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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

 

설렁탕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

 

설렁탕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에 관한 포스팅입니다. 설렁탕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고1여름방학 때 남해로 가는 배가 뜨는 여수 선착장 근처에서 먹었던 설렁탕입니다. 배가 잔뜩 고파 들어간 식당의 주메뉴가 설렁탕과 곰탕뿐이어서 설렁탕을 주문했었는데, 도무지 맛이 없어서 반도 못 먹고 말았었지요. 그 후 맛있기로 소문난 종각역 근처의 이문설농탕집에 일부러 가본 적이 있는데, 이곳도 크게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아직 설렁탕의 맛 자체를 몰랐던 탓도 큰 것 같습니다.  

 

설렁탕이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연희동 맛집거리에 있던 연희설렁탕집 덕분입니다. 식당 입구 옆에 있는 대형 가마솥에서 13시간 넘게 끓여낸 국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던데, 그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잡내 하나 없이 구수한 그 집 도가니탕도 정말 대단했구요. 며칠 전 EBS [역사채널e]에서는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에 대해 방영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 그리고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설렁탕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

 

1929년 12월 인기 대중잡지에 기고된 신세대 신혼부부의 일상을 보면, 청춘 부부가 만나 돈깨나 있을 적엔 양식집이나 드나들겠지만 어찌 돈이 무제한이겠습니까. 돈은 없고 아침에 늦잠까지 자니 찬물에 손 넣기가 싫어 손쉽게 이것을 주문한답니다. 먹고 나서 화장을 하면 오후 3시나 되고 구경터나 공원 같은 데 놀러다니다가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게 되니 밥을 지어먹을 새가 없어 또 이것을 시켜먹는답니다. 이것이란 바로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을 말합니다. 그러면 설렁탕의 유래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설렁탕의 유래 

 

1  조선시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에서 끓여먹은 고깃국

 

 

<조선요리학>(1940)에 따르면, 설렁탕은 조선시대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선농제'에서 끓여먹은 고깃국이라고 합니다. 조선의 왕들은 해마다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낸 후 직접 소를 몰았고 그 뒤를 신하들이 따르며 백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선농단의 행사는 중국의 신화에서 처음으로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었다고 전해지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后稷)에게 올리는 제사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나랏님과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던 백성들은 제물로 쓰인 쇠고기를 문무백관과 함께 나누어 먹는 행운까지 누렸습니다.

 

이때 보다 많은 백성들에게 쇠고기를 먹게 하려고 고기를 넣은 솥에 물을 가득히 붓고 국을 끓였는데, 이것을 선농단에서 끓인 국이라고 하여 '선농탕'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맛과 경험이 백성들 사이에서 구전되다가 '설롱탕'으로 바뀌고 다시 지금의 '설렁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농민들은 부족한 살코기 대신 소머리, 도가니우족 등을 삶고 쌀을 넣어 끓여 먹기도 했는데, 저렴한 가격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는 설렁탕은 점차 대중음식으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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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몽골어 사전 몽어유해에 등장하는 원나라 유목민의 고깃국 ‘슐루’가 고려에 전래

 

 

<한국식품문화사>에 실린 두번째 설은 몽골어사전 <몽어유해>(蒙語類解)에 등장하는 원나라 유목민의 고깃국 '슐루'(소로 국 끓이는 요리)가 고려에 전래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고려 말 몽골의 영향을 받고 조선의 새로운 전통도 인정되면서 '슐루탕'이 '설렁탕'으로 바뀌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설렁탕의 변천사

 

이렇듯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을 들썩이게 한 설렁탕은 1900년대 초 조선총독부 주도로 시작된 식용 쇠고기 생산정책으로 더욱 인기있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전쟁물자 보급을 위해 육우를 대량생산한 덕분에 경성 내 정육점이 크게 늘었고, 이들 정육점에서는 쇠고기를 팔고 남은 소뼈와 그 부산물을 이용한 새로운 음식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투명한 국이 아닌 기름기가 가득한 탁한 빛깔 예로부터 늘 사용하던 간장 대신 소금으로 간을 하는 낯선 요리법을 사용한 설렁탕은 중국 요릿집에서나 할 법한 파와 고춧가루를 뿌리고 여기에 다 식은 밥을 말아먹는 낯설고 이상한 음식이었습니다. 게다가 ‘백정’이라고 멸시받던 도축업자의 가게에서 천민 취급을 받던 옹기장이가 만든 ‘싸구려 뚝배기’에 담긴 설렁탕은 품위없는 값싼 고깃국으로 불리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별건곤(別乾坤)-경성명물집>에는 "집에 갈 노잣돈이나 자기 마누라 치마 사줄 돈이라도 설넝탕을 먹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이다"라고 씌어 있을 만큼 한번 맛보면 빠질 수밖에 없는 설렁탕은 매력적인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신보에는 "한 그릇 13전,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저렴한 가격과 걸상에 걸터앉으면 1분이 다 못되어 뚝배기 하나와 깍두기 접시가 하나 앞에 놓인다. 별도의 조리시간 없이 솥에서 담아내면 되는 간편한 한 끼 설렁탕은 역시 조선 음식계의 패왕이다"라는 기사가 실릴 만큼 설렁탕은 인기있는 서민 음식이었습니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성의 설렁탕집은 100여 개를 넘었고 그 동안 체면 때문에 설렁탕집에 드나들길 꺼렸던 양반이나 모던보이, 모던걸들이 설렁탕을 주문해서 먹기 시작하며 거리마다 ‘설넝탕 배달부’가 넘쳐났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 일본인인 우스다 잔운의 <조선만화>에는 쇠머리 스프는 정말 좋은 것으로 닭고기 스프나 우유가 그에 미칠 바가 아니다"라고 씌어 있을 만큼 조선 내 일본인들까지 설렁탕을 즐기면서 설렁탕은 조선의 최고 인기음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여기에 한국전쟁 이후부터 미국으로부터 원조받은 밀가루 국수가 더해지면서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은 오늘날과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

 

쇠고기 부위 중 양지머리, 사태 등을 진하게 고아서 끓인 곰탕(- 湯) 

 

그러면 설렁탕과 곰탕은 어떻게 다를까요? 그 가장 큰 차이는 탕에 들어가는 내용물에 있습니다. 설렁탕에는 선농단 제사가 유래라는 설에 따라 뼈부터 소머리와 양지머리, 그 외 소의 모든 부위가 들어가며 국물 빛깔은 뽀얗습니다. 반면에 곰탕은 내장과 고기로 국물을 내는데, 국물이 맑은 것도 있고 뽀얀 것도 있습니다. 즉 설렁탕은 뼈를 고아낸 국물이고 곰탕은 고기를 고아낸 국물입니다.

 

또 한 가지 차이는 꾸미에 있는데, 설렁탕은 삶은 양지머리 편육 몇 조각이 들어가지만 곰탕은 양지머리는 물론 사태, 차돌박이 같은 고기 부위와 곱창, 양 같은 내장이 들어갑니다. 특히 곰탕에 들어가는 고기는 설렁탕처럼 얇게 썰지 않고 큼직하게 썰어 푸짐한 느낌을 줍니다.

 

이상 설렁탕 경성 패스트푸드 설렁탕의 유래와 변천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