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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로 보는 세상

미생 장그래가 완생하는 법

 

미생 장그래가 완생하는 법

 

미생 장그래가 완생하는 법 영업3팀 오상식 과장(이성민)은 우리는 너나할 것 없이 미생이며,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말한다

 

미생은 10여 년이라는 세월을 오로지 프로기사가 되기 위해 바둑에만 바쳤다가 입단에 실패하고 얼음짱처럼 차가운 세상에 내던져진 장그래(임시완)가 눈물겹게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안영이(강소라), 한석율(변요한), 장백기(강하늘)가 장그래와 함께 혹독한 인턴시기를 견디고 마침내 종합상사 원인터내셔널 신입사원으로 등극한 동료들이다.

 

층층시하 직급이 존재하는 숨막힐 듯한 대기업에서 근무해 본 적이 없는데다 내 업무가 비교적 다른 사람의 간섭 없이 이루어지는 터여서 미생이 그려내는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고 툭하면 뒤통수를 때리는 비인간적인 회사생활에 백 퍼센트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군대생활을 미루어 짐작해 보면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는 있다.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의 말과 생각을 통해 긍정적인 시각에서 장그래가 완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미생 장그래가 완생하는 법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말 많고 탈 많은 영업3팀 김동식 대리(김대명)의 표현처럼 막 출소한 장기복역수처럼 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면 어떤 굴욕도 기꺼이 견뎌보겠다는 각오가 서린 장그래의 바보스러울 만큼 평온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이 생각난다. 교활하기 그지 없는 악마의 술수조차 먹혀들지 않는 바보 이반의 성실함은 영리하고 똑똑한 형들의 꼼수도 무릎꿇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자타공인 똑똑한 사람들의 맹점은 묘하게 세상물정에 어둡거나 인간관계가 서툴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논리를 앞세우다 보면 유연성도 떨어진다. 더 결정적인 단점은 오만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나 깔보고, 자기 힘만으로 얼마든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교만함과 방자함까지 곁들여진다.

 

예전에 작은 회사를 운영하는 어느 사장님이 "직원은 똑똑하든가 성실하든가 둘 중 하나면 된다"고 말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물론 똑똑한데다 성실하기까지 하다면야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만일 그 중 하나만 택할 수밖에 없다면 당근 성실한 사람 쪽이 좋은데, 성실한 직원하고는 함께 일해 나가면서 점차 성장해 나갈 수 있지만, 똑똑한 직원과는 오래도록 함께 일을 도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장그래가 원인터내셔널에서도 보여주듯 성실함은 목적지까지 조금 멀리 돌아가야 할 때까 많지만, 멀리 돌아가는 만큼 자신의 발밑을 다지면서 삶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덕목인 것 같다.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고 한다. 인구론이란 본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영국 경제학자 맬더스의 이론이지만, 대학가에서는 <인문대 졸업생의 90퍼센트는 논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취업이지만, 인문대 출신은 더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조어다. 

 

게다가 어렵게 취업을 해도 힘겨운 것은 매한가지인 듯 <열정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열정이라는 낱말에 임금을 뜻하는 <PAY>가 붙은 이 말에는 열정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대신 박봉은 감수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쥐꼬리보다 적은 돈으로 인턴이나 계약직을 마음대로 부려먹는 기업을 꼬집은 말이다. 또 <돌취생>은 입사 후 퇴사해서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온 사람을 뜻한다. 자료에 따르면, 취업을 해도 그 중 60여 퍼센트는 첫 직장을 평균 15개월 만에 그만둔다고 한다. 워낙 취업이 어렵다 보니 기업이나 직무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일단 붙고 보자는 식으로 입사했다가 그만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청년실신>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는 것이다. 청년이라는 말에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앞글자를 딴 <실신>이 붙어 만들어진 말인데, 비싼 등록금을 대기가 어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졸업하자마자 실업자로 전락해 빚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을 묘사한 말이다. 퇴직한 선배가 오차장을 향해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다. 밀어낼 때까지 그만두지 마라"는 충고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직시한다면, 비록 낙하산으로나마 입사한 미생의 장그래가 완생을 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분명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실패한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끈기있게 나아가는 것 아닐까? 

 

 

"실리의 길은 멋은 없지만 확실하고 예측 가능하다. 반대로 세력의 길은 웅장하고 화려하지만 한순간에 지푸라기만 남을 수 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고, 지금 무척이나 잘나가는 것 같아보여도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허방을 짚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반대로 지금은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도 올바른 길을 성실하게 걸어나가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이르고야 만다. 그러니 결국 미생의 장그래가 완생하는 길은 이 말을 굳게 믿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 자신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비록 더디고 미약하더라도 올바르게 걷는 것이, 올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빠르고 힘차게 나아가는 발걸음보다 더 소중하고 귀중한 행보임을 확실하게 인식한다면 지금의 설움도 좀더 잘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장그래의 완생을 바라며,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오늘도 일터에서 완생을 꿈꾸며 열심히 자기 일에 몰두할 많은 직장인들을 생각하며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으로 만든 영화 <1492 콜럼버스>의 메인 타이틀곡 Conquest Of Paradise(더 아름다운 꿈을 향하여)와 이정하님의 시 <삶의 무대>를 함께 올려본다.  

 

Conquest of Paradise 디나 위너 

 

삶의 무대에 조명이 켜지면
나는
단역배우도 조연배우도 아닌
주인공으로,
또한 감독으로 내 인생을 연출하게 됩니다.

 

따라서 내 인생은
나 자신이 멋지게 연출하고,
나 자신이 멋지게 출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가 대신 출연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대신 연출해 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연습도,
재공연도 없는
단1회 공연이기에 말입니다.

 

-<삶의 무대> 이정하

 

이상 미생 장그래가 완생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본 글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