깨우고 같이 성장했다
이순신의 힘은 이순신이 홀로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로부터 조언을 얻고 다양한 인물들로 하여금 스스로 일을 만들고 성공시키도록 했다는 데 있다. 위로는 류성룡으로부터 아래로는 노비, 투항한 왜군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을 돕거나 하나가 된 사람들이 많다. 인재를 보는 안목과 소통능력이 이순신을 탁월한 장수이며 경영자로 만든 것이다.
이순신에게 인재가 모여들 수 있었던 것은 첫번째로 개방성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신분과 직위를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했다. 둘째는 책임과 의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문책이다. 책임을 다한 사람에게는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장계에 쓸 정도였다. 또한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처벌했다. 노비에서부터 장수, 피난민에서 포로로 풀려난 백성들, 투항한 왜군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은 그들의 생명을 존중했고, 그들의 먹을거리과 입을 것, 잘 곳 등을 언제나 챙겼으며,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까지도 기억했다. 그런 사랑과 관심이 최고의 군대, 신뢰받는 군대를 만들었고, 인재들이 모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4 칭찬과 보상으로 승리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순신은 처벌보다 보상을 더 많이 했다. 이순신 연구가에 따르면 장계 등을 통해 조정에서 직위를 주거나 승진시키는 등의 제도적인 보상은 18회, 소속 장병에 대해 회식을 하거나 상품을 주거나 노획물을 나누어주는 개인적인 보상은 123회였다.
나폴레옹이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이유는 병사들과 함께 목숨을 걸었던 전투를 일일이 기억하면서 자주 대화를 나누었고, 혁혁한 공을 세웠을 때에는 전장에서 곧바로 진급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장계와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이순신도 부하들을 칭찬하고 적극적으로 포상했으며, 장계에도 지휘관들의 공로를 자세히 기록했다. 개인적 보상으로는 음식과 술대접, 쌀이나 옷감을 나눠주었으며, 부대 전체 회식도 자주 했다. 칭찬의 명수인 이순신은 명확한 기준으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포상을 했고 누락자는 끝까지 책임을 다해 포상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칭찬과 보상의 힘이 승리의 역사를 만든 것이다.
5 예외없고 단호한 처벌로 패배를 물리쳤다
리더는 칭찬과 보상을 해야 하는 것만큼 질책과 처벌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순신도 단호한 처벌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순신의 처벌은 처벌만능주의나 처벌남용주의는 아니다. 그의 처벌 목적은 일벌백계를 위한 고육책이 많았다. 심각한 명령불복종, 위기시의 탈영이나 탈영 방조자, 민심교란자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단호하게 처벌했으며, 처형은 물론 효시까지 했다. 이순신의 처벌을 살펴보면 그는 법규 준수와 약속을 가장 중요시한 것을 알 수 있다. 법 위반과 약속 위반에 대해서는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경우까지도 처벌해 재발치 않도록 경고했다. 그런 이순신의 원칙주의가 철저한 규율을 유지하고 책임을 다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6 멘토에게 배우고 멘토가 되었다
이순신은 역사책과 손자병법, 오자병법 등을 통해 위인들의 삶과 위대한 전술가들을 멘토로 삼았다. 또 어머니와 류성룡 등의 멘토가 있었다. 그러나 월터 스콧이 말했듯이 가장 좋은 교육은 자신에게 하는 교육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동적으로 배우려는 자세다. 이순신은 자신이 공부한 책과 보고 들은 것들을 언제나 능동적으로 흡수했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순신이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이었고, 자신과 비슷하게 고결한 인격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수시로 교류했다. 그들과의 교류로 그는 책을 읽는 장수, 시를 짓는 장수, 경영자 이순신, 행정가 이순신이 된 것이다. 또한 그 스스로 부하들의 멘토가 되었다.
7 자식도 원칙을 세워 가르쳤다
이항복이 쓴 <충민사기(忠愍祠記)>에는 이순신의 자식교육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순신은 자식들에게 “만일 누가 묻는 이가 있거든 너희들은 그의 공로를 말할 일이요 단점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한산도 진중에서 군졸이 형벌을 받게 되었을 때 자식들이 그 군졸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자 “남들이야 뭐라 해도 내 자식인 너희들은 마땅히 그들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순신의 자식교육은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을 삼가고 장점을 말해야 한다는 이순신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나타낸다. 형벌에 대한 자식교육도 이순신의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간애를 교육시키고, 원칙을 가지고 설득하고 타일러야 하며 때로는 엄하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이순신의 자녀교육법이었다.
이상, 이순신처럼 소통하라..사랑의 힘 7가지였습니다. 흥미로우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