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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왕의 얼굴 조선판 타짜로 등장한 광해 서인국과 투전

 

왕의 얼굴 조선판 타짜로 등장한 광해 서인국과 투전

 

왕의 얼굴 조선판 타짜로 나타난 광해 서인국과 투전 

 

왕의 얼굴에서 광해 서인국은 장차 세자빈이 될 정화(세자빈 유씨. 김희정)로부터 자신을 모략한 인빈김씨(김규리)의 오라비 김공량(이병준)의 갖가지 비리를 전해듣고 억울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조선판 타짜로 등장하여 승부수를 띄웁니다. 조선시대에 벼슬자리를 은밀히 매매하는 곳으로 부패한 관리를 만들어내는 악의 온상 투전판에서 광해는 궁궐로 복귀함과 동시에 부패한 세상을 바꾸기 위한 한판승부를 벌인 것입니다.

 

오늘 포스팅은 김공량과 투전을 벌이는 광해군과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다"는 말까지 들을 만큼 조선시대에 성행했던 투전에 대해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인 강명관님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입니다. 왕의 얼굴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다음 포스팅을 참조하시면 됩니다.

 

 

왕의 얼굴 조선판 타짜로 등장한 광해 서인국과 투전을 벌이게 되는 김공량 

 

광해군은 김공량을 치기 위해 비밀장부를 손에 넣은 후 김공량에게 서찰을 보낸다. 서찰에는 "내게 그간 별좌께서 매관매직한 기록과 중신들의 비리, 백성들의 억울한 기록이 모두 적혀 있는 장부가 있으니 별좌에게 금보와 이 장부를 걸고 투전을 벌이자"고 적혀 있다. 그리하여 이기는 쪽이 두 가지 모두를 갖자는 것이다.

 

 

구린 구석이 워낙 많은 김공량은 두려움에 떨며 그 장부의 주인인 객주의 거물급 장사치 장수태(고인범)를 찾아가 대체 그놈이 누구냐며 노발대발한다. 하지만 장수태도 누구인지 모르는지라 "어떻게든 투전에서 이겨 그 장부를 찾아야 한다"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리고 김공량이 "그렇다면 그놈이 원하는 대로 이 김공량이가 투전판에 서야 한다는 거냐"고 소리치자 그는 투전에 나서면 반드시 장부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뒤에서 손을 쓰겠다, 만일 그게 안 되면 그놈의 목을 베어서라도 찾아오겠다고 김공량을 어르고 달랜다.

 

 

결국 투전이 벌어지는 날 장수태는 주변 여기저기에 검객들을 배치해 놓고 지시가 떨어지면 신속하게 그놈을 잡아서 죽이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투전판에 등장한 것은 광해군과 임해군(박주형)이다. 두 사람을 본 김공량은 그 서찰을 보낸 사람이 광해군이었느냐며 난감해하고, 광해는 망연자실해하는 김공량에게 "김별좌 나리께서도 투전을 즐기신다기에 내 한 수 배우고자 청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장부라면 판돈으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장수태에게 빼앗은 김공량의 비밀장부를 판돈으로 내건다.

 

 

김공량은 하는 수 없이 광해가 원하는 대로 금보를 걸고 투전을 시작한다.

 

 

두 사람의 게임은 돌려대기다. 돌려대기란 손에 들어온 다섯 패 중 10, 20을 만들어 세 개를 버리고 남은 두 개로 가장 높은 숫자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돌려대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버린 패를 보고 상대가 가진 패를 유추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 광해는 김공량과 투전을 벌이러 오기 전에 미리 정화를 만나 여러 가지 투전기술을 전수받는다. 또 상대가 속임수를 쓰는 데 대한 대비책도 미리 꼼꼼하게 전해듣는다.

 

 

그때 투전기술을 다 알려준 정화는 광해에게 갑자기 투전을 배워 무엇에 쓰려는 것이냐고 묻는다. 광해가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백성들의 웃음을 앗아간 자들이 있어서 혼내주려고 한다"고 대답하자 정화는 "뜻이 좋으시니 운이 따르겠다"고 말한다. 장차 혹독한 세자시절을 보내는 광해 곁을 지켜줄 세자빈다운 모습이다. 

 

 

엎치고 뒤치는 게임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진 끝에 마침내 광해는 김공량과의 투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장부와 금보를 모두 챙긴다. 광해가 이 금보를 손에 넣으려고 한 것은 금보를 보관하고 인빈김씨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그 금보가 없어지면 인빈김씨가 난처한 입장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오라비 김공량이 광해군에게 금보를 뺏긴 것을 알게 된 인빈김씨는 그 금보가 없어진 것을 알면 선조가 노발대발하리라는 것을 알기에 별수없이 광해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금보를 돌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 그 말에 광해는 "내가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간에 벌어진 일들이 모두 신성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한 욕심으로  벌어진 것이니 선조에게 사실대로 말해서 아무 죄 없는 백성에게 씌운 역모라는 누명을 벗겨주면 된다고 대답한다.

 

 

인빈김씨는 어쩔 수 없이 광해가 시키는 대로 (거짓)눈물로 석고대죄를 하며 선조(이성재)에게 모든 사실을 밝힌다. 

 

 

그러나 선조는 폐서인이 되어서도 이 모든 사실을 밝힐 수 있는 힘을 가진 아들 광해에게 분노해 인빈김씨에게 당장 물러가 있으라고 소리칠 뿐이다. 역시나 선조의 쪼잔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투전

 

도박 중에서도 제왕의 지위를 점했던 투전은 조선 숙종 때부터 역관 장현이 수입해 왔고 중간계급을 중심으로 성행했는데, 수입된 지 백 년도 채 못 되어 양반층까지도 오염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과거 준비와 학문에 열중해야 할 양반가 자제들이 투전에 골몰하는 바람에 큰 문제로 떠올랐고, 심지어는 양반 명문가의 자손인 연암 박지원도 열하일기에서 투전판을 벌여 돈을 따고 득의연하는 장면이 나올 정도였으며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등 정승급들도 투전을 소일거리로 삼았다고 한다. 
 

투전 이미지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투전은 80장(혹은 60장짜리)의 종이쪽지로 구성되는데, 폭은 손가락 굵기만하고 길이는 15센티미터 정도다. 한 면에 사람, 물고기, 새, 노루, 별 등의 그림이나 글을 흘려 끗수를 표시한다. 같은 글자(그림)가 열 개씩 모여 80장을 이루는데, 이것을 팔목(八目)이라고 한다. 원래 120장인데 줄어서 80장(혹은 60장)이 되었다. 

놀이방식 중 돌려대기가 가장 흔히 이용됐는데, 돌려대기란 손에 들어온 다섯 패 중 10, 20을 만들어 세 개를 버리고 남은 두 개로 가장 높은 숫자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외에 널리 행해진 것은 동당치기, 가보치기 등인데, 동당치기는 투전 40장을 여섯 장씩 나눠 가지고 같은 자를 두 장 혹은 석 장씩 맞추는 것을 말하고, 가보치기는 40장을 가지고  두장 씩 혹은 석 장씩 아홉끗을 짓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화투로 하는 섯다나 도리짓고땡은 투전의 놀이방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따르며 조선 후기 가장 유행한 도박은 투전, 바둑, 장기, 쌍륙, 투전, 골패, 윷놀이 등이다. 이 중 골패와 투전은 도박성이 매우 강해서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이 중 더 강력한 것은 투전이었다. 투전은 영조때에 이르러서는 투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크게 성행했으며 군졸들도 밑천을 마련하느라 공금을 횡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문 노름꾼들은 생판 모르는 집의 초상에도 문상객으로 가장해 들어가 투전판을 벌이기도 했다.

 

김득신 투전도 간송미술관 소장

 

투전은 원래 투기성이 강한 노름은 아니었다고 한다. 수투전(數鬪牋)의 경우는 양반들이 소일거리로 즐기는 놀이였으며, 돈을 따려는 욕심보다 승부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점차 오락적 기능이 사라지고 도박성이 커져 갔으며, 그에 따라 집이며 토지, 재산을 팔아야 하는 큰 폐해가 생겨났으며 투전꾼들이 전문 도박단을 만들어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투전이 확산된 데에는 화폐의 통용과 발달이 큰 몫을 했다.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보면 으레 투전판에 동전묶음이 놓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숙종 4년(1678) 이후에는 각 도의 감영(監營)에 주전(鑄錢)을 허가하여 많은 양의 주화가 유통되었다. 이러한 화폐경제의 발달이 투기성을 높인 것이다. 또 상업이 활성화되고 장시가 발달한 것도 투전이 확산되는 데 한몫을 했다. 전문적인 도박판은 인구가 많은 한성부나 지방에서는 저자거리 등에 벌어졌다.

 

김홍도 투전도

 

도박의 성행과 함께 당시 도박장에서는 오늘날 전문 도박꾼들의 내기 도박판에서 일어날 법한 모든 행태가 벌어졌는데, 도박에 미치면 밤이고 낮이고 '본성을 잃어버리고 넋이 나간' 채로 봉두난발에다 눈이 시뻘개져서 귀신 꼴이 되기는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다. 도박장을 개설해서 돈을 뜯고 사는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고리로 이자를 놓거나 자릿세를 뜯는 자들이었다. 사기도박도 있었다.  

도박의 유행을 막기 위한 금령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도박장을 개설하는 자는 삼법사(三法司. 형조, 한성부, 사헌부)에서 중벌에 처하게 되어 있었지만, 실제 거리의 점포에서는 투전, 쌍륙 등의 도박도구가 일상용품으로 공공연히 팔리고 있었다.  

 

왕의 얼굴 조선판 타짜로 등장한 광해 서인국과 투전,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